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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⑫]'말'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 아파야
2019년 06월 03일 (월) 11:56:09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이기철

오늘도 나는 산새만큼 많은 말을 써버렸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소리만큼 많은 목청을 놓쳐버렸다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씻고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며 본

너무 많은 꽃을 매단 아카시아나무의 아랫도리가 허전해 보인다

그 아래, 땅 가까이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나팔꽃이 묵묵히 울타리를 기어 올라간다

말하지 않는 것들의 붉고 푸른 고요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

허전해서 바라보니 내가 놓친 말들이, 꽃이 되지 못한 말들이

못이 되어 내게로 날아온다

아, 나는 내일도 산새만큼 많은 말을 놓칠 것이다

누가 나더러 텅 빈 메아리같이 말을 놓치는 시간을 만들어놓았나


밖에서 말을 많이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힘듭니다. 말을 많이 하면서 보낸 하루는 저녁이 힘듭니다. 무수히 지저귀는 "산새만큼 많은 말을 써버렸다"는 자괴심이,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소리만큼 많은 목청을 놓쳐버렸다"는 아픔이 말이 빠져나가버린 마음의 허전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공에 한가득 피워낸 아카시아나무의 그 많은 꽃조차도 너무 많아 보이고 그 아랫도리까지도 허전하게 보입니다.

그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바라보니 "내가 놓친 말들이, 꽃이 되지 못한 말들이 / 못이 되어 내게로 날아"옵니다. 남에게 했던 말들과 세상에 했던 말들이 못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힙니다. 이런 못은 결코 빠지지 않고 더 깊숙하게 박히기 마련이어서 그 못을 보는 사람은 더욱 아픈 법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런 못 하나 없이 살아가게 마련인데, 어찌해서 나는 못이 뚜렷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갈수록 못이 더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박힌 못을 속 시원하게 빼버려서 잘 아문 마음 달래가며 살고 싶은데, 그 못 하나 빼려고 애쓰는 동안 어느새 또 다른 못 하나가 날아와 박히고 맙니다.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 아파야 상처를 이길 수 있을까요. "나는 내일도 산새만큼 많은 말을 놓칠 것"을 알기에 상처를 이기기보다 아파하는 날들만 이어질 것 같아서 “누가 나더러 텅 빈 메아리같이 말을 놓치는 시간을 만들어놓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늘 가까이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가까이 갔다고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허풍과 허세가 많은 세상에서 "그 아래, 땅 가까이” 살면서 “묵묵히 울타리를 기어 올라"가며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나팔꽃처럼 "말하지 않는 것들의 붉고 푸른 고요"를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것만이 꽉꽉 박힌 못을 부드럽게 뽑아내는 힘이 될 테니까요. 못을 뽑다가 생채기가 날지라도 그 "붉고 푸른 고요" 스며들면 상처가 잘 아물어 마음속에 깨끗한 새살이 돋을 것을 믿습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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