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 없는 가족은 없다. 혈육의 서사는 질긴 것이다. 이 뜨거운 성김, 질김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애초에 인간의 태생적 환경으로써 주어진 여하한 운명을 어느 정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연원하는 비애, 비정함이다.
▲ 영화 대부 포스터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3부작 영화 <대부(God Father)>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마피아에 의해 온 가족을 잃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와 소위 밑바닥의 생에서부터 시작해 마피아의 보스까지 오른 전설적인 남자이자 인간 '돈 콜레오네'(말론 브란도 역).
원조 대부인 그가 1910년대 뉴욕에서부터 일구어낸 3대에 걸친 가족사의 서막. 미국형 신화 일대기이자 미국의 역사를 은유하는 장엄한 파노라마의 시작인 <대부 1>은 국가의 권력, 조직의 권력, 가족(패밀리)의 권력이 이동하는 지난한 역사의 변천을 그려낸 걸작의 위대한 신호탄이자 출발이다.
영화 <대부> 시리즈가 그려낸 은밀하고 냉혹하며 유혹적이면서도 치밀한 마피아 세계의 실상이 미국식 자본주의 성장 내력의 야만적인 환부, 무자비한 팽창과 독점을 향한 잔혹한 민낯, 정치와 지하 경제의 경쟁, 유착관계의 은유였다는 해석은 이미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대부>의 소설 원작자 '마리오 푸조'는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이었다. 마피아의 은밀한 세계와 실상을 치밀한 탐구와 취재 하에 기록한 그의 소설이 당시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파라마운트 픽쳐스(헐리우드 제작사)는 급하게 <대부>를 영화로 만들기를 원했다.
당시 영화판에서 잇따른 실패를 경험하고 있던 35세의 젊은 코폴라는 그 자신이 이탈리아계라는 결정적인 이유로 <대부>의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봉 당시부터 전 세계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한 <대부>. 197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각색상을 받았고 같은 해에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안소니 아스퀴스상, 골든 글러브 시상식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드라마)/음악상/감독상/각본상 등을 두루 수상하며 <대부>는 단숨에 위대한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니노 로타'가 음악 감독을 맡은 OST(Speak Softly Love) 역시 위대한 영화 음악의 반열에 올라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어둡지만 우아하고 은밀하면서도 세련된 악흥들은 갱스터 무비의 OST에 모종의 노스탤지어를 부여한다. 어둡고 쓰라린 상처의 내력을 지닌 남자의 인생 멜로디.가수 엔디 윌리엄스를 비롯하여 폴모리아,후랑크포셀 등 수많은 팝스오케스트라에 의해 리메이컵된 주제가는 영화음악의 명곡,고전으로 꼽힌다.
이제는 전설이 된 <대부>인만큼 명대사와 비화들도 수두룩하다. "친구는 가까이, 그러나 적은 더욱 가까이","뱀굴에 손을 넣을때는 남의 손을 빌려라","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지" 등....
'말론 브란도'가 구두 닦는 약을 머리에 발라 넘기고 볼에 휴지를 넣고 연기해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비화부터 파란마운트의 사장이 당시 말론 브란도의 출연에 끝까지 반대했다는 일화.
아들 '마이클 코를레오네'의 역을 맡은 '알 파치노' 역시 캐스팅 1순위가 아니어서 하마터면 영화에 출연도 하지 못했을 뻔했다는 일화들 역시 흥미롭다. 지금은 말론 브란도가 아니고 알 파치노가 아니며(<대부 2>부터 등장하는 '로버트 드니로')가 없는 <대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약육강식의 마피아 월드 속, 혈육이라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서바이벌의 드라마는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을 절제 있고 품위 있게 오간다.
음산함과 찬란함, 결혼식과 유아 세례식, 살인과 비즈니스, 갱스터와 가족, 냉혹한 피와 뜨거운 혈연, 가족애와 배신, 살해와 복수, 법과 비법, 권총과 도덕률, 마피아 보스와 아버지, 폭력과 가난, 부유와 품위, 존속되어야만 하는 가족,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화 되고 마는 가족의 파멸하고 추락하는 신화. 이 모든 것이 미국이고 미국을 은유한다.
그리고 <대부>의 처음이자 끝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버지 '비토 코를레오네'와 아들 '마이클 코를레오네'. 이 둘은 서로의 양면이며 서로의 거울, 서로의 미국, 서로의 존재다.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용히 유언과도 같은 증언을 남기던 장면을 기억한다. "내가 죽고 나서 화해하자는 전갈을 갖고 오는 자가 있으면 그 자가 배신자야. 내 말을 절대 잊으면 안 돼."
마피아 아버지의 생을 이룬 건 배신과 폭력이 팔 할이었다. 마피아 아들이 존재하기 전 아버지가 살아내야 했던 형형한 실존의 켜. 그 켜의 다른 이름은 고독이었고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가족이었으며 아들로 표상되는 다음 세대였다. 가족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신화도 붕괴되어버린 세상이다. 1인 가구가 520만 3천 가구에 육박하고 있는 한국 사회. 인구 형태 중에서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1인 가구의 실태는 전통적으로 표상되어왔던 가족의 의미를 빠르게 붕괴시키고 있다. 가족의 꿈은 붕괴된 것이다.
아버지의 표상도 이미 붕괴되었다. 붕괴된 아버지의 유산처럼 가족의 유산 역시 파괴되었다. 이제는 흘러가 버린, 그래서 결코, 이 세상에 두 번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 유산은 시간 속에 파괴되어가고 있는 바로 그 표상, 한 인간의 피에 흐르는 근원을, 권총으로, 심장으로 깊게 누른다.<대부>는 그래서 전설이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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