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만화가를 물으면 웹툰작가를 말하겠지만 30~40대 들에게 '만화가?'하면 이현세나 허영만을 꼽았다. '이희재?'라고 하면 아는 이들보다는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런 그가 2012년 말 스타만화가 이현세에 이어 한국만화계를 대표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대 이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2014년 2기 임기 2년 차에 들어섰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희재 이사장 캐리커쳐 ⓒ부천타임즈

임기 2년차에 들어선 이희재 이사장은 (재)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전신인 1998년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설립될 때부터 <머털도사>의 이두호, <빨간자건거>의 김동화 작가 등과 함께 부천의 만화산업 정책을 지원해온 중견만화가였다.

이희재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겹경사의 행운을 맞이한다. 2013년 1월 제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한국만화특별전 실행위원장을 맡았던 이희재 이사장은 올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프랑스 앙굴렘시에서 열린 <제41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지지않는 꽃> 전시회를 주최해  3억 원의 저예산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 실상과 반인륜적 만행을 만화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린 성과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경이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문화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2월 3일 <지지않는 꽃> 전시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그는 "저희들이 1년 동안 준비했다. 일제 강점기에 고통을 겪었던 우리의 누이들, 어머니들의 상처를 만화에 실어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가지고 갔다. 일본에서 예민하게 반응(방해공작)해서 그쪽과 승강이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 밝히려는 진실의 문제라서 호응을 얻은 반면  일본은 그것을 감추고 왜곡했기 때문에 퇴출당했다 결국 우리가 완승했다"고 말했다.

<지지않는 꽃> 전시를 통해 한국만화의 저력을 과시함에 따라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위상과 역할은 더 높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희재 그는 누구인가?

이희재는 1952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1970년 상경해서 당대 최고의 필력을 자랑했던 만화가 김종래의 문하로 입문했다. 1981년 <명인>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늦깍기 데뷔를 했다.

하지만 심의기관의 평가는 가혹했고 시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명인>은 '외줄타기 서커스를 하는 가족과 공장에 다니면서 고학하는 남매의 이야기'였다.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던 당시 심의기관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지나치게 묘사했다'며 그의 만화를 난도질했고 대중은 '명랑과 환상'이 없는 그의 만화를 찾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이희재를 찾는 이들이 생겼다. 당시 편집부는 인기 만화가의 오락성이 강한 만화를 집중 연재하기 위한 '묘책'으로 해외 걸작소설이나 명작 동화를 각색한 만화를 섞어서 게재했다. 음반을 낼 때 건전가요를 1곡 끼어 팔아야했던 시대에 만화잡지가 선택한 '눈치 보기' 전략이었다.

당대 최고 인기작이었던 김수정의 <아기공룡둘리>를 중심으로 이현세, 허영만 등의 스타만화가들이 즐비했던 <보물섬>에서 이희재는 빅토리아 빅터의 성장동화 <악동일기>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골목대장 악동이>를 그렸다. 그런데 이 작품은 편집부의 '건전만화'전략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동네 아이들을 괴롭히는 골목대장 왕남이를 악동이가 박치기로 제압하고 '골목 혁명'에 성공한다는 내용을 그렸다. 초반부는 당대의 정치적 현실과 억압받는 민중의 삶에 대한 명백한 패러디였고 후반부는 억압된 상황을 민중의 힘으로 탈출하는 실천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이희재식 만화'였다.

이 작품은 이희재를 여느 만화가들과는 반대편에 서게 만들었다. 대다수의 만화가들이 어린이들의 꿈과 영웅의 세계를 그렸다면 이희재는 현실과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세계에 집중했다. 이후로도 실업자, 샐러리맨, 실직자, 여공, 술집종업, 청소부 등 급격히 산업화 된 도시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도시 빈민의 모습을 그렸다.

이현세가 대중의 스타였다면 이희재는 민중의 지지자였다. 이현세가 자천타천으로 만화의 산업화를 진두지휘한 리더였다면 이희재는 만화를 통해 민중문화운동을 전개한 리얼리스트이자 휴머니스트였다.

▲ 이희재 이사장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부천시가 만화산업 진흥기관 임을 자임하고 나서부터 한국만화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부천을 왕래했다. 이희재는 그중 가장 많이 부천을 찾은 만화가 중 한명이었다. 공식석상이나 행사장에서 만난 이희재는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옹골찬 주관과 분명한 가치가 담겨있었다. 이현세 이사장 재임시절 이현세가 신예작가를 지원하자고 하면 이희재는 '기성작가도 지원해야 한다'고 했고 기업 참여를 늘려 산업화를 꾀하자고 하면 '작가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희재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한국만화는 세상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면서 "만화가들은 펜과 잉크보다 펜마우스와 태블릿을 창작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만화팬들은 책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소비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급격한 변화가 펜과 붓으로 그리는 전통만화작업을 생각하면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세상의 변화에 맞춰 작업도구와 매체를 바꿔가며 새로운 만화를 창작하고 있는 선후배 만화가들을 볼 때면 놀랍기도 대견스럽기도 하다"고 말한다.

펜과 붓으로 그리는 종이만화에서 디지털 만화로 진화하고 자리잡아가는 한국만화의 격동기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수장이 된 이희재 ....부천만화정책 15년, 이를 중간 정리하고 조정하는 일은 어찌 보면 이희재 이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이희재 시리즈 2편으로 이어집니다. 준비중>

▲ 만화를 통해 부천과 끈끈한 우정을 맺고 있는 프랑스 앙굴렘 필립 라보(Philippe Lavaud) 시장이 2013년 8월 15일 제16회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중 부천시청 로비에 전시된 <제40회앙굴렘한국만화특별전> 전시장을 돌아본 후 이희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과 '하트'마크를 그리며 우정을 다지고 있다.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 앙굴렘 '지지않는 꽃'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친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희재 이사장이 박재동 자가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