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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⑱] 궂은 날
궂은 날이 오면 어떻습니까? 흔들리고 쓰러지면 좀 어떻습니까?
2019년 07월 15일 (월) 13:47:32 이종섶 mybach@naver.com
   
▲ ⓒ부천타임즈

궂은 날
김정원

 
소낙비가 연신 싸대기를 후려치고
태풍이 갈비뼈 부러지게 걷어찬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다독이며
아프게
아프게
 
용트림하는 소나무, 작지 않다
맞서지도 탓하지도 않고
도리어 바람을 빌어
마르고 병약한
이파리와 잔가지들 떨어뜨리고
 
더 잘 서 있다

 

   
▲ ⓒ부천타임즈


살다 보면 궂은 날이 많습니다. 사람으로 인해 궂은 날이 다가오고, 돈으로 인해 궂은 날이 다가오고, 일로 인해 궂은 날이 다가옵니다. 몸이 힘들어서 궂은 날을 경험하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서 궂은 날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궂은 날이 찾아올 때마다 몸과 마음이 젖은 상태로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오래 아파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정도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기도 하지만, 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지내기도 합니다.

친구나 직장 동료와의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가족과 얽힌 일이라면 더더욱 힘들어서 젖은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잘못되었거나 잘못하는 일이 아닌데도 부모를 돌아보거나 자식을 키우는 일로, 또는 부모나 자식으로 인한 관계에서 파생된 과도한 짐이 힘들게 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자주 젖는 그대에게, 또는 어쩌다가 젖는데도 흠뻑 젖고 마는 그대에게 김정원 시인의 담백한 시 「궂은 날」을 드립니다. 감정의 과잉이나 소비도 없이 간결하게 써내려간 시이지만, 그 속에 "소낙비"에 이어 "태풍"이 등장해 "싸대기를 후려치"면서 "갈비뼈 부러지게 걷어"차는 환경이 등장합니다.

소나기와 태풍이라는 자연환경의 은유가 생각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만, 사실 그것이 가리키는 상황인 '손으로 싸대기를 맞고 발로 갈비뼈를 걷어차이는 일'은 아픔을 넘어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괜찮다"를 반복하며 "스스로 다독"입니다. 그렇게 "아프게//용트림하는 소나무"가 결코 "작지 않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길래 그런 마음과 자세와 깨달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먼저는, "맞서지도 탓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품성 덕분입니다. 맞서다가는 부러지기 딱 알맞아 몸이 다치고 말 것입니다. 탓하다가는 속병이 들어 마음이 상하고 말 것입니다. 맞서지 않고 탓하지 않는 이 두 가지는 필연적으로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맞서지 않았지만 탓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탓하지 않았지만 맞서고 말았다면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마르고 병약한/이파리와 잔가지들 떨어뜨리"는 기회로 삼는 깨달음의 자세 덕분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것 한두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이어서, 그런 것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생의 소나기와 태풍을 맞으면서 그런 것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소나기와 태풍이 지나간 후에 가지런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궂은 날이 오면 어떻습니까? 흔들리고 쓰러지면 좀 어떻습니까? 이전보다 "더 잘 서 있"는 자신을 증명하고 드러내면서, 지금은 "더 잘 서 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궂은 날"을 보내고 있는 그대가 "궂은 날"을 끝내고 나서 "더 잘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더 잘 서 있'으면, 더 잘 사는 것이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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