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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③]싸리나무
2019년 04월 01일 (월) 08:59:25 이종섶 mybach@naver.com
   
 

싸리나무
김향숙
  
        

종아리에 싸리나무 흔적이 있네
아버지의 꾸중이 다녀간 날이었네
천방지축의 나이
주먹을 쥐고 이를 앙다물 때
여린 싸리나무 회초리가 흔들리는 중심을 잡아주었네

눈물과 후회
원망이 묻어있는 그 기억을 만지면
참싸리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네
소쿠리와 채반이 되던 싸리나무가
몸에 스며들어 나를 일으켰네

쓰디쓴 그 맛
종아리에 새겨진 문신이
약초가 되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가 나의 싸리나무였다는 걸 깨달아
내 여린뼈가 단단히 여물어갔네

여름이 지날 때쯤 뒷산에 피던 분홍꽃
사방에 널렸어도 지나치기만 했는데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보이네
낭창낭창 휘어져도 부러지지 말라던 말씀
늙어 회초리를 들 기운조차 없으셔서
내가 싸릿대를 꺾었네

싸리꽃은 여전히 피어나고
밑줄을 긋던 말씀은
내 몸에 붉은 꽃으로 남아 있는데
아버지는 다시 피어나지 못하네
한 줌 싸릿대를 안고 산을 내려오는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싸리꽃 붉게 피어나네

잘 자란 싸리나무는 마당을 쓰는 빗자루가 되었으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도 되었다. 쓸고 때리는 기능은 다르지만 효과는 같아서, 싸리나무로 인해 마당이 깨끗해지고 마음도 깨끗해졌다. 다만 마당은 면적이 넓어서 싸리나무를 한 움큼 단단히 엮고 묶어서 사용하고, 종아리는 면적이 아주 좁아서 싸리나무 하나로 충분할 뿐이었다.

그런 싸리나무로 마당을 쓸어보거나 종아리를 맞아본 사람은 안다. 싸리나무가 얼마나 찰지게 마당과 종아리에 휘감기는지를, 싸리나무가 얼마나 마당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지를.

이제 와 생각해보면 마당도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마당에게 싸리 비질을 하시며 가르치셨다. 마당은 어질러지면 안 된다고, 마당은 지저분해지면 안 된다고. 아버지가 애지중지 아끼는 자식도 잘못을 저질렀다 싶을 때면 자식의 종아리에 싸리 회초리를 대셨다. 마음에 거짓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마음에 욕심이 있어선 안 된다고.

자식의 종아리에 싸리 회초리를 댄 아버지는 아픈 마음을 마당을 쓸면서 겨우 추슬렀다. 마당도 아버지의 아픔을 묵묵히 받아내면서 더욱 단단해져갔고, 아버지의 눈빛을 읽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갔다.

자식의 종아리에 피고 자랐던 싸리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가 멸종식물이 되었다. '어른이 된 자식'의 가슴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싸리 DNA를 복원하면 다시 싸리나무를 살려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버지과(科) 싸리나무를 그리워하는 눈물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보다 더 굵게 휘어지는 날, 가슴속에서 싸리꽃 향기가 진동한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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