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유아 시절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필자의 종교에 관한 문화적 경험은 꽤나 다종교적인(!) 편이라 할 수 있어서 가령, 필자는 새벽 불교방송의 라디오 작가로 일하는 친구를 둔 덕에 불교방송을 종종 청취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에는 경주로 홀로 떠난 여행에서 늦은 밤, 토함산 밑자락에서 '동안거' (冬安居)에 들어가시는 노스님을 우연히 뵙고 제법 기이한 한밤의 동행을 침묵 속에서 나누었던 경험도 있었다.
당시, 삶은 원체 고행이고 우리에게도 계절별로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가 때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묵언 중에 일깨워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 이름 모를 노스님. 어떤 경험은 삶의 경계에서 늘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나의 뒤에서 죽비처럼 때리는 충격을 준다.
대학원 시절 살았던 기숙사의 룸메이트는 파키스탄인 이슬람 신자였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좁은 기숙사 방에서의 9월은 '라마단'이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히잡을 두르고 무릎을 꿇고 매일 기도했다. 나는 그녀가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대개는 꾸벅 졸거나 종종 마음속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진리의 실체를 향해 나만의 질문을, 대화를 고요히 던져보기도 했다. 잊지 못할 9월, 계절상으로는 초가을이었지만 여러 질문 속을 헤매며 안팎으로 더웠던 계절이었다.
첫 직장 생활이었던 연구소에서 만났던 동료도 이슬람 신자인 엔지니어였다. 첫 직장을 그만 두고 찾아 갔던 곳은 한 수녀회의 내면을 찾아가자는 주제의 피정이었다. 피정 프로그램을 마쳤을 때 수녀님께 받은 선물에는 성경의 신약 구절이 적혀 있었다.
▲ 영화 미션 포스터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내 삶에서도 이제껏 종교는 꽤나 깊고 다양한 발자국과 스침으로 드리워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드리움의 사이에서 만났던 저마다의 신앙을 지닌 이들.
그들은 각기의 종교가 가르치고 지향하는 어떤 공통의 미션 속에서 기도했고, 살아가고들 있었다. 내가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어쩌면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도이고 미션이며 수도 생활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18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남미 대륙을 배경으로 하는 롤랑 조페 (Roland Joffe) 감독의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은 브라질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국경 지대이자 이구아수 폭포의 상류 지역에 살고 있었던 과라니 족을 전도했던 예수회의 교회사를 전한다.
이 교회사는 자연스레 인간사이기도 해서 고행의 여정을 표상하듯 십자가가 폭포에서부터 떠밀려 내려오는 장면을 영화는 물 위에 올려진 골고다(Golgotha) 언덕처럼 흘려, 씻어 내린다.
식민지 시대에 최초로 탐사된 이구아스 폭포, 너비가 4.5km나 되고 평균 낙차가 70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삼림의 물줄기 절벽을 악기 하나, 작은 가방 하나 메고 기어 올라가는 신부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역)이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렸던 메신저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신부와 과라니 족은 원초적인 열대의 우림 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대면하듯 만난다. 메신저와 메신저가 서로 만난다. 언어도, 관습도, 양식도 무위해지는 야생의 시공간에서 이분법적 긴장을 서서히 무효로 만드는 첫 시작은 음악이다.
초조와 긴장이 계곡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뒤섞여 공존할 때, 신부의 호흡은 아주 천천히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를 내쉬고 내뱉는다.
이때,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소리로 들리는 인류학, 호흡하는 문화인류학에 다름 아니다. 이때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은 고지대의 우림 속으로, 낯선 문명 속으로, 문화 속으로 관객을 서서히 인도하는 물기처럼 스크린에 번지는데 이는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비유컨대 깊은 물기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물기는 인간의 손가락과 호흡이 떨리면서 빚어내는 소리의 물기이다. 열대 우림 속 화살을 조준하며 이 세계의 안과 밖, 경계의 긴장을 천천히 허물기 시작하는 인간이라는 물기의 소리이다. 인류학적 긴장, 인류학적 대면을 녹이는 소리. 어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호흡한다는 것이다. 그 호흡에 초대되는 인간과 신과 운명, 구원에 대한 깊은 질문들.
▲ 영화 미션 스틸
과거 용병이자 노예상이었던 로드리고 멘도사(로버트 드니로 역)가 친동생을 살해한 죄를 지은 이후 그 회개와 속죄를 위해 신부가 되는 것, 그가 과라니 족에 섞이며 점차 공동체가 이루는 가치의 새로운 차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 신앙과 제국의 이권 사이 긴장과 갈등의 역사 속에서 구해지는 것과 파괴되는 것, 그 모든 것 속에서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신.
영화 <미션>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의 수도 생활, 그 미션을 신과 인간의 존재 차원에서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인간 가브리엘은 죽는다. 그러나 죽지 않는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전하며 끝맺음한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 복음 1장 5절)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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