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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⑳] '노을'은 '항구'다
떠나고 돌아오는 항구처럼 노을도 그렇게 떠났다가 돌아오는
2019년 07월 29일 (월) 15:33:52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노을
이강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항구다
네 모습이 붉다
내 모습도 붉다

무수한 생명이 남겨놓은 소리
양면성을 지닌 발자국 소리가 빛의 균열에 순응하면
파르르 오감을 느끼는 노을 속 구멍들
먼 바다를 향해 붉은 깃을 세운다

펄럭거리던 돛, 아득히 밀려드는 섬의 물결
지나간 시간, 어스름의 메아리는
그리움보다 쓰라린 공터의 사색을
즐기겠구나, 검은 울음을
다 토해낸 구멍 많은 어느 당산나무처럼

너와 나의 거리가 멀수록
은밀히 포효하는 형상인가, 끼룩끼룩
기러기 떼 날아올라 우리 자리를 힘차게 다독여도
자꾸만 다른 모습이다
앞뒤가 충만한 황홀함으로
더 깊이 더 가벼운 안식으로

또 다른 계절의 문이 숨을 크게 몰아쉰다
네 모습이 편안하다
내 모습도 편안하다

   
▲ ⓒ부천타임즈

"노을"은 "항구"다. 떠나고 돌아오는 항구처럼 노을도 그렇게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본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항구는 장소 개념이고 노을은 시간 개념이다.

노을과 항구와 더불어 '너와 나의 관계'가 이어진다. 떠났다가 돌아오고 돌아왔다가 떠나는 관계,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만나는 관계,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관계다. 늘 생각하다가 잊혀지고 잊혀졌다가 다시 자주 생각하는 관계, 깊어졌다가 흥미가 없어지고 흥미가 없어졌다가 다시 깊어지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네 모습이 붉"고 "내 모습도 붉"어진다. 한쪽만 붉어져서는 노을이라고 할 수 없다. 항구가 있으나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 항구는 결국 사라지고, 또 사람은 있으나 항구가 없으면 사람이 떠나고 돌아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 다 붉어져야 어느 한 사람은 항구가 되고 어느 한 사람은 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로 붉어진 형편에는 어떤 환경이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 각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을 다 설명하지 않고, 그 공통분모만 추려본다. "무수한 생명이 남겨놓은 소리"와 "양면성을 지닌 발자국 소리"다. "생명이 남겨놓은 소리"를 '사람이 남겨놓은 소리'로 바꿔 읽으면,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남겨놓은 소리가 나를 붉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또는 내가 그렇게 남겨놓은 소리로 다른 사람을 붉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 소리는 또한 "양면성을 지닌 발자국 소리"여서 그 양면성으로 인해 피차 붉어지고, 발자국 소리를 듣고 또 남기면서 관계적인 긴장감이 스며드는 붉은 감정을 조장한다. 그래서 “파르르 오감을 느끼”게 되고 “먼 바다를 향해 붉은 깃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항구를 떠나면 "아득히 밀려드는 섬의 물결"을 보게 된다. 떠났지만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서 "그리움"같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항구의 이런 작용은 사람이 겪고 느끼는 노을의 설명이어서 사람으로 말하는 "공터의 사색"과 "검은 울음"과 "토해낸 구멍"으로 이어진다. 즉 공터에서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울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울음 끝에 보이는 "당산나무" 장치가 위로를 준다. 당산나무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요, 떠났다가 돌아오는 약속과 지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2연에 나오는 "파르르 오감을 느끼는 노을 속 구멍들"에 이어 3연에 나오는 "검은 울음을/다 토해낸 구멍 많은 어느 당산나무"를 연결지어 보면, 사람의 구멍은 "너와 나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만들어지면서 "우리 자리를 힘차게 다독여도/자꾸만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멀면 차라리 멀어져버리면 그만인데 다른 모습일지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인데, 멀어지는 관계를 멀어지지 않게 할 때 자꾸만 달라지는 모습을 달라지지 않게 다독일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의 눈은 노을의 구멍이 되고 당산나무의 구멍이 되어 하염없는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이다.

감정의 이러한 양상은 그 자체로 "양면성"의 양태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자체로 동시적이라는 시간성을 가지고 있다. 울음은 슬픔이나 분노 같은 단면이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거나 일으킨 후의 감정을 동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뒤가 충만한 황홀함"과 "더 깊이 더 가벼운 안식"이 등장한다. 마치 실컷 울고 나서 경험하는 편안한 감정과 같은 것이다. 바로 그때 "네 모습이 편안하"고 "내 모습도 편안"해진다. 한번 폭풍 같은 울음을 울고 나서 "숨을 크게 몰아쉰" 순간의 감정이라고 할까. 시간은 짧으나 감정의 영역과 폭은 아주 깊고 넓다. 그때처럼 편안한 순간이 없다.

그 순간의 항구에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또 다른 계절의 문이 숨을 크게 몰아쉰다." 그러니 그대여 부디, 붉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 붉어진 가슴으로 또 다른 계절을 열어가기를. 그래서 서로의 모습이 편안해지기를. 노을이 '황홀한 안식'으로 그대 눈에 들어있기를.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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