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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사전망대-1] 윤희상의 '희망'
지금까지, 한 번도 앞으로나란히를 해보지 못했다
2021년 01월 04일 (월) 09:46:49 이종섶 mybaha.naver.com

희망

윤희상 

여자아이는 앞으로나란히를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앞으로나란히를 해보지 못했다
많은 아이 가운데, 가장 키가 작았다
언제나 맨 앞에 섰다

졸업식 날 펑펑 울었다

   
▲ ⓒ부천타임즈

새롭게 시작하는 詩사전망대 첫 시로, 더불어 새해를 시작하는 첫 시로 윤희상 시인의 「희망」을 선택했습니다. 제목이 "희망"이어서 새해에 잘 맞는 시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에서는 그 "희망"이 이뤄지지 않아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아서, 그런 "희망"을 품지 않게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도 새해 첫 시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시입니다.

"여자아이는 앞으로나란히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앞으로나란히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아이 가운데, 가장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월요일 1교시에 학교 운동장에서 애국조회를 할 때마다 "언제나 맨 앞에 섰"습니다. 

   
▲ 앞으로나란히

조회를 할 때 체육 담당 선생님이 줄을 맞추기 위해 "앞으로나란히"를 반복해서 구령할 때마다 "언제나 맨 앞에" 서는 아이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자기 앞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나란히"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맨 앞에" 있는 아이는 "앞으로나란히"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애국조회 시간에 줄을 맞출 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은 한편으로는 편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창피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줄서기를 할 때 언제나 키순으로 서야 했기 때문이었으며, 심지어는 매년 봄 신학기가 되어서 학급의 번호를 매길 때도 키순으로 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앞에 서는 아이들은 왠지 구경거리가 된 것 같기만 해서, 부끄러움에 어쩔줄 몰라 했던 마음을 간신히 참아야 했던 기억이 학년 초마다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희망은 '졸업 전에 나도 앞으로나란히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키가 크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어서 결국 졸업식 때도 제일 앞에 서고 말았습니다. "희망"이 무참하게 깨져 "졸업식 날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남들은 졸업하는 것이 아쉽고 슬퍼서 운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졸업식 날"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었습니다.

   
▲ ⓒ부천타임즈

누가 이 "여자아이"에게 이런 "희망"을 갖게 했을까요? 누가 이 "여자아이"로 하여금 "졸업식 날 펑펑 울"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키순이라는 암묵적인 제도이자 형식이었습니다. 키라는 외모와 외견을 통해서 사람을 규정짓고 조직화하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었습니다. 

과거 고등학교는 군사훈련을 시키는 교련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애국조회는 교련조회를 겸하면서 조회가 끝나면 '분열'을 하면서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에 이런 교련 수업이 있어서 그랬는지, 고등학교에서는 키순이 더 극대화되었습니다. 

키가 제일 큰 아이가 제일 앞에 서고 키가 제일 작은 아이가 제일 끝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교실에 모인 첫날 번호를 정하면서 키 작은 아이들을 뒤로 보내는 선생님 호령을 들을 때면 키 작은 것이 왠지 죄를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키순으로 줄을 서게 하고 키순으로 번호를 매기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그 자체로 비본질적인 권위를 앞세운 비인격적 폭력입니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키를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일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에 이어 ,<이종섶의 詩사전망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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