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기자    

▲ 중앙일보 8일치 <중앙시평>칼럼. ⓒ2004 중앙일보PDF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두고 여야간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중앙일보> 정운영 논설위원이 대학동기인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나라를 위해 변절하자'는 칼럼을 써 관심을 모았다.

정 위원은 8일치 신문의 <중앙시평> 칼럼을 통해 "나의 초조는 외자에 의한 국내 기업 초토화에 있소이다"라며 "그러니까 한국 경제의 초미의 현안이-이를 테면 주적이-바뀌었다는 생각이고, 80년대의 풋내 나는 도식을 빌리면 반자본의 피디(PD)에서 반외세의 엔엘(NL)로 '변절한' 것이지요"라며 일부 지식인의 정 위원 자신에 대한 비판을 '변절'로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강철규 위원장에게 "K위원장의 관심은 재벌의 탈선에 있는 듯하오"라며 "소관 부서의 임무가 그렇다는 변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 공정위는 한국 경제를 위한 공정위지 공정위를 위한 공정위가 아니기 때문이오"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글 마지막에 "자신의 변절은 술자리의 안주감이지만, 나라 경제를 위한 K 위원장의 변절은(?)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소"라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양보를 촉구했다.

"나의 변절은 술자리 안주감이지만, K위원장의 변절은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재벌의 버릇은 고쳐야 하지만 한층 더 절박한 숙제가 우리 기업을 지키는 일이란 말이지요. 그런데도 K형은 여전히 재벌을 탓하고 나는 외자를 걱정하다면, 당신이 보수가 되고 내가 개혁이 되는 셈이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빌려 우리 조금씩 생각을 바꿔보기로 합시다. 나의 변절이야 주석의 안주감이지만, 나라 경제를 위한 K위원장의 변절은(?)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소."

이에 앞서 정 위원은 글 첫부분에 강 위원장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인연을 빌미로 이런 글을 쓰자니 다소 민망한 것이 사실이오"라며 운을 뗀 후, "우리가 입학한 1964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를 밑돌았고 모두가 배가 고팠소. 그때 전쟁의 잿더미를 전후 성장의 신화로 바꾼 라인강의 기적을 본떠 군사정부가 내건 '한강의 기적'기치는 젊은 우리를 질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당시 서울대 64학번 동기들이 관리로 나간 사람이 많았다면서, 이기호 전 청와대경제수석을 비롯해, 이석채 전 정통부장관, 한이헌 전 청와대 수석,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과 학계로 간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서울 시립대 교수)과의 인연을 적었다.

강 위원장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이나 사회에서도 중용을 걸어왔다고 평가한 정 위원은 "그제나 이제나 껄렁껄렁한 나는 당신보다 다소 '래디컬한'쪽에 있다고 믿었는데, 이것이 뒤바뀌고 말았소"라며 "내 편이냐 아니냐를 유난히 따지는 이 정권 아래서 K위원장은 개혁의 선봉이고, 나는 수구 논객으로 몰리니 말이오"라고 전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오?" - "대응할 생각 없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 관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한국기업인의 비자발급을 제한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삼성전자나 포스코가 한국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제에 혈액을 공급하는 은행들이 넘어가고, 황금 알을 낳는 기업들을 내주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오"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정 위원은 이같은 문제를 두고 "출자 제한을 풀어주고, 금융 계열사 의결권을 인정하는 '쉬운'길이 있지 않소"라며 "물론 재벌의 금융 계열사 의결권은 인정하라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부가 투입하려는 연기금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라는 재계의 욕심에는 혀를 찰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외자는 펄펄 나는데 우리 기업은 제힘만큼 걷는 것도 막는 '역차별'은 나라 경제의 대계를 위해 옳은 궁리가 아니지요"라며 정부가 추진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수정을 재차 요구했다.

한편, 정 위원의 이번 칼럼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언급 자체를 꺼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위원장께서) 공인으로서 신문사 칼럼마다 대응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별도로 대응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대학동기라는 분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이라며 "공정위는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의 수정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