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 듯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햄릿> 3막 1장
'햄릿'의 원제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이다.
16세기 덴마크의 엘시노어 궁전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우울한 왕자의 비극은 아버지를 죽인 정적(숙부 클로디어스)을 향한 좌절되고 지연된 복수 이야기로 흔히 세상에 알려져 있지만 햄릿 월드가 이처럼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층위의 세계는 아니다.
햄릿이라는 인물이 탄생한지 장장 5세기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이 비장하고 방대한 연극 세계가 여전히 전위적이고 다양하게 전 세계 극장 안팎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햄릿에 대한 정신분석을 처음 시도한 이래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바바라 존슨, 미셸 푸코를 경유하며 많은 연구자들은 텍스트로써의 햄릿 읽기에 깊이 연대해왔다. 심층적 햄릿 읽기가 지속되는 이유는 결국,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존재인가 존재가 아닌가의 문제(혹은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로 대위되는 가장 본질적인 세계-내-존재 간극과 차원을 대면하는 작품이 바로 <햄릿>이기 때문이다.
존재가 존재를 고민하는 한, 그는 (어쩌면 이미) 햄릿 월드에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일생에 한 번쯤은 햄릿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닌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햄릿의 정수(essence)와도 같은 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생과 사, 무와 유, 존재와 무의 차원에서 실존하는 인간의 자기 탐색을 향한 처절한 질문으로 읽힐 수 있다. 고로 이 문장은 영어로 쓰인 원문의 문장을 넘어 서서 세계어로 쓰인 세계 문장이 된다.
존재-언어의 지평을 넘나들며 한없이 깊이 번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생과 사를 대면한 언어 예술의 정수가 뽑아내는 깊음, 이 한없는 나락이자 굴레의 깊이에 동참할 있는 특권. 이는 햄릿 월드를 만나는 특권이자 결코 면책될 수 없는 자기 존재로 살아가기의 책임이기도 하다. 결국, 자기 존재로 사는 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은 궁극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므로.
연세대 영문학과 최종철 교수는 "To be, or not to be"를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비극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복수라는 행위가 인간의 존재와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 및 그 행위의 본질을 추구하는 극"(최종철, 2015, 민음사)이라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햄릿 월드에 대한 해석은 이처럼 무궁한 인간에 대한 해석과 무진한 인간 이해의 과정 속에서 풍성하고 풍요롭다. 셰익스피어가 썼듯 온 세상은 무대이다! 그리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세상이라는 무대와 인간으로서의 배우. 연극은 극장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세상 가운데, 존재 한 가운데서 흘러가고 있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햄릿이 탄생한지도 이제 5세기를 향하고 있다. (흔히 햄릿의 출판 연대를 1604~5년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들여다보면 이 시기에는 제 2사절판(Q2) 햄릿이 출간되었다. Q2는 두 번째 햄릿 판본을 가리키는 약호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많은 전설과 실존 인물이었는지를 묻는 비화와 추정이 난무하는 만큼, 햄릿 역시 초기 본문의 인쇄 원고가 1603년부터 1623년 사이에 각각 제 1, 2 사절판과 이절판(Folio edition)으로 세 버전이나 출간되었고 각 버전마다 교정이 가미된 다른 대목들도 나타난다.
그러나 원본의 판본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햄릿이 지금까지도 새로운 번역 기획에 의해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출간되고 읽히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국내의 경우만 해도 올해 7월과 11월, 각각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햄릿>이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수없이 많은 세상 무대에서 수없는 햄릿이 읽히고 상연되어 왔으며 영화로 각색된 햄릿만 해도 로렌스 올리비에(1948), 그리고리 코진체프(1963), 토니 리처드슨(1969), 프란코 제피렐리(1990), 케네스 브래너(1995), 마이클 앨머레이더(2000)의 버전 등(지면상 호명하지 못한 감독들이 많다!) 수십 편에 이를 정도니 햄릿 월드의 무궁무진한 은하수는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존재 일반만큼이나 광활한 지평이다. 그러므로 광활한 햄릿은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초연'되고 있는 것이다. 연극적 인간은 언제나 재연이 아니라 초연을 살 뿐이니까.
▲ 햄릿 포스터
그리고 여기, 광활한 햄릿 초연의 역사를 이어나갈 중요한 공연 실황 기록영상이 국내 극장가를 찾아왔다. 2015년 영국 국립극장의 화제작이었으며 BBC TV 시리즈 <셜록>으로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갖고 있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햄릿을 연기한 NT 라이브의 <햄릿(2015), 국내 배급: 메가박스 필름 소사이어티>이다.
<햄릿(2015)>의 연출가 린지 터너는 201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노란 벽지>의 각색자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연극 <차이메리카>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한 촉망 받는 연극인이다.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무대 예술, 현대적이고도 과감한 각색, 16세기와 21세기의 시대적 간극을 초월한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한 무대 분할과 무빙, 지적이고 우아한 연기들, 섬세하고 자유로운 카메라 워킹은 관객들을 런던 바비칸 씨어터(barbican theatre)로 이끈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불멸의 문제다. 인간 존재가 처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 햄릿은 바로 이 불멸의 문제로 인해 불멸의 극장 레퍼토리이자 세계 텍스트가 되었다. 세계 텍스트를 관통하는 영원한 인간이며 영원한 유령으로 남게 되었다.
NT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영국 국립극장이 제작한 대표 연극을 스크린으로 생중계(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500여개 극장에서 150만 명과 만나며 공연이 태생적으로 가진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혁신적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국립극장 보도자료 인용)
▲ 햄릿 스틸(베네딕 컴버배치/햄릿 役)
<뜻대로 하세요>, <오셀로>, <코리올라누스>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물론 <프랑켄슈타인>, <제인에어>, <헤다 가블러>, <워 호스>, <행맨> 등의 수십 편의 실황 영상들이 지속적인 라인 업으로 축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기획으로 2014년 처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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