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역사에서 음악의 기원을 발견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은 1871년에 출간한 논문인 「인간의 기원과 성에 관한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s to Sex)」에서 새들이 천적들에게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지저귀는 이유는 짝짓기를 하고 자손 번식을 하기 위한 구애의 발산, 곧, 짝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을 발산하기 위한 '생식의 목적'에 다름 아니라는 가설을 수립했다.
▲ 쉘부르의 우산 포스터(일본판)
이 유명한 '성 선택설'은 어찌하여 인간도 사랑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에 역시나 유사한 실마리를 던진다. 인간이 사랑을 갈구하며 노래 부르는 이유.
이 세상 무수한 노래, 뮤지컬, 오페라, 문학에서 결코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존재적 지속성을 갖기 위해 생멸을 걸 수밖에 없는 과업, 나와 동반할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함 때문이 아닌가.
그리하여 유한한 내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갈망의 몸짓을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갈망의 몸짓을 소리로 분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향한 악흥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거리는 즐거운 콧노래. 때로 연인을 향한 콧노래는 위대한 작가가 쓴 시보다도 연인을 감성의 깊은 모래밭으로 인도해 서로의 몸을 파도에 젖은 모래로 간지럽힐 수 있다.
좋은 시는 좋은 노랫말이 되기도 하던가. 시의 본질은 노래라고 믿는다. 일본의 현대 시인 '요시노 히로시'의 「생명은」이라는 시를 잠시 흥얼거려본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오직, 생명을 지닌 것만이 노래 부른다. 이 노래는 타자를 매혹한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기 이전부터 이미 구강 기관에서 발성해내는 자연스러운 소리이고 선율이며, 흥이다.
완전한 흥은 오히려 완벽한 상태에선 분출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어떤 불완전한 결핍의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태도와 자세가 유유한 흥을 부를 때가 있다. 그러니 결핍이 있어야 인간은 흥이 난다. 모자란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흥은 모자랄 때 흥이다. 모자라야 흥이다. 더는 결핍 없는 상태에서 가능한 소리란 어쩌면, 내적으로 분출되는 흥이 아닌 길고 무거운 침묵뿐일지 모른다.
그러니 결핍이 있고 말 때 우린 노래한다. 결핍을 딛고 노래하듯이 살 수 있다.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타자를 갈망하며 부르는 사랑 노래. 일생 단 한 번쯤은, 우린 그런 노래가 되고 싶다.
▲ 영화 <쉘부르의 우산> 스틸
사랑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영화가 있다. 자크 데미 감독 자신이 '시네 오페라'라고 명명해버린 과감한 영상과 음악의 앙상블 시도. 진정한 음악 영화 <쉘부르의 우산 (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이다. 겨울이 떠나가기 전에 이 영화음악을 들어야 한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쉘부르의 우산 가게 따님인 '주느비에브(카트린 드뇌브 역)'는 자동차 정비공인 남자 '기이(니노 까스텔뉘보 분)'를 사랑한다. 그런데 기이가 알제리 전쟁에 징집된다. 주느비에브는 기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기로 한다. 남자가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그들은 사랑을 하고 여자의 뱃속에는 남자의 아이가 자라게 된다. 떠난 남자는 소식도 편지도 없고, 시간은 흐른다.
전쟁이 인간에게 안겨 주는 것은 이별과 죽음, 폐허와 절망이라는 두 단어 뿐···알제리 전선으로 떠난 기이로부터의 소식은 두절되고 여주인공 주느비에브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점점 자란다.
이 때, 여자를 사랑하게 된 새 남자 보석상 주인 '카사르(마크 미셸)'가 등장한다. 주느비에브는 전쟁터로 떠난 후 소식 없는 애인을 결국 잊는다. 뱃속의 아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새 남자 카사르와 결혼한다.
▲ 영화 쉘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스틸
알제리 전쟁으로 떠났던 기이가 부상으로 제대하여 셀부르로 돌아 온다. 그는 맨 먼저 셀부르의 우산 가게를 찾았지만 문은 닫혀 있고 주느비에브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기이는 허전한 상처의 공간을 메우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방황하다가 자신이 전쟁에 떠난 후 그의 병든 어머니를 정성껏 돌봐준 마들렌느와 결혼을 하면서 그의 삶도, 사랑도 새롭게 시작된다.
다른 시간, 다른 삶, 다른 사랑. 비가 올 때는 우산을 펼쳐야 하지만 그치고 나면 우산을 접어야 하듯, 서로가 겹치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간 이후에는 서로를 이제 더는 잊고 살아야 하는 시간의 도래가 있을 뿐이다. 혼자서 녹이 슨 우산의 살을 피고 접는 일은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 우산을 들고 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우산 같은 사랑인가.
이 모든 날씨의 변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총 3부에 걸쳐 전개된다. <(제1부: 이별(Premiere Partie Le Depart) / 제2부 고독(Deuxieme Partie L'Absence) / 제3부 재회(Troisieme Portie Le Retour)>
<쉘부르의 우산>은 모든 대사, 모든 몸짓, 모든 장면이 노래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미셸 장 르그랑'이 작곡한 아름다운 OST는 젊었던 옛 사랑의 추억을 깊고 풍부하게 전달하는 선율로 다가온다.
크리스마스 이브 셀부르에는 눈이 내렸다. 영화의 절정은 피날레에서의 눈 내리는 주유소 재회 장면이다. 기이가 운영하는 주유소로 벤츠 한 대가 선다. 차 안에는 기이의 딸이기도 한 '프랑스와즈'가 경적을 눌리며 놀고 있다. 기이가 주느비에브를 한 눈에 알아본다. 모피를 입은 주느비에브가 차에서 내린다. 주유소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렇게 재회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사랑은 지나갔고, 사랑은 그때 내리는 비였고, 그때 함께 썼던 우산이었으며, 지금은 각자의 삶, 각자의 크리스마스, 각자의 가족과 보내야 하는 겨울이 있을 뿐이다. 노래도 그렇다. 노래도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우린 사랑 노래를 듣는다. 새들도 더 이상 지저귀지 않는 깊은 밤에 사랑 노래를 듣는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의 추억이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 뿐, 현실에 주어진 각자의 삶에 충실하는 청춘상을 보여준 사랑의 이야기 영화 쉘부르의 우산 (Umbrellas of Cherbourg).
<로슈포르의 연인들>, <42년의 여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스티브 맥퀸: 더 맨 앤 르 망>, <엔틀> 등 아카데미 영화제 음악상 및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던 프랑스 영화음악의 거장 미셸 르그랑은 그 자신이 저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지만 지휘자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비르투오시와 함께한 유려한 연주가 국내에 <The Music Of Michel Legrand (프랑스 영화 음악의 거장 미셸 르그랑의 베스트 모음집)>라는 앨범으로 2014년 발매되기도 했다.
OST와 더불어 I will wait for you는 멧몬로(Matt Monro), 브랜다리(Brenda Lee), 카니 후란시스(Connie Francis),바비다린(Bobby Darin)등 수많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업 되면서 세월의 흐름에 변함없이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
lavinya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