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필명/부천타임즈 문화예술전문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두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일이 근래, 도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짧다. 자막이 올라오는 순간, 관객석 곳곳에서 다시 켜지기 시작하는 스마트폰의 불빛들과 다시 쏟아져 들어오는 정치권, 문화권의 온갖 추문들과 거짓들. 하수상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개봉하고 영화는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느끼고, 쓴다.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니까.

▲ <다가오는 것들>영화 포스터

2016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다섯 번째 연출작 <다가오는 것들>은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상실, 그리고 계속될 생의 이면과 상실의 자취를 다룬 차분하고 섬세한 결을 지닌 영화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던 것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안녕, 첫사랑(Un amour de jeunesse)>을 통해서였다. 국내 극장가에서는 2015년 10월에 개봉했던 영화 <에덴: 로스트 인 뮤직>이 있었다.

아직 많은 국내 관객들에게 그녀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신작에 대해 버라이어티지는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동시에 따뜻한 영화" 라는 평으로 그녀의 신작에 담긴 지성과 감성에 찬사를 보냈다.
 
주인공 나탈리는 파리 어느 고등학교의 철학 교사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문화자본이라 명명하며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한 바 있었던 체화된 문화자본, 객관적 문화자본, 제도적 문화자본을 균형 있게 소유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이 파리지앵은 이렇게 말한다.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
 
그렇게 충만하게 산다고 믿어왔던 삶에 균열이 일고, 이별이 닥치고, 흔들림이 세지고, 반동이 거세진다. 판도라(어머니의 반려묘 이름이기도 하다.)가 몇 번이나 열리고 닫히길 반복하며 나탈리는 이별의 중심이라는 밤의 숲길을 홀로 서서히 거닐며 들어간다. 나탈리가 그녀의 삶과 사람들과 이별하는 사이, 상실의 반대는 소유가 아니며 상실의 역설은 상실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관객 앞에 따뜻한 연기처럼 지피기 시작한다.

우리는 삶을 언제나 상실하며 살아간다. 불현듯 축적된 상실의 깊이와 크기 앞에서 절연히 절망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겪는 저마다의, 매 순간의 죽음이다. 아득함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축적되며 저 스스로 아득해지는 동안 내가 그 시간을 외면했다는 죄책감, 허무. 그것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증폭되는 사태는 내 자아에 초대된 타자의 죽음 앞에서다.그러나 긴 허무와 깊은 고독은 오후가 지나 밤이 오고, 밤이 지나 아침이 오듯, 본래 그러하고 본래 그러하다 다시 되돌아갈 것임을 느끼는 시간이 곧, 상실의 궤도 주기이다.
 
상실의 반대가 소유가 아닌 이유는 상실이란 원래 소유할 수 없는 것이고 소유도 본래 상실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상실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상실의 역설은 단지 그 상태 자체에서 온다. 삶과 죽음이 한 이불을 덮고 있다는 역설의 상태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상실이 두른 이불을 조용히 생 위에 덮어줄 수 있을 뿐 아니던가.
 
어쩌면 삶의 일부를 잃었기 때문에 또 다른 삶의 일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본래 다가가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생의 일부가 다가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삶을 비로소 다가가야  '다가오는 것들' 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다. 삶의 일부를 잃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그럼에도 삶을 향해 다가가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삶은 삶의 전부를 걸어야만 때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때 다가오는 것들이란 아득하고 아름답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