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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을 왜 '복사골'이라 부르는가?
복사골의 명칭유
2004년 03월 11일 (목) 00:00:00 최현수 기자 bicfun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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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이란 말은 ‘복사꽃(복숭아꽃의 사투리)이 피는 고을(마을)’의 준말로 부천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굳이 한자로 표기하자면 도화촌(挑花村)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숭아나무는 장미과에 낙엽 교목으로 높이는 3~6m 정도이고, 잎은 어긋나며 피침형, 도피침형, 타원상 피침형으로 톱니가 있다. 4~5월에 담홍색의 꽃의 꽃잎보다 먼저 피고, 열매는 7~8월에 익는데 맛이 좋아 식용으로 쓰이고 종자는 약용으로 쓰인다.

도(挑), 도화(挑花) 등의 한자로 쓰기도 하는 복숭아나무는 중국이 원산으로 일찍부터 재배되었으나 품종이 개량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이다.

복숭아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이 있는 것으로, 이런 의미에서 말미암아 복숭아는 다른 과일과 달리 제사상에 올리지 않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연말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어 잡귀를 축출하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 초기 문장가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궁중에서 행하는 이런 악귀 퇴치의 행위를 ‘구나희’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는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전설에서 유래된 장수의 의미이다. 천도복숭아는 하늘에서 열리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 전설에서 유추하여 복숭아가 장수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복숭아의 빛깔에서 유추된 간사하다는 의미가 있고, 태몽으로는 아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국산과는 다르지만 전국 각지에 야생 복숭아나무가 있었으며, 우리 고장에도 이전에 성주산을 중심으로 야생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복숭아나무는 배수가 잘되는 남향, 남동향, 남서향의 완경사지가 재배하기 좋으며, 연평균 기온이 섭씨 11~15°되는 지방에서 잘 자라고, 최적의 생육조건은 섭씨 20~30°의 온난기후가 최적지이다.

   
이런 복숭아의 꽃과 나무가 부천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이다. 그리하여 부천을 ‘복사꽃이 많은 피는 고을이다’ 하여 복사골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 고장에 개량된 복숭아나무가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강토를  짓밟기 시작한 1900년대 초부터이다.  일설에 의하면 1903년 인천역장을 지낸 일본사람 다케하라가 재배하기 시작하여 일본인들이 대거 심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1900년대 초 토지조사사업 등의 명목으로 총독부를 등에 업고 우리 국토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그들의 구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였는데 그 때 우리 지방에서는 복숭아나무가 재배된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일제가 청일전쟁을 치뤘고, 러시아와 일본간에도 팽팽한 긴장이 감돌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수물자와 군인들의 먹거리 조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였다.

 복숭아는 1925년경부터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 부천의 복숭아는 이 때부터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고장의 복숭아는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와 함께 경기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가장 맛있는 세 가지 과일(경기삼미)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의 3대 과일로서 구포의 배, 대구의 사과와 함께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 때 생산된 품종을 보면 단물이 많은 조생수밀도를 비롯하여 천진, 기영, 유핵조생종, 사용, 소림, 상해중생종, 백도, 명일, 금도만생종 등 10여 종에 이르렀다.

이렇게 생산된 복숭아는 경제적․지리적 조건에 힘입어 <소사명산>이란 이름을 붙여 서울의 남대문시장․신의주를 비롯하여 만주의 안동․봉천까지 출하하기도 한 명물이었다.

1930년 기록을 보면 150정보(45만평)에서 연간 30만관(1,125톤)을 생산하여 호황을 이루었고, 1970년을 최고의 절정으로 하여 이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우리 고장에서 복숭아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부천이 도시화되면서 복숭아밭이 아파트와 공장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복숭아나무가 우리 고장사람들에 의해 처음 재배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재배조건이 맞았고, 한 때는 <소사명사>으로 전국에 이름을 날렸던 복숭아가 1980년대부터 ‘복사골’이란 명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복사골이 부천을 대표하기에는 상징성과 주체성에서 미흡하다는 주장도 있고 보면, 이 보다 더 유서깊고 상징성 있는 명칭을 기대해 본다.

▒ 최현수 :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천교육청 초등3학년 사회교과서 <우리가 사는 부천시> 감수위원,  중등교과 심의위원, 중등교재 <우리 고장 부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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