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현실의 탄력이고 탄성이다. 꿈은 현실을 자유자재로 늘리기도 하고 변형시키며 편집시키는 창조 역능의 과정이며 결과다. 그것은 '천국 극장'이라는 이름의 영사실에서 편집된 오래된 필름 조각들처럼 삶을 구성하고 회상하게 만드는 소중한 위치 감각이다.
▲ 시네마천국 포스터
천국이라는 꿈의 위치, 좌표는 모호하고 애매하다. 역설적으로 모호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상상계는 그려질 수 있다. 그려질 수 있으므로 존재할 수 있다.
겹겹의 현실 두께 속에서 과거의 천국은 때로 상실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허나 자명한 것은 한때나마 우리가 천국으로 기억되는 그곳에 분명히 있었다는 경험 여정의 존재, 어떤 신기루 같은 확신이다.
현실을 초월하는 신기루, 환영, 환상의 좌표는 모호하고 부정확해서 정확히 같은 좌표로 다시 돌아가기란 어렵다. 그러나 마치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이 연결부를 통해 접합(도킹)되는 것처럼 현실과 꿈이 아슬아슬하게 도킹되는 그 지점, 그때 만나는 현실과 꿈의 절묘한 위치 감각 속에서 우리는 재구성된 천국을 인지하고 재발견한다.
오래된 수사를 환기하자면, 결국 영화는 영화가 꾸는 꿈이다. 영화의 꿈에 관객의 꿈이 초대되어 두 꿈의 시공간이 세상 속에서 접합(도킹)되는 사태! 영화의 천국은 세상, 사랑, 인간이라는 영원한 꿈에서 깨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깨지 않는 것인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1895> 이래 이 천국이 꾸는 꿈은 멈추지 않고 전진해왔다. 전성기도 있었고 쇠락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꿈이었다. 불멸의 꿈이었다.
이 축적된 영화사의 꿈들이 집합 기거하는 어떤 공간의 이름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이름, 그 이름이 바로 '시네마 천국'이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은 사랑과 우정, 꿈과 기억, 고향이라는 인간 본질의 친밀한 테마를 한 소년이 꾸었던 영화라는 꿈의 총체를 통해 영사한다. 이것은 영사된 인생, 영사된 인간의 기억이라는 은유이며 영화의 메타포다.
여기에 영화의 청각적 창을 이루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OST가 영화라는 이름의 꿈을 음악이라는 거대한 창에 영사한다.
영화의 꿈은 인생의 퇴적층이다. 총체적 집합의 기억과 감각의 변용 속에서 때로 화석이 되어버린 어떤 기억과 추억, 사랑은 다시 발견된다. 그것을 발견하는 자, 더듬는 자, 그자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영화다.
'토토'는 영화가 꿈꾸는 소년이다. 그래서 토토는 늙지 않는다. 천국 극장에 사는 영원한 영화의 천사. 천국 극장의 천사가 토토다.
천국 극장의 영사 기사 '알프레도'는 이 천사의 영화적 집이며 창문이고 스크린이다. 토토는 알프레도를 통해 영사되고 투사되는 세계로써 영화에 다가간다. 천사는 이 집의 창을 드나들며 꿈을 꾼다. 창에서 창 너머의 세계와 사랑을 동경한다.
▲ 시네마천국 스틸
하지만 영화적 집은 불탄다. 눈먼 영사 기사와 천사. 그 사이에 '엘레나'와의 첫사랑은 실패하고 상처 입은 천사는 고향을 떠나 어른이 된다. 토토는 성공한 영화감독 '살바토레'가 된다. 그리고 세상의 시간으로 30년이 지난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알프레도가 사망했다는 비보. 토토는 기억을 더듬으며 고향으로 향한다. 천사가 영화적 집으로 돌아간다. 최초의 영화적 창으로 돌아가는 영화의 천사, 이 천사에게 고향인 시칠리아의 천국 극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박찬욱 감독은 전쟁에서 죽은 토토의 아버지를 대체하였던 새로운 아버지가 곧, 영화였다고 분석했다. 영화는 토토의 새 아버지였고 새집이었으며 새 고향이었다.
"이미 아버지의 사진을 태워먹었던 토토는 이렇게 해서 새로운 아버지-영화를 받아들인다. 이 아버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시네마 파라디소'가 없어져도 '누오보' 新 시네마 파라디소'가 곧 다시 생기듯, 필름은 불에 타도 영화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알프레도는 자기의 죽음을 토토에게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영화처럼 토토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고 싶었던 것이다." (<박찬욱의 오마주(2005, 마음 산책)> 중에서)
우리의 가슴 속에는 불멸의 천사가 사는가? 필멸의 어른은 누구나 된다. 그러나 불멸의 어른이 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불멸의 천사가 지녔던 날개를 시간 속에서 태워먹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 안의 천사는 자주 날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추락해도 다시 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통해, 다시 날아오를 꿈을 꾼다. 그 꿈이 순간의 신기루일지라도. 좌초되고 파상된 영사기의 상이라 할지라도.
▲ 시네마천국 스틸
어떤 영화는 우리 안의 천사가 다시 날갯짓을 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두고 온 잊혀진 천국 극장에서 흐르는 영원한 영화광 소년의 테마. <시네마 천국>의 '러브 테마'는 증언한다. 영화가 꾸는 궁극의 꿈, 꿈의 테마는 종언 되지 않는 역사이고 문 닫지 않는 극장이다. 사라지지 않는 천국이다.
비록 우리 안에 한때 살았던 천사의 날개가 불탔을지라도. 우리 안의 천국 극장이 먼지로 가득한 폐허일지라도. 그 오래된 창을 열고 극장으로 들어가 영화를 계속 영사할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뿐이다. '러브 테마'는 우리 자신 영화광을 위한 영원한 찬가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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