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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띄운 편지
2007년 05월 21일 (월) 00:00:00 박정필 시민기자 daum nogo0424

박정필(시인) 
 
우리 사회가 산업화로 진입하면서 전화, e메일, 핸드폰 등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편지를 쓰는 일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면 아예 ‘아날로그 세대’라고 조롱감이 되는 세태 속에 살다보니 나 역시도 편지를 써본 일이 생소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러나 오늘만큼은 디지털 세대에 대해 도전적으로 당신께 처음 편지를 써 보렵니다.

   
요즘 남쪽 지방은 신록의 5월인데도 마치 여름처럼 더운 날씨입니다. 떠나올 때의 우려와는 반대로 교통의 발달과 도시화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어 지방에서의 생활도 도시와 별차이가 없이 아무런 불편없이 생활하고 있네요.

인천 버스터미널에서 별리의 정이 아쉬워 눈물을 훔치던 당신의 가녀린 모습을 멀리하고 총총히 떠나온 지 어느덧 한 달입니다. ‘인천과 전남’, 먼 거리를 두고 서로 따로 산다는 게 비단 우리만의 운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떨어져 살아보니 새삼 ‘기러기 부부’보다는 ‘주말 부부’가 한결 낫지만 그래도 날마다 함께 하는 삶이 더욱 행복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타고 난 나의 역마살 탓인지 다른 사람보다 직장이동을 자주 하다 보니 그동안 얻은 것도 많지만 반면 잃은 것도 적지 않은 것 같구려. 이번에는 특히 당신을 많이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오. 해마다 경기도내 이동에만 관심을 가져오다가 뜻밖에 멀고 먼 전남 영암으로 인사발령이 나자 놀라워하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직장인은 대부분 ‘정착과 안정’을 구하는데 나의 ‘이동과 변화’를 지향하는 버릇은 팔자소관이 아닐까합니다. 당신과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쩌겠소 공복으로써 주어진 사명에 충실할 수밖에…. 그저 이런 환경이 새옹지마처럼 복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오.

하지만 공기 시원한 곳에서 근무하는 즐거움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의 부재가 더욱 느껴집니다. 업무가 끝나고 부리나케 숙소로 달려오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를 반겨주는 건 그저 조용한 어둠과 적막감 뿐이구려. 잠자리에 들 때면 당신의 체온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가끔 부질없는 생각이 밀려올 때면, 어릴 적 추억과 신혼 때 당신이 들려주었던 꿈 많은 소녀시절 이야기들을 반추해보면서 불면의 밤을 지새웁니다. 그러다 깊은 잠에 빠져들면 아침 6시를 알리는 알람소리에 놀라 일어나곤 하지요. 이게 나의 일상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내 나이 34살, 당신은 28살 되던 해 천생연분이 되었으니 부부로 맺은 우리의 인연이 어언 27년이 되었네요. 하지만 남들처럼 멋지고 달콤한 사랑의 향기를 전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구려. 결혼하던 해 아들녀석이 태어났고, 제 오빠와 띠동갑인 늦둥이 딸을 낳아 두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우리의 황금같은 세월이 쏜살같이 스쳐가버렸군요.

이제는 애지중지하던 아들마저 훌쩍 자라 우리 곁을 떠나니, 더욱 공허감이 커져갑니다. 직장생활하며 아이들 뒷바라지에 늘 종종거렸던 당신은 나보다도 더 허전함이 크게 느껴질 것 같군요.

“여보, 남편과 아이들 위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어요!” 어쩌다 내가 승진문제로 좌절하고 상심할 때도 당신은 언제나 "괜찮아 힘내" "못하면 어때"하며 환한 미소로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었고, 위로해 주었지요. 물론 속내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사는 것이 뭔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고 고민할 때도 "속고 사는 게 세상살이지, 기죽으면 안 돼"라고 달래주며 격려해주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직장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사표를 내겠다"고 하자 당혹해 하면서 “가족생각은 없느냐”고 반문했을 때 난 ‘남편 고통’을 전혀 이해 못해준다며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화를 절제하지 못한 채 당신의 가슴을 멍들게 했지요.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누구나 자신에게는 무감각할 정도로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언어폭력을 써 피눈물나게 한 상사를 더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면교사로 삼겠습니다. 기껏 3년 남은 공직생활을 깨끗하고 성실한 자세로 잘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순 나이에 드니 왠지모를 초조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네요.
“여보, 이제는 남의 큰 것만 보지말고 우리가 이룬 작은 일에도 감사한 생각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갑시다.” 내 영원한 동반자며, 유일한 사랑은 당신뿐입니다.

2007년 5월 22일 .   부부의 날에

   

박정필 시인은 순수문학 예술세계로 등단했으며 경찰문예대전 시 부문 입상,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 협회 회원입니다. 2006년 12월시집 <갈꽃섬의 아침>과 수필집 <오늘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를 출판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저서로는 시집 <숨죽여 뛰는 맥박>을 비롯해 <섬 안의 섬>, <꽃과 생명>, <세상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또한 부천타임즈 제정 제1회 시민기자상(2007년1월10일)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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