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필명/부천타임즈 문화예술전문 칼럼니스트)

"익명 SNS 앱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대."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이 알고 지내는 어떤 커플의 비하인드에 대해 말해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느낄까. 당신에게 가라앉은 느낌, 그것은 현 사회적 공기와 얼마만큼의 온도차가 있을까.

▲ '립반윙클의 신부'포스터

사람이 사람과 만나 관계를 시작하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제도적 공인을 받는 결혼은 전통적 제도다. 이러한 제도 진입 과정에 SNS가 터치되고 드래그된 것은 비유하자면 어느 순간, 생애 주기별 과업의 '친구 추가' 같은 것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집을 사는 것을 생애 주기의 과업으로 인식하는 평범한(?) 삶에서 SNS는 관계와 관계 사이, 현실과 또 다른 현실 사이에서 '클램본의 친구', '립반윙클의 신부'를 만든다.

만들어진 관계, 만들어진 현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12년 만의 신작은 SNS 의존도가 높은 바로 지금 이 사회적 공기를 직시하며 시작된다.

SNS가 결혼 제도와 풍속의 자장 속으로 이미 들어온 것은 SNS 의존 사회의 작은 단례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SNS는 그들 자신의 전부, 그들 자신과 동일시된 그들 자체가 되어버렸다. 주인공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맞선 사이트인 데이트 앱을 통해 남편인 츠루오카(지비키 고)와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다.

1천 3백만 명 도쿄 인구 가운데 두 사람. 앱으로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어떠한 관계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어준 것은 스마트폰이고 앱이고 알고리즘이고 서버이고 와이파이다.

그녀는 플래닛이라는 익명 SNS에 결혼 과정에 관한 심정들을 기록한다. 결혼 당일, 남편은 대기실에서 나나미에게 "내 아내가 이런 걸 한다면 당장 이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아니겠지?" 그리고 신랑은 신부에게 결혼 직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도 SNS에서 만났지만 행복하게 살자."

SNS에서 만났지만, 이라는 조건부가 관계와 행복의 지속성에 처음부터 한계를 긋는다. 이 한계가 가리키는 것은 관계의 실체이고 이 한계가 가리는 것은 관계의 진실이다. 관계의 실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누고 축적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 감정의 축적에 있을 것이다.

그 스케일(축적)이 관계의 깊이를 이룰 것이다. 나나미가 플래닛에 올린대로("맞선 사이트에서 남친을 발견했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 너무나 쉽게 손에 넣었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만났다. 너무나 쉽게 만나 너무나 쉽게 결혼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이혼한다.
 

영화는 SNS 의존도가 높은 인물 표본에 대한 추적 조사처럼 나나미의 결혼 이후 삶을 그려나간다. SNS는 결혼 이후 나나미의 삶에 '연장된 서비스'로 심화된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수행하는 청부업자 아무로(아야노 고)와 AV 여배우 마시로(코코)는 현실에 연장된 SNS의 화면을 부유하고 표류하는 현 사회의 ID 같은 인물들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현실과 SNS 경계 속의 블러 피플(blur people, 흐릿한 사람들)이다. 사람과 사람 앞에서 QR코드를 주고받고 나서야 소통을 시작하는 경계 코드에 선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소통 역시 블러 커뮤니케이션(blur communication, 흐릿한 소통)이다. 이 흐릿함은 진실과 실체를 감추고 과장하고 검열하고 거리 두기 한다.

스마트폰 화면과 현실 사이의 이 흐릿한 온도차. 이다지도 흐릿한 사회적 공기.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온도차에 거짓 위로를 받고 이 사회적 공기 속에서 거짓 숨을 쉬며 살아간다. 직면하지 못하는 삶은 끝내 블러할 뿐이다. 블러는 마치 오늘의 사회라는 플래닛에 접속하는 ID 같고 정체성 같다.
 
11월 2일, 모바일 앱 분석 업체인 와이즈앱이 10월 4주 한 주 동안 대한민국 2만 2857명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를 실시한 결과('한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모바일 SNS 앱 이용습관 조사') 한국인이 가장 오래 쓰는 앱은 페이스북으로 주간 사용 시간은 13.9억 분에 달했다.
 
13.9억 분을 환산해보았다. 9,652,777일 18시간 40분이었다. 231,666,666시간 40분 0초였다. 안드로이드를 쓰는 한국인은 한 주 동안 페이스북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영화 속 익명의 SNS 플래닛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플래닛은 지금 여기다. 당신은 지난 한 주 동안 어디에 머물렀는가. 지금 이 순간 어느 플래닛에 있는가?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