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타임즈: 유재근 시민기자

이제는 오랜 실직의 생활로 굳은 살이 박혀 가는 시점이다.
내 생애 실직 후 최장 기간인 1년 8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이제는 노동부에 구직활동을 접은지도 꽤 오래 되었다. 어찌보면 옛 직장에서의 화려했던 생활이 새 직업을 찾아나서는데 내 발뒤축을 잡아 당기는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직장에서의 정년퇴직 나이도 지났고 나라 경제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으니 실업을 시국 탓으로 돌려 버림이 깊은 마음의 병도 얻지 않으리라.

며칠전 내 방 안에 들어서니 A4 용지에 프린트된 '관리직 구인' 광고지가 파란 청테이프를 매단 채 놓여 있었다. 모전자 회사에서 나이 34~59세의 인력 채용및 교육담당 채용공고였다.

딸에 물어 보니, 딸이 전신주에 붙어 있는 광고지를 아빠가 생각이 나서 띠어 왔다고 한다. 전신주에의 채용공고및 폭 넓은 나이대 구인광고가 안가서 보고도 뻔한 노릇이지만 부천에서 가까운 인천 남동공단 근처인 지라 그저 바람이나 쐴겸 미쪄봐야 본전이란 생각에 한번 그냥 들려 보기로 했다.

구인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전 11시에 약속 시간을 잡고 전화 안내하는 분의 말에 따라 인근 농수산물센타에 내 차를 주차시켜 놓고 외환은행 소재의 빌딩을 올라 가니 사무실 문 앞에 '신입사원 모집' 안내 표지판과 몇 명이 늘어선 구직자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데스크에 앉은 사람에게 떼어 온 A4용지 관리직 모집 광고전단을 보여 주니 통화자 성함을 아느냐고 묻길레 통화자가 단지 여성분이라는 것만 알고 왔다고 하니 사무실 안으로 확인 전화를 넣으니까 한 40대 후반의 여성이 나와 나를 사무실 안으로 인도를 한다.

그 여성이 바로 자신이 채용 면담자라며 그녀가 나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드시겠냐는 주문에 나는고개를 끄덕여 피면담자 자리에 앉으며 사방을 둘러 보니 꽤 넓은 사무실 공간에 여러 책상들이 빼곡히 들어 찬 가운데 젊은이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고 나처럼 머리 희끗거리는 중노인들만이 많이 보이며 책상 군데군데에는 '본부장' 팻말들이 눈에 많이 들어 온다.

지난 여름에는 노동부에서 나온 구인 광고를 보고 서울에 올라 갔다가  W판매회사의 많은 철제 의자들에 앉아 몇 마디 나누어 보다 되돌아온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제대로 된 사무실 의자를 겸비하고 있어 그나마 분위기는 좀 나은 편이었으나 여기저기에서 채용 면담이 이루어지는 모습들은 별반 다른 바 없었다.

면담 여성분의 회사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들어 보니 전자 가전 부품및 정수기를 제조 판매하는 C 라는 회사라며 내가 마음에 꼭 드니 3 일간 당사교육을 받고 진로를 정해달라고 하기에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할 뜻이 없다며 나의 진심을 밝히고 등을 돌려 나왔다.

어차피 이 곳에 오면서 큰 희망을 걸지는 않았던 처지인 지라 그냥 담담하게 그 외환은행 빌딩을 나와 내 주차가 된 농수산물센타를 향해 걸어 가려는데 건물 밖 도로에서 간이 데스크를 설치 해놓고 오로지 광고지에 의지한 휴대폰 판매 호객꾼이 나의 눈길을 끌며 갈길을 가로 막아 선다.

어차피 실업자의 생활은 차고 넘치는 것이 시간인 지라 그들 중에 한 명을 따라 나서니 그가 다시 외환은행 1층으로 로비로 인도하며 그가 들려 주는 설명인 즉, 내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휴대폰을 S 이동통신사에서 L 이동통신사로 용처를 바꾸면 단말기및 가입비를 안내게 해주면서 휴대폰 최신형 모델로 바꿔 주겠다는 내용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구형 휴대폰 모델을 6년째 사용하고 있던 터라 어차피 휴대폰을 새 카메라폰(긴급 현장사진 촬영시 요긴)으로 개비하고 싶었던 터라 때마침 적시에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얼마 전에도 카메라폰으로 개비할 기회가 있었지만 카메라폰 제조업체가 유명도가 떨어져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은 상태였었다. 물론 휴대폰을 공짜로 주는 것은 이동통신법에 저촉이 되므로 기본요금을 낮춰 2년간 사용하는 조건이 붙기는 하였지만 나야 어차피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니 그리 걱정될 것은 없는 편이었다.

130만 화소에 1,000명 전화인명부 저장 가능에다 음주측정및 MP3 기능까지 요즘의 최신형 단말기로 이 카메라폰으로의 개비는 그야말로 농촌에서 때묻은 바지를 입다가 새 양복을 사 입은 기분이었다.

신형 카메라폰로 개비 후 주위분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어느 분은 나와 똑같은 카메라폰을 나와 같은 조건으로 개비를 했는데 나와 같은 조건에서 그 분은 가입비 35,000원 추가로 내었다는 말에도 나는 상대적 즐거움을 맛보았었고 더욱이 가까이 지내는 젊은 아낙이 전화로 '어머! 휴대폰 컬러링이 나오는 것을 보니, 손전화기를 바꾸셨나보네요.'라는 묻지도 않은 화답이 역시 나를 즐겁게 한다.  일반적으로 이전의 휴대폰 단말기값을 얼마씩 쳐주기 마련인데 내 것은 가치가 전혀 나가지 않으니 그냥 천연 기념물로 잘 보관해 두라며 그냥 내게 건네준다.

개비한 휴대폰에 지인들 휴대폰 전화명부에 모두 입력을 시켰고 몇 천원이 아까워 발신자 추적 기능도 신청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전화가 걸려 오면 발신 통화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먼저 뜨고 무척 편리하기는 한데, 내가 전화를 걸 때에도 이제는 전화명부에 이름만 누르면 되니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 되어 있던 친한 지인들 전화번호까지도 옛 휴대폰과 더불어 내 옛 추억 속으로 같이 묻혀 버릴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