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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⑪] '엄마의 서재'
"고향 집에 가면 뒤란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장독대가... "
2019년 05월 27일 (월) 13:23:43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엄마의 서재
임영희


볕이 모여 노는 곳에 자리한 장독대는
엄마의 숨은 공부방

육덕진 엉덩이를 쳐들고 있던
두꺼운 항아리 전집
봄볕이 꼼지락거릴 때쯤이면
입 안 가득 하늘을 채운다

설이 지나고 손 없는 말날이 되면
엄마는 일 년 동안 공부할 책을
그 많은 항아리 속에 가득 채웠다

소금물을 찍어 책을 넘기면서
메주에 메모를 하고
지나가는 바람이랑 내려보던 햇살도 넣고
버선을 그려 책갈피도 끼웠다

볕이 놀러 오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장독대
그 옆에 흐르는 구름을 담고 있던 두멍
물구나무서고 있던 방구리도 꽂아두었다

햇볕을 필사하고
바람과 비를 피하는 법을 기록한
간장 된장 항아리
농익은 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얀 무명 지우개로 묵은 때를 닦아내며
힘든 마음에 평온한 글자를 간직했던 엄마

그 서재에서 간장 한 권
된장 한 권을 읽고 자란 나
자서전을 자식들에게 고이 물려준다


고향 집에 가면 뒤란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만 보면 왜 그리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던 손길이 서려 있고, 가족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시고 없어도 장독대가 남아 있는 한 어머니의 공간과 품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임영희 시인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장독대를 엄마의 서재와 공부방으로 그렸다. "장독대는 / 엄마의 숨은 공부방"이어서 엄마는 그 공부방에서 "두꺼운 항아리 전집"에 '꼼지락거리는 봄볕'과 "하늘"을 가득 채웠다. 쉴 틈이 없었던 엄마의 공부는 "일 년 동안 공부할 책을 / 그 많은 항아리 속에 가득 채"워 준비하고서는 시간 날 때마다 들러 한 권 한 권 펼쳐보곤 했다.

"소금물을 찍어 책을 넘기면서 / 메주에 메모를 하고 / 지나가는 바람이랑 내려보던 햇살도 넣고 / 버선을 그려 책갈피도 끼웠”던 엄마의 성실한 공부 덕분에 "햇볕을 필사하고 / 바람과 비를 피하는 법을 기록한 / 간장 된장 항아리"가 어느덧 "농익은 표지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어찌 순탄한 일만 있었을까. 그런 엄마를 바라봤던 자식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하얀 무명 지우개로 묵은 때를 닦아내며 / 힘든 마음에 평온한 글자를 간직했던 엄마"였다. 그래서 엄마의 "서재에서 간장 한 권 / 된장 한 권을 읽고 자"란 자식이었기에 자신도 엄마가 남겨놓은 "자서전을 자식들에게 고이 물려"주기로 결심하며 독후감을 써보는 것이다.

자서전으로 마무리되는 엄마의 서재와 공부는 그 의미가 사뭇 웅숭깊다. 장식하고 과시하는 서재가 아니고 성공과 출세를 위한 공부도 아니다. 오로지 가족을 아끼고 가족을 위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서재와 공부다.

모름지기 공부는 이래야 한다고 몸소 보여주신 엄마. 그것도 일 년 내내, 아니 평생을 한결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보여주신 엄마를 통해서 가족과 공부에 대한 그 각각의 의미와 그 두 가지 영역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관계적 자세를 다시 점검한다.

학문과 지식만이 공부가 아니고 삶과 일이 진정한 공부다. 나아가 가족을 살리는 공부가 참된 공부다. 자신의 서재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던 어머니. 남편과 자식들에게 장학금을 받기보다 타박과 짜증을 받는 일이 많은 공부였을 텐데도, 묵묵히 맡은 공부에 정진했던 어머니.

'가족'이라는 학교에서 '남편'과 '아들'과 '딸'이라는 과목을 그 긴 과정 동안 우등생 아닌 우등생으로 마친 어머니에 비하면, 나의 공부는 아직도 한참 멀기만 하다. 어머니가 남겨준 자서전을 읽고 쓴 나의 독후감은 나의 자식들을 통해서 나타날 터인데, 과연 그 독후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신이 없어 부끄럽기만 하다. 내 성정이 어머니의 장맛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드는데, 하늘 장독대에 서 계신 어머니가 보인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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