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희(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옛날 옛적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둘이는 첫 눈에 반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고, 싸우고, 협상하고,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두 처녀총각은 서로가 너무 익숙하고 편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함께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지요. 살다보니 깨소금 쏟아지는 단꿈 같은 시간도 훌쩍 지나가고... 둘에게는 피곤에 지친 일상만 남아 속절없이 시간들만 흘러갑니다.

사람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이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요. 돌봐야 할 아이들, 치워야 할 살림살이, 예전같지 않은 몸의 노곤함, 늘어난 가족 대소사, 직장 일까지...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관계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한 둘은 예전처럼 서로를 따뜻이 보듬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것 무엇일까요? 소통? 배려? 나눔? 둘은 어느 순간 이런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여성의전화에서 무얼 하나 봅니다. 가볼까나?

“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 대충 먹기는 했는데, 시간 맞춰서 급하게 오느라 정신이 없네요.”
 “ 김밥 좀 드시구 차도 한잔 드셔요.”
 
평등커플모임에 오는 사람들에게 모임이 있는 날은 분주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커플과 시간을 맞춰서 만난 후에 대강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의 연령은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여서 어린 아이를 둔 부부는 아이 저녁도 해결해야 하므로 더더욱 정신이 없다.
 
오늘은 벌써 세 번째 모임을 하는 날이다. 커플모임이라고 하지만, 모두 부부가 짝을 이룬 커플들이어서 부부로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데 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여성의전화에서 커플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회원들 간에 종종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올해 들어서 비로소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서먹하기 그지없었던 첫모임을 열던 날, 6쌍의 부부가 참석하였다. 어색하게 여성의전화 문턱을 넘으면서 몸 둘 바를 모르는 남성회원들을 위해서 여성회원들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래도 힘들게 남편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무용담들을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났다. 회원들은 일단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소개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어떤 식의 소개를 할까 하다가 각자 생각나는 별칭을 짓고 소개를 하기로 했다.

여러 별칭이 있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별칭은 ‘옐로우카드’와 ‘외양간 소’이다.^^ 한 남편이 부인과 자신에게 지은 별칭인데, 모두들 왜 그렇게 지었는지 궁금해 했다.

남편인 ‘외양간 소’님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을 이야기 하면서 한마디로 부인에게 ‘있을 때 잘하라’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하였다.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였다. 부인에게 ‘옐로우 카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 때문에 자주 늦는 부인에게 축구 경기에서 선수가 반칙 때 내미는 노란카드를 인용하였다고 하니, 맞벌이 부부의 살아가는 애환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회원들은 모임의 문을 열고, 자리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여성의전화가 이 모임을 연 취지를 물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은 대부분 여성의전화 회원이다.

여성의전화에서 교육을 받거나 활동을 통하여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여성들은 나와 함께 가까이서 살고 있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여성주의를 접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누구와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등한 부부, 소통이 잘 되는 부부에 대한 이상향은 어느 부부나 갖고 있는 희망이자 바램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부부라는 단어는 ‘하나’, 혹은 ‘함께’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이다. 가족이나 부부가 주는 감정적인 교감이 만나는 지점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똑같을 수 있는가? 나는 오뎅이 좋으면 상대방은 떡볶이가 좋을 수 있듯이... 우리에게 가족, 부부라는 울타리는 ‘다름’이라는 방식을 쉽게 허용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양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따로 또 같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각자의 커플들이 함께 할 때는 치열히 사랑하고, 각자 자기 영역에서는 열렬히 삶을 살고, 그 옆에서 그런 상대방의 모습을 지켜봐주고 이해해주고 허용하는 것....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너무 의존적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 즉 나에게 힘이 있을때 상대방을 안을 수 있는 힘도 있기 때문이다.
 
커플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오늘 강사이신 김미화 선생님이 말을 건다. “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장점을 최대한 나열해 보세요.”라고. ‘상대방에 대해서 항상 흠잡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의 단점만을 열거했던 나는 진정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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