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그랑블루(부천타임즈 문화예술칼럼니스트)

▲ 영화 <굿바이> 스틸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도로 위. 멀리서 헤드라이트를 킨 자동차가 달려오고 씬이 바뀌었을 때 와이퍼는 세차게 내리는 눈발을 닦으며 망망한 긴 겨울의 앞을 주시하고 있다. 차에 탄 두 남자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차를 모는 남자는 도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이자 전문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실패한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역). 그는 도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역)와 함께 고향 야마가타로 돌아온 지 2개월이 된 남자다. 동승한 노인은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역)다.

차가 도착한 곳은 상가(喪家),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 다이고와 이쿠에이의 직업은 '염습사'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문 앞에서 시신을 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오케스트라가 해체되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구입한 악기를 판 다이고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꿈이 아니었는가' 라는 자조와 고독 속에 도쿄에서의 삶을 정리한다.

다이고는 2년 전에 사망한 어머니의 유일한 재산인 시골의 카페 건물을 새 보금자리로 삼아 새 삶을 시작한다. 우연히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신문에서 '출발 준비를 돕는 회사' 라는 구인 공고를 발견하고 다이고는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간다. 초보 환영, 게다가 도착하자마자 면접 합격.

여행사인 줄 알았던 회사는 알고 보니 '여행이 아니라 영면을 돕는 회사' 였고 회사명 'NK 에이전시'는 납관의 이니셜이었다. 사장인 이쿠에이는 이것도 인연이라며 다이고에게 일을 해보라고 말한다. 여직원 '유리코(요 키미코 역)'도 친절하게 다이고를 대해준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생 한가운데서 죽음이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라며 인연의 인사를 건넨다.

다이고의 취업 후 직무들은 모두 죽음에 대한 일상성에 가까워지는 일들이다. 염습의 과정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에서 남자 고인 역을 맡았던 것이 첫 업무였고 두 번째 업무는 시신 수습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충격을 받고 오늘은 그만 퇴근하라는 이쿠에이의 배려 속에 서둘러 퇴근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퇴근 버스 안에서 여학생들이 서로에게 혹시 오늘 뭐 이상한 것을 먹었느냐며 수군거린다. 다이고에게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수군대는 것이다. 시취(屍臭)는 그렇게 감출 수가 없는 것인가.

▲ 영화 <굿바이> 스틸

필자는 아직 그것을 맡아본 경험은 없다. 어느 팟 캐스트에서 한 기자가 엄청난 지진 해일이 발생했던 해외의 재난 현장에 장기간 취재를 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들을 향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온 공기 속에서 시취를 맡을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을 들었던 간접 경험 정도만 나는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해 겨울,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발인 마지막 전날 밤, 지하 장례식장에서 염습 직전에 온 가족이 외할아버지의 시신 주위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리기 위해 유족 참관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시취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없다. 습, 반함, 소렴, 대렴, 입관 순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고요히 지켜보았던 스무 살 후반 겨울밤의 경험은, 차분했고 진지했으며 추웠고 두려웠다.

다이고는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버스에서 내리고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오래된 고향의 목욕탕에 가서 장작으로 데운 물에 온몸을 정성스레 씻는다. 비누칠을 하고 탕에 몸을 담구어 시취로부터, 오늘 가까이 있었던 죽음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 한다.

영화에서 목욕과 식사는 중요한 육체의 일과로 그려진다. 먹고 씻는 생존의 일과. 그러나 죽음을 생존을 위한 일로서 처음 경험하게 된 다이고에게는 먹고 씻는 일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문득, 이전까지 당연했던 생존의 일과들이 ‘일로서의 죽음’으로 인해 거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이 낯설어지는 일.

시체를 보고 온 다이고에게는 산 것의 '생기'가 불현듯 구토로 밀려온다. 그날 밤 비가 내리고 다이고는 스트링이 끊어진 오래된 첼로를 꺼내어 연주한다. 죽은 일상과 산 일상 사이 경계에서 인간의 몸을 닮은 악기, 첼로를 안고 영화의 메인 스코어인 <오쿠리비토>의 선율을 연주한다.

죽은 부모, 살아있던 가족들에 대한 상처와 상실의 기억들이 솟아나며 다이고가 연주하는 첼로의 선율이 기억과 지금 여기 생 사이에서의 감각들을 회복한다.

시신을 씻기고 곱게 단장하는 생명의 진지한 마침의 과정인 염습과 산 자가 물속에서 산 육체를 씻고 회복하는 과정, 장작을 태운 물로 몸을 덥히며 ‘일본 제일의 목욕탕’에서 씻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 일, 삶의 전 과정에 대한 진지한 자세, 정신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염습사로 취직했다며 사실대로 아내에게 말하기는 힘든 일. 그러나 결국, 다이고가 시신 역으로 출현했던 다큐를 아내가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서 직업의 정체가 폭로된다. 아내는 보통 일을 하길 바란다며 남편을 창피해한다. 다이고는 죽은 사람을 만지기 때문에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냐며 보통 일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죽는 게 아니냐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고 언성을 높인다. 죽는 것 자체가 보통인 것이라며. 일을 그만두라는 아내와 그만두지 못하는 남편.

아내 미카가 도쿄의 이웃에게서 받아왔던 살아있는 문어도, 야마가타의 이웃에게서 받아왔던 살아있는 닭도, 이쿠에이가 식물로 가득한 방 속에서 맛있게 먹던 내장 구이도, 모두 생명을 지닌 것들을 먹어야만 생명을 존속할 수 있는 인간 숙명의 보통 일상을 보여준다.

보통의 일상이라는 말 속에는 죽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통의 일상 속에는 얼마나 많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가. 물을 주지 않아 죽어가는 화분, 예상치 못하게 휴대폰 속으로 도착하는 타인의 부고, 내가 살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생을 지닌 무게들.

▲ 영화 <굿바이> 스틸

결국, 생물은 생물을 먹고 살 수밖에 없으며 죽기 싫으면 먹을 수밖에 없고, 먹는다면 이왕이면 맛있는 편이 좋다고 말하는 이쿠에이는 9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며 처음 염습을 하게 된 남자다. 이쿠에이에게 염습을 배우면서 다이고는 삶의 연주를 시작한다. 날갯질하는 겨울새를 관찰하고, 잠든 이쿠에이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다. 봄의 언덕 위에서 다이고는 다시 첼로를 켜게 된다.
 
작별, 다이고는 염습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사람을 떠나보낼 때의 작별에 대한 예술을 익히며 삶의 의미를 배운다.

관을 화장하기 직전, 화장터에서 문지기로 일하는 기사(사사노 타카시 역)는 말한다.

"여기 화장터에서 오래 일하게 되면서 알게 됐지.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 나가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거지. 난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아내가 남편의 곁으로 돌아오자, 목욕탕 주인 할머니가 죽는다. 아내가 아이를 갖고, 배가 불러오고 벚꽃이 휘날리고 날씨가 화창해지자 소식 없이 지내왔던 남편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전보가 도착한다. 떠나고 떠나오고. 꽃은 휘날리고. 아프지만, 그것은 삶의 순환이다.

영화에서는 물이 자주 흐른다. 도쿄의 강부터 집 근처의 작은 개울, 연어가 거슬러 오르는 제법 큰 강줄기까지. 다이고는 강가에서 아내에게 아버지에게 배웠던 돌 편지를 전한다. 언어가 없던 시절, 돌의 모양과 무게에 마음을 담아 전달했다는 돌 편지.

다이고는 아내에게 아버지에 대한 죽음의 소식을 들은 후, 30년 전에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애인과 도망갔다는 진실에 분노하며 시신에 대한 유족확인조차 거절한다.

영화 <굿바이>의 절정은 다이고의 새로운 아버지 같은 이쿠에이가 다이고의 진짜 아버지가 죽었을 때 마음에 드는 관을 가져가라며 자동차와 함께 그들의 길을 내주는 장면, 그리고 항구의 초라한 집에서 하루하루 날품팔이와 뱃일을 도우며 살던 아버지의 공간에 도착해 다이고가 정성스레 염습을 하는 장면이다.

▲ 영화 <굿바이> 스틸

30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던 아들이 염습을 하며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아버지의 손에 움켜쥐어 있던 돌 편지를 아내와 함께 읽는 장면에서 영화는 이런 말을 말없이 건네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문 앞에서 우리가 손안에 감싸고 있는 마지막 인사는 무엇일까.' 히사이시 조가 음악감독을 맡은 ost에서 첼로 선율은 반복된다. 마지막은 또한 시작이라는 듯.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영화 <굿바이>의 원제는 오구리비토(おくりびと), 이는 우리말로 '보내는 사람, 송별인'이다.

생명도, 음악도 일종의 인사다. 보내는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누군가 받게 되는 인사. 이쪽에서 죽음을 보내면 저편에서 생명을 받게 되는 길고도 짧은 인사.

이 인사가 오가는 동안이 어쩌면 우리의 생인가보다.

필자 그랑블루님은 학부에서 '영화'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