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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사전망대-2] '황제팽귄'들의 '허들링'
황제팽귄들이 "기댈 곳은 군집의 체온뿐"
2021년 01월 11일 (월) 10:42:20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허들링
강신애


온기 밭아가는 빙설의 몸을
나사 모양으로 당겨
안으로 감아 녹이는 황제팽귄들

기댈 곳은 군집의 체온뿐

배와 발등 사이에 알이 끼여 있다 

사 개월 눈만 먹고 버티는
수컷들의 저 빽빽한 포란에
블리자드 날카로운 채찍도 빗겨가리

허들링은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였다

   
▲ ⓒ부천타임즈


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북극 한파라는 말로 표현되는 강추위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거기다가 코로나까지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서 이 한파가 언제 끝날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때에 강신애 시인의 시 「허들링」을 읽어보는 것이 참 적절하다 싶습니다. 「허들링」은 남극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이겨나가는 "황제팽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허들링은 남극의 강렬한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 황제팽귄들이 "나사 모양으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바깥에 있는 황제팽귄들이 안에 있는 황제팽귄들을 보호하는 집단 행위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밖에 있는 황제팽귄들은 서서히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는 황제팽귄들은 서서히 밖으로 나오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의 체온을 지켜주는 것이 허들링입니다. 

황제팽귄들의 이런 허들링을 강신애 시인은 "온기 밭아가는 빙설의 몸을/나사 모양으로 당겨/안으로 감아 녹이는 황제팽귄들"이라고 했습니다. 남극의 추위 속에서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댈 곳은 군집의 체온뿐" 이라서 비좁게 붙어 있는 황제팽귄들의 체온과 체온을 사슬처럼 이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남극의 강추위 속에서도 알을 낳고 알을 품으면서 알을 부화시키는 일은 생명의 존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것처럼 감동적입니다. "배와 발등 사이에 알이 끼여 있"는 상태로 "사 개월 눈만 먹고 버티는/수컷들의 저 빽빽한 포란" 앞에서, 거센 눈보라를 동반한 차가운 강풍 "블리자드"의 "날카로운 채찍도 빗겨"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부천타임즈

남극의 강추위에 맞서면서 알을 품는 포란까지 하는 황제펭귄들의 "허들링은/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였다"고 강신애 시인은 말하는데요. "날카로운 채찍"에 맞서는 황제팽귄들의 집단행동은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며 또한 그런 움직임이나 행동을 "놀이"로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채찍"은 "채찍"으로 맞서야 하고 "놀이"는 "놀이"로써 "놀이"와 함께 진행이 되어야 자연스러울 텐데요. 그런데도 "날카로운 채찍"에 맞서는 황제팽귄들의 행위는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일 뿐입니다. 말 그대로 채찍에 채찍으로 맞선다면 싸움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요. 

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올 때 똑같이 싸운다면 그 싸움 역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상대가 걸어오는 싸움을 대하는 자세가 "놀이"라면 그 놀이야말로 상대의 싸움을 잠재울 수 있는 진정한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북극 한파가 몰려오는 지금의 추위도 추위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도 삶의 온기나 가정의 온기나 세상의 온기를 빼앗아 차갑게 식혀버리는 추위가 종종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부천타임즈

황제팽귄들이 "기댈 곳은 군집의 체온뿐"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시도 '기댈 곳은 가족의 체온뿐'이라는 것을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모여서 함께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가정이야말로 허들링의 본질이 구현되는 본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배와 발등 사이에 알이 끼여 있"는 상태로 "사 개월 눈만 먹고 버티는/수컷들의 저 빽빽한 포란"이 허들링의 중심이자 핵심임을 기억하면서, 자식을 위하는 아버지들의 부성애가 사랑과 인내로 나타나 더욱 깊어지면서 힘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허들링을 할 때 닥쳐오는 것은 “블리자드 날카로운 채찍”밖에 없음을 알지라도, 그것을 마주하는 진정한 맞섬은 똑같은 방법으로 채찍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지혜를 갖추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일과 행동이 하나의 "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그 "놀이"에 맞는 상황이해와 태도와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블리자드"에 맞서는 집단의 행동이, 온기가 전혀 없는 '군집의 분노'가 아닌 온기가 가득한 "군집의 체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립과 대결은 자신이 속한 "군집의 체온"이 결코 아니요, 상대하는 "군집의 체온"도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남도 "채찍"보다는 "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채찍"을 들거나 "채찍" 같은 말을 하는 순간 "허들링"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리거나 그동안 지속해왔던 형태가 "허들링"이 아니었다는 것이 허무하게 증멸될 뿐입니다. 평안한 시대에 "놀이"를 하기는 쉬워도 환경적으로 칼바람이 이는 추위 속에서 "놀이"를 하기는 어렵고, 사회적으로 "채찍"을 내리치는 시대에도 "놀이"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진정 지향할 바는, 추위와 맞서는 동안 남극의 황제팽귄들처럼 그 추위를 "안으로 감아 녹이는" 행동이 삶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허들링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눈보라를 동반한 찬바람의 매서운 광풍은 언제고 되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있는 한 또 세상이 있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성질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허들링" 또한 그때마다 나타나 시행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 보존과 승리의 법칙과 행동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허들링을 이루고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완전한 생명에서 나오는 완전한 집단의 생활과 삶과 행동이 무엇인지 증명받게 됩니다. "블리자드"를 물리쳐 없애버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때마다 닥쳐오는 "블리자드" 앞에서 집단의 "허들링"을 보이면서 이뤄내기만 하면 그 자체로 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이기는 것입니다. 

   
▲ ⓒ부천타임즈

이 시대는 가짜 허들링이 참 많습니다. 모조품 같은 허들링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포란"이 이뤄지지 않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채찍"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채찍"을 들 궁리만 합니다. "채찍"에 맞서 이기는 것이 "놀이"라는 사실을 아예 짐작조차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몰아치는 강추위와 맞서는 참된 허들링이 가정에서 배워지고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꿈이 우리의 포란입니다. 그 포란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사 개월 눈만 먹고 버티"며 살아야 한다고 해도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 개월"이 아닌 '사 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허들링 속 "포란"만 가능하다면 '사 년'을 며칠처럼 쉬 견뎌낼 수 있으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에 이어 ,<이종섶의 詩사전망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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