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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⑮] '접사의 기술'
접사의 본질은 "긴밀히 접하여 내통하는 소통의 기술"
2019년 06월 24일 (월) 15:08:01 이종섭 mybach@naver.com
   
▲ 노루귀ⓒ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접사의 기술
성태현

붉고 진한 그 꽃술에 입술을 적시려 한다면
호접몽 속으로 날아오르되 쉬이 내려앉지는 마라
모름지기 접사란,  
접고 접히거나 접으며 접하는 교접이므로
눈 맞출 때까지 눈으로만 숨결을 더듬어라
살포시 속눈썹 내려놓은 그녀, 허상일 수도 있으니
햇살 오는 통로에 엎드려서 심기를 살펴야 하리라
좁은 틈새로 스며든 빛이 다각의 굴절에 따라
몇 가닥 의심으로 파생된 회심의 눈초리
조리개 활짝 열어 속마음도 다 내보여라
그대의 화각에서 무시로 은거하는 잡꽃들까지
어릿어릿, 낯모르게 지워내는 것이
용의주도하게 배경을 정리하는 일이다
청정한 빛이 꽃볼에서 꼬리를 물고 튀어 오를 때
감파른 실핏줄 어렸다고 발광하지는 마라
메두사로 둔갑한 그녀가 잡아먹을 듯 달려들더라도
선 채로 버티다가 아직은 삼각대를 접지 마라
손가락이 떨리면 어설피 셔터 누르지도 마라
서둘러 지배하려 한다면, 나지막이 떠도는 미풍에도
솔깃, 그대의 손길 벗어날지도 모른다
한 방울 이슬진 측거점이 촉촉이 젖어오는지
지그시 반 셔터를 눌러보라  
접사는, 그대의 오감을 한 단계 고조시키거나
단단한 명사로 품위를 바꿔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니
지체하지도 마라, 그러면
그녀의 볼에서 열뜬 홍조가 사위어갈 것이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귀 기울이다가
바람 멈추고 파르르 잎술 여는 격정의 순간
날렵한 손가락으로 살며시 셔터를 눌러야 하리라
차르르 흐르는 셔터 소리가
고화질의 그녀를 품 안에 깃들게 할 것이다
접사의 본질은, 눈 안에 가득히 든
오직 그 한 송이 어근에 붙어 솜털 하나 땀구멍까지
긴밀히 접하여 내통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성태현 시인은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 사진에 관한 소재와 내용이 많은 이유다. 「접사의 기술」은 사진과 시에 관한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사진의 다양한 기법 중에서 접사라는 촬영방법 내지는 촬영형태를 다룬다. 여기서 전문인의 접사는 촬영기술이 될 것이고, 일반인이 예쁜 꽃을 가까이 찍는 접사는 촬영방법이라 하겠다.

전문 기술을 동원해 찍는 전문가든, 아니면 폰카로 주변에 있는 꽃이나 사물을 찍는 평범한 사람이든, 각각의 입장에서 접사에 대한 성태현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접사를 찍는 행위와 서정이 더욱 깊고 즐거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접사의 기술」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연애와 사랑도 다루고 있어서, 나와 관계된 사람과의 접사를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유익을 덤으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쉬이 내려 앉지는 마라
2. 눈으로만 숨결을 더듬어라
3. 햇살 오는 통로에 엎드려 심기를 살펴라
4. 조리개 활짝 열어 속마음을 내보여라
5. 용의주도하게 배경을 정리하라
6. 서둘러 지배하려 하지 라라
7. 지그시 반셔터를 눌러보라
8. 바람 멈추고 파르르 잎술 여는 격정의 순간 셔터를 누르라

   
▲ 노루귀ⓒ부천타임즈

여덟 가지로 정리해본 내용은 사진 접사의 순서인 동시에 사람 접사의 순서이기도 하다. 시의 끝에서 밝혔듯이 "접사의 본질은, 눈 안에 가득히 든 / 오직 그 한 송이 어근에 붙어 솜털 하나 땀구멍까지 / 긴밀히 접하여 내통하는 소통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꽃 한 송이를 가까이 찍으며 꽃과 소통하는 접사처럼,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만나며 또 어떤 사람과는 날마다 얼굴을 보며 지낸다. 가족과는 한집에서 함께 산다. 사진의 접사는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 행위라고 한다면, 사람의 접사는 이미 가까이 다가갔거나 가까이 다가온 관계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 사람을 나는 이미 접사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과 관계된 접사의 방법과 효과는 내가 만드는 것이지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을 접사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내가 소통하면서 접사하고 또는 접사하면서 소통하는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상의 외형이 아닌 내면까지 포착해서 아우르는 접사를 시도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분 좋게 소통하는 접사를 만들어간다. 즐거운 접사 생활이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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