<시카고>, <드림걸즈>의 각색가이자 감독으로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던 빌 콘돈 감독이 <미녀와 야수>로 돌아왔다.
▲ 미녀와 야수 포스터
캐스트는 화려하고 풍성하다. 벨 역에 엠마 왓슨, 야수 역에 댄 스티븐스, 개스톤 역에 루크 에반스, 르푸 역에 조시 게드가 출연했고 조연진도 걸출해서 케빈 클라인(모리스 역), 이완 맥그리거(촛대 르미에 역), 이안 맥컬런(시계 콕스웍스 역), 엠마 톤슨(주전가 폿트 부인 역)등의 명배우들이 21세기 디즈니 실사 영화사의 명작에 합류했다.
영화의 핵심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왜 엠마 왓슨을 벨로 캐스팅하게 되었느냐는 인터뷰를 통해 빌 콘돈 감독이 밝힌 대목을 주목할 만하다.
"엠마는 너무 당연하고 유일한 선택이었다. 벨은 디즈니 영화 역사상 무척 중요한 캐릭터다. 처음으로 자립적이고 남자에게 집착하지 않았고, 늘 배우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캐릭터를 21세기적인 인물로 변형해야 했다. 엠마를 보라. 지금까지 그녀가 출연해온 작품과 실생활에서 그녀가 행해왔던 봉사활동이 바로 벨의 21세기적 모습을 대변한 것이다."(씨네 21 현지 보고 인터뷰, 2017년 3월 4일, 김지현 기자)
감독이 이미 설명하고 있듯 영화 <미녀와 야수>는 프랑스 지역의 전래 동화에서 유래된 동화 속 여주인공을 21세기의 여성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여성을 공주가 아닌 똑똑하고 용감한 여성, 남성성에 의존하지 않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성 자체로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20대 배우이자 페미니스트, UN 양성평등 홍보대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엠마 왓슨은 21세기적 벨에 적격이었던 것이다.
빌 콘돈 감독의 여성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전작 <드림 걸즈>에서도 이미 섬세하고 집약적으로 드러난 바 있었다. 매우 잘 만들어진 음악 영화이자 세 명의 여성들의 성장 영화인 <드림 걸즈>에서 여성들의 변화하는 '의상'은 음악만큼이나 강력하고 효과적인 미장센으로 활용되었다.
영화 <드림 걸즈>는 소녀들이 꾸었던 꿈이 여성들의 꿈이자 각각의 성숙한 인간들이 함께 빚어내는 인생의 꿈으로 승화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의 여성 자아에 대한 매우 스타일리쉬하고 비비드한 뮤지컬 영화였다.
<미녀와 야수>에 이르러서 빌 콘돈 감독의 웰메이드 뮤지켤 영화를 향한 만듦새와 내공은 더욱 화려해지고 정교해져 촛대 르미에가 주도하는 쇼타임의 환상성은 영화적 곡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2017년의 <미녀와 야수>는 확실히 1991년에 제작되었던 디즈니 월드의 프린세스가 아닌 디즈니 월드의 페미니스트이자 한 명의 자유롭고 당당한 '여성'인 벨의 성장과 환상적인 모험, 용감한 사랑의 세계관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어떤 나라의 성에서 야수로 변해버린 젊은 왕자의 변신 이야기에서 벨은 저주를 풀 유일한 주체적 위치로써 존재감을 발휘하며 이 여성의 존재감은 시골 마을이라는 좁은 물리적 공간에서의 성장과 거주, 확립되고 편견에 차 있는 타인들의 여성관과 편협하고 부박한 세계관, 결혼의 의무와 종속성 등에 전혀 제약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즉, 벨의 세계관은 기존 세계에 빚지고 있지 않다. 벨은 새로운 책을 읽기를 원하며 새로운 책장을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로 쓰기를 원하는 자기 운명의 주도적 여성이다.
그것은 <미녀와 야수>의 가장 유명한 공간 미장센이자 환상적이고 황홀하게 그려지는 거대한 서재에서의 미녀와 야수 둘만의 무도회에서 절정의 의미를 이룬다. <미녀와 야수>에서 서재 공간은 남성이 확립해놓은 지식의 권력, 질서의 장소로 그려지지 않고 벨이 참여하는 공간, 매료되고 압도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벨은 당대의 지식인 여성이며 미녀와 야수 사이에서 인간성과 동물성(야수성)을 초월한 지적인 사랑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드는 존재다.
▲ 미녀와 야수 스틸
성에 존재하는 거대한 서재 공간이 보여주는 공간의 권력은 남성들이 집필하고 장서해온 지식의 권력에 대한 압축판일 수 있다. 개스톤 역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결혼 세계로 벨이 편입될 것을 종용하는 존재이기에 기존 젠더-지식을 수호하는 권력자, 전쟁광이다.
그러나 지식과 권력의 성에 여성이 참여함으로써 거대하고 방대한 지식에의 매료와 압도를 넘어서 진정한 사랑의 차원이 느끼고 지각될 때, 그리하여 운명의 장미 꽃잎이 완전히 떨어지기 직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도록 할 때, 그것은 지식을 넘어서는 우위의 영역 차지이며 사랑에 대한 새로운 지식장이다.
한편, 거만하고 이기적이었던 과거의 왕자에게 저주를 내려 야수로 만들었던 요정이 마을의 과부인 '아가타'로 등장하게 된 설정 역시 과거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는 없었던 여성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자 세계관으로 풀이할 수 있다.
▲ 미녀와 야수 스틸
아가타는 사실 요정인데도 불구하고 마을에서는 과부로 알려져 구걸을 하며 사람들의 동정 속에서 살아간다. 허나 이 여성은 사실 마을에서 거리적으로 떨어진(격리되었다고 해도 좋을) 숲에서 자기만의 텐트(세계)를 일구고 자기만의 자연성과 신비성을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여성이다.
벨의 아버지인 모리스(케빈 클라인 역)가 개스톤에 의해 숲에서 늑대 먹이로 버려질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를 구원하는 여성이 바로 아가타다. 아가타는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발명가이자 혁신가인 모리스를 치료한다.(불현듯, 동명의 이탈리아 성녀인 동정 순교자 '아가타'가 떠오르기도 한다.)
벨은 우물가에서 자신이 직접 발명한 원통 세탁기로 도구를 활용해 가사를 해결하려는 발명가이며 마을에 몇 권 있지 않은 귀한 책들을 유일하게 빌려 읽는 독서가, 마을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 대신 미지의 운명에 대한 꿈을 꾸는 여성이다. 이 꿈꾸는 여성의 어머니는 파리의 예술가였고 이 여성의 아버지도 예술가다.
고정된 성 역할은 벨을 지배하는 역할이 되지 못한다. 벨은 마을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책과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언어를 갈망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 미녀와 야수 스틸
결국, 벨은 야수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동명의 <미녀와 야수> 주제가(알란 멘켄 작곡)는 진실하고 불변하는 미에 대한 감미로운 사랑가다. 가사 그대로 '시간 속에 흘러온 아주 오래되고 더할 수 없을 만큼 진실한 이야기'의 사랑가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
lavinya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