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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2007년 04월 01일 (일) 00:00:00 유재근 시민기자 jku810@naver.com

부천타임즈: 유재근 시민기자
 
금년 들어 처음으로 3월 29일 목요문학나들이로서 부천 복사골 문화센타에서 1955년생 황대권씨가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가졌다.

   
약 100여 명의 수강생들과 모 통신사 두 곳에서 나와 취재를 하는 가운데 황 씨는 1998년 출옥한 이후 시골에서 친환경적 생활을 즐기고 있다면서 부천은 영화, 만화등 문화의 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자신은 김산호 씨의 '라이파이' 동호회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어려서 하도 만화를 좋아해 하루 종일 만화를 읽다가 일어설 때에 피가 역류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강연의 서두를 풀기 위해 영화로 근래 감상을 하였던 60년대 영화인 김승호 주연의 '마부'와  90년대 영화 '말죽거리의 잔혹사'로 이야기의 실마리 찾고자 한다고 하였다.

'마부'는 두 아들과 두 딸을 가진 마부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어렵게 끌어가는 김승호가 다른 아이들은 부모를 원망하면서 딸이 남자를 꾀거나 남동생은 쌈질 등으로 부모 속을 썩이는데 단지 큰 아들인 장남은 사법고시를 세 번이나 연속 떨어지다가 고시에 붙으면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해피 엔드로 영화가 끝나지만 그 시대의 삶의 모습들을 엿볼 수가 있어 지금으로 치면 아주 촌극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한 가치관을 엿볼 수가 있다.

반면 '말죽거리의 잔혹사'는 성장기 고교생의 폭력과 퇴학을 당하면서 재수하는 과정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 그 고교생이 대학을 못 들어갔거나 아마 들어갔다면 역시 사법고시를 공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하였다.

황씨도 사법고시를 치기 위해 고시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지만 국사 과목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역사가 아닌 오로지 고시 패스용 문답만 존재하며 이성계가 압록강 회군을 몇 년에 회군을 했느냐는 년대 외우기식이거나 강감찬 장군은 뭐하러 싸움에 이겨서 우리들 시험공부로 괴롭히냐라는 우스갯거리 강의에 회의를 느끼면서 중도하차를 해버렸단다.

자신은 유신시대 사람임을 밝히면서 박정희 대통령 18년 통치 기간 동안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나왔기에 군사적 통치 기간 동안 주입된 교육으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엉망으로 형성 되어 계속적 반항적인 생활로 그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실토를 한다.

그로 인해 고교 생활도 일탈된 생활의 연속이었고 대학 생활도 싸움질과 연애질 등 역시 일탈된 생활을 할 수 밖에는 없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유신 정치제도에 저항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하여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고 1980년 광주사태, 쿠테타 등으로 전두환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더 비전을 상실하면서 삶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우선 학교의 타이틀을 염두에 두고서 서울 농대 농업교육과를 졸업하였지만 경기도 발안쪽으로 모 농고 교생으로 실습을 가보고서는 학생들이 농업에 대한 관심이나 또는 대학에 들어 갈 생각이나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농고는 단순 쓸데없이 나돌아 다니는 청소년의 탈선 방지 역할 밖에 없다는 공허감에서 농고교사가 되기를 포기하였고 그 당시의 좁은 소견으로는 우선 먼저 정치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빠져 들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그 길을 찾지를 못하고 해외로 눈길을 돌리던 차에 당시까지만 해도 외국에 유학을 가려면 유학고시에 붙어야만 했는데 1982년도 부터 유학 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이에 편승하여 미국 뉴욕쪽 콜롬비아대학 정치과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황씨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전두환 정권에서 국내의 불만세력을 외국으로 내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는가 생각을 한다며 우스개 소리임을 사족으로 붙였다.

하지만 모든 인생살이가 새옹지마라고 자신이 택한 이 길이 자신이 감옥에 가는 길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간 가까이 하던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전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한, 일, 중, 북한 서적을 맘대로 접할 수가 있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가 못사는 것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못 벗어 난 우리 정치행태로서 우리의 원흉은 미국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빠져 주로 당시 미국과 저항을 하였던 쿠바, 베트남, 리비아등 일종의 제 3 세계 정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안기부 손에 이끌려 간첩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 상황은 학생들이 미문화원 사건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 되었을 때이었고 학생 배후로 지목을 당하면서 간첩단으로 무기 징역을 받게 되었다.

안기부 지하실에서 60일 동안 요즘 책에 나오는 고문은 전부 받아 보고 여태까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엘리트 코스만을 밟으면서 30세가 될 때까지 굶는다거나 또는 각종 시험 등의 실패를 모르고 살아 왔었는데 나를 키워준 체제에 대하여 반대를 하면서 내 인생은 내가 개척을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인생관과 세계관으로 일관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원치 않았던 다른 세계를 처음으로 체험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타도 대상으로만 여겼던 일개 말단 공무원인 안기부 직원 앞에서 온몸을 발가벗기 우면서 모진 고문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좀 죽여 달라고 손을 빌었다고 한다.

이제껏 잘나가던 유학생이 고문으로 온몸이 망가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가운데 외부의 도움은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독방으로의 격리 수용을 당하였다. 하루에 겨우 30분 왔다갔다 하는 운동이 전부였고 감방 안에는 식사용 플라스틱 밥그릇통만이 4개가 덩그란히 놓여 있는게 전부였다.

일반 죄수들은 독방 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고 책을 넣어 주면 수면제라 싫어하는데 자신은 비록 독방이라도 책만 넣어 주면 얼마든지 생활을 할 만하다고 하였다.

감방 안에 벽지가 누덜누덜 도배 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신이 처음으로 대하는 가톨릭 신문이었다고 한다. 단지 글을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뿐인지라 이것을 붙여 놓은 상태에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꼬면서 열심히 구독을 시작했었는데 이 곳에는 연재물인 가톨릭 순교자에 대한 내용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톨릭 순교자가 약 10,000명이 넘는데, 단지 안 믿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은 살 수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한 모습이 상당히 경이로웠고 가톨릭이 순교자의 종교라면 자신은 분단된 조국의 순교자라고 칭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만약 절도를 했다면 그 행위를 인정하여야 벌로 연결이 되는데 자신은 멀쩡한 사람을 때려서 간첩으로 만들어 놓고 인정하지도 않는 행위로 벌을 주고받았다고 하였다.

우스개 소리로 자신의 이름은 비록 '대권'이지만 대권 도전의사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자신을 간첩으로 모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다고 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간첩이 아닌 이유가 천 가지도 넘는데도 단지 그들에게 칼자루가 쥐어졌다는 이유 하나로 무죄를 단죄하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꽃 한 송이를 피우는데도 우주의 수만 가지가 동원이 되는데 아마도 그 이유를 알면 문학은 존재하지가 않으리라, 단지 과학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 이유를 모르기에 꽃을 이리 표현을 하기도 하고 저리 표현도 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째던 감옥은 종교의 자유만이 존재를 하는 곳이고 이는 종교가 범죄인들을 순화시켜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많은 재소자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가석방의 도구로 삼기도 하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도로아미타불이 되면서 제 발등을 찍는 수도 있다.  

하지만 황씨는 사회에 40년 믿을 것을 10년내에 믿은 것이며 지금은 교리 교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고 천주교 봉성회장이기도 하고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지만 이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짓지도 않은 죄값에 대하여는 지금도 수용을 하지 못하는 편이란다.

자신은 한약재인 야생초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는 살기 위해서 기르고 먹고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고 혹자는 '야생초 건강법'이라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7, 8가지의 병이 어느 것을 먹고 나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주변에 발로 밟히며 무더기로 사는 풀인 질경이, 개망초 등이 좋은 식품으로 구태여 골라 먹을 필요가 없다.

얼마 전에 맹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3일 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을 하면서도 의사가 항생제 처방을 주지 않기에 물어 보았더니 혈액검사를 한 결과 이미 혈액 속에 백혈구가 많이 형성 되어 있어서 구태여 약을 먹을 필요 없다고 할 정도였단다.

모든 동물은 자연 치유력이 있는데 인간만이 약으로 도움을 청하기에 자연 치유력(생명력)을 잃었고 예전 같았으면 이도 정치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 보았을텐데 이제는 생명력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고 한다.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70년 동안 그토록 사람을 바꾸려고 했던 사회주의는 줄줄이 망하였고 되려 독재및 생활 피폐를 초래했을 뿐으로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지금의 여러 유력 지도층 인사를 만나 보았는데 지금은 국회의원, 장관 등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절대로 사회를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가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으로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으로 생명 중심의 가치관이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은 감옥에 있는 동안 영어로 여러 나라 사람들과 편지를 교류하게 되었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작가 대접을 받으면서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글로 인한 구속이라며 전력 구명 운동을 편 결과 석방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며 감옥에 있는 동안 거의 하루에 한 통씩 정도로 세계의 문우들에게 쓴 편지가 오늘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란 책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도 아파트 농업을 일으켜 베란다에 상추, 오이, 고추, 가지 등을 심어 가계비를 줄일 수도 있고 거기에 지렁이 열댓 마리를 집어넣어 음식물 쓰레기를 잘게 썰어 넣으면 자연 분해도 가능한 것이다.

오로지의 물질주의는 모두를 망하게 하니 비록 지금 생태학 교과서는 없을지라도 생명정화 운동을 계속적으로 펼치면서 우리 모두 생태주의자가 되도록 노력을 하자.

▶황대권(1955년)▶서울농대졸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2006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2003년-황대권의 유럽 인권기행)
▶야생초 편지 (2002-년MBC 느낌표 선정도서)
▶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 (2002년-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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