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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④]버럭론
"버럭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나요?"
2019년 04월 08일 (월) 11:01:17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버럭론

임경묵


봄볕이 며칠째 몽우리를 만지작거리니까

목련이 확 제 가슴을 보여 주었다

애기똥풀도 놀라서 길섶에 꽃을 토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가 힘들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딱 한 번 버럭 하셨는데

조촐한 세간들이 좁은 마당을 함부로 날아다녔다

그 후로 공부가 힘들지 않았다

오래 참았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것은 아름답다

상수리나무가 빛나는 열매를 내려 줄 때는

갈바람이 나무의 뺨을 갑자기 후려칠 때다

그래야 단풍도 붉으락푸르락한다


이 시의 형태는 음악의 소나타 형식과 비슷합니다. 제시부-발전부-재현부로 펼쳐지는 소나타 형식처럼, 이 시도 "목련"과 "애기똥풀"을 제시한 후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 이야기로 발전시켰다가 다시 "상수리나무"와 "단풍"을 재현해서 마무리하기 때문입니다. 제시부와 재현부는 속성이 비슷해서 A와 A'로 기호화 하고 발전부는 제시부와 달라서 B로 해서 정리하면 A-B-A'가 되는데요. 이것은 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에 배운 세도막 형식이 됩니다.

임경묵 시인의 「버럭론」을 보면서 소나타 형식과 세도막 형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정적 동요 형식으로 많이 쓰이는 세도막 형식의 틀에 목련과 애기똥풀 그리고 상수리나무와 단풍을 등장시켜 동요의 서정에서 청소년의 서정까지를 아울러 보여줍니다. 중간에 나오는 고등학교 시절의 일화는 이 시의 제목으로도 사용되는 아버지의 버럭에 얽힌 이야기인데요. 이것은 소타나 형식의 발전부처럼 앞서 제시한 소재의 내용과 서정을 딛고서 활달한 상승작용을 구현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을 임경묵 시인은 절묘하게 버무려 형식은 심플하게 그러나 사유는 풍성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연의 소재와 생활의 소재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서로를 보완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높여주는 효과가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딱 한 번 버럭 하셨"을 때 "조촐한 세간들이 좁은 마당을 함부로 날아다녔"는데 "그 후로 공부가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활소재의 내면적 서정성이나 미학적 이미지를 드러냄에 있어서, 그 이야기 전후로 자연소재의 현상들을 배치해놓음으로써 아버지가 버럭 하신 것이 또 그 후로 공부가 힘들지 않은 것이 목련과 애기똥풀꽃이 피고 상수리가 떨어지고 단풍이 드는 현상과 같은 속성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버럭 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임경묵 시인은 아버지의 버럭을 말하면서 "오래 참았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버럭을 "봄볕"과 "갈바람"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봄볕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면 버럭과 봄볕을 같은 속성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인데요. 바로 이것이 이 시의 생명이자 울림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버럭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나요? 과거에 버럭 하는 사람 때문에 상처 받은 적이 있었나요? 그 버럭을 봄볕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터트리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해보면 어떨까요?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봄볕이 따사로운 날이 시작되었으니까요.

   
▲ 이종섶 시인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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