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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⑧] '철쭉'
"꽃이 예쁘다고 해도 일찍 피어야 대접을 받는다"
2019년 05월 06일 (월) 09:43:30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철쭉
고경숙


철쭉이 환하게 병원 뜰을 물들이던 날
72병동 여자화장실에서
때 아닌 구구단 시험이 한창이다

늙은 엄마는 안에,
링거폴대 잡고 있는 중년의 딸은 밖에서,
다그친다
오ㅡ 칠이 뭐냐고

오ㅡ 칠이 뭐더라? 오ㅡ 칠이 뭐더라?
삼ㅡ 십……

아이고 엄ㅡ 마!

당황한 엄마는 대답한다
이년아 어메 놀라 옷에 똥칠허것다

다시 해보자구요
진짜 벽에 똥칠하며 살 거야?

기억력 좋아지는 약이라고
어제도 오늘도 착실히 먹었건만

끙 끙
안에 있는 어메 두 볼은
철쭉처럼 붉어지기만 하고……


 꽃이 예쁘다고 해도 일찍 피어야 대접을 받는다. 먼 곳으로 꽃구경을 가게 만드는 매화와 산수유꽃에 이어 벚꽃이 그렇고, 가까이에서 보는 개나리와 진달래와 목련이 그렇다. 이 모든 꽃을 한 번에 또는 한 곳에서 동시에 볼 수는 없어서, 저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겨울 지나 일찍 피는 꽃이 반갑고 고운 법이다.

 봄꽃들 중에서 몇 가지는 근처에서 보고 또 몇 가지는 구경을 가기도 하다가, 또 몇 가지는 뉴스를 통해서 보고 듣기도 하면서 지내다보면, 꽃이 피었는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꽃이 있게 된다. 꽃이 피었는데도 화제가 되지 못하고, 꽃이 피었는데도 눈길을 받지 못하는 꽃이 생긴다. 바로 철쭉이다. 겨울 지나 웬만한 꽃들이 다 피었다가 사라진 뒤에 뒤늦게 피어나 꽃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철쭉이다.

 사람이 피워내는 관계의 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갓난아이를 통해서 주고받는 사랑이 있고, 어린아이 시절을 통해서 주고받는 사랑이 있다. 청소년기에 주고받는 사랑도 있고, 자녀들이 장성해서 결혼을 하는 시기와 그 후에 이어지는 시기에 주고받는 사랑도 있다.

 문제는 그 후에 다가오는 관계의 사랑이다. 부모가 노년이 되는 시기고 자녀들도 중년이 되는 시기여서, 사랑은 사랑인데 예쁘거나 곱지도 않고 향기조차 은근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투박하고 거칠기만 하다. 분명 사랑은 맞는데 딱히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랑이다.

 약하고 병든 부모, 정서적으로 유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치매기까지 있는 부모, 침대생활을 하는 부모,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부모를 돌보는 중년의 자식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부모를 돌보는 일을 맡아 하는데도 노년의 부모나 중년의 자식에게는 사랑이라는 그 본래의 빛깔이나 향이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뒤늦은 관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철쭉을 닮았다. 봄꽃 중에 제일 늦게 피어서 산에 있어도 주변에 있어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꽃, 독성이 있다고 해서 먹으면 안 되는 꽃, 그럼에도 주변의 공원이나 정원에서 5월이면 어김없이 피어있는 꽃.

 어버이날이 있는 주간이다. 건강하지 못한 부모와 중년의 자식들은 철쭉 같다. 그들도 꽃이기에, 그들의 사랑도 사랑이기에, 그들 모두에게 고경숙 시인의 시 「철쭉」을 바친다.

   
▲ 이종섶 시인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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