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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근 시민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 기행
2007년 04월 07일 (토) 00:00:00 유재근 시민기자 jku810@naver.com

부천타임즈: 유재근 시민기자

카자흐스탄으로 8박 9일의 여행에 앞서 우선 인터넷으로 카자흐스탄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니 러시아 언어와 카자흐 언어를 사용한다는 지식을 얻고 카자흐어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루기스스탄 정도나 겨우 통용되나 러시아어는 동유럽권까지도 영향력이 있음을 파악하고 카자흐스탄에 파견되기전 3 주간을 이용하여 러시아어에 대하여 약간의 맛 만이라도 보고 가기로 하였다.

러시아어를 3 주간 공부를 하면서 영어와 유사한 단어들이 존재함을 깨닫고 약 100 단어 정도를 정리하여 쉽게 들어 오는 단어들 부터 머리 속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유용하게 써먹었음은 물론이다.

3월 29일 저녁 하늘은 기상 사정이 좋지를 않아 바람의 역풍으로 인해 카자흐스탄의 시차가 우리나라보다 3시간이나 늦음에도 그 곳 시간으로 12시간이 넘어서야 도착을 하였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 짐을 찾는 벨트라인은 3개가 있고 한쪽 벽 귀퉁이에 자그막하게 우리 짐이 1번 벨트에서 나온다는 자막이 있었지만 벨트는 오로지 2번, 3번만이 돌아 가고 있을 뿐이었다.

   
▲ 카자흐 전통복으로 마중 나온 공항 객사
한참을 기다려 2번에서 한 짐을 찾고 나중에 3번에서도 같은 비행기 짐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양쪽을 왔다 갔다 하다가 3번 밸트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한참만에 짐을 찾아 공항 로비로 나가니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도움을 주기로 약속된 분들이 마중을 나와서 나를 환영해준다.

몇 사람은 카자흐 현지 전통복을 입고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면서 공항 밖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여 함께 찍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한글로 쓴 글씨의 플래카드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

숙소에 늦게 도착을 하여 이 곳 현지분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새벽으로 닫고 있었고 이국에서의 잠자리는 집만은 못하기에 한 시간여 밖에 눈을 못 붙인 듯하다.

이 곳 알마티란 곳은 영어의 표현이고 예전에는 알마타라고 불렀으며 한국에서 비행기로 기착하는 오직 유일한 도시로 10 년전까지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북쪽에 이스타나로 옮겼고 그 전에는 알마타(Alma-ata)로 '알마'는 '사과'란 뜻이고 '아타'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사과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마티에서 예전 대통령 궁은 알마티 시청으로 쓰고 있고 지금은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단지 행정부서만이 수도인 이스타나에서 옮겨서 집행되고 있다.

이 곳의 지명은 모두 카자흐어로 지어져 있고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러시아계를 비슷한 소수민족들은 카자흐어를 할 줄 모른다.

러시아어는 알파벳이 33개이지만 카자흐어는 40개도 넘는데다가 발음도 용이하지가 않다. '감사합니다'를 러시아어로 '스빠시바(CПaCИбO)'라고 할 때는 자연스럽게 넘어 가다가도 내가 카자흐어로 '라끄멧(PaXMeT)'라고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건네면 십중팔구 그 들은 경이로운 눈치로 웃음을 건네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침불락이란 스키장으로 차를 끌고 올라 갔다. 이 곳 알마티란 곳은 타란 곳은 800~900m의 고지로 북한산 꼭대기 보다는 높은 곳인지라 선잠을 잔 덕에 피로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침불락 스키장(좌)-실크로드(우)
침불락은 케이블카가 3 단계로 나누어져 정상까지 운행을 하는데 한구간 마다 한국돈으로 약 5천원씩을 주고 타야 하니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추가로 스키타는 비용까지 내야 하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가는 이 곳에서의 고급 스포츠 임에 틀림이 없다.

안개가 많이 끼었고 눈도 많이 내리며 케이블카가 쉬지도 않고 빨리 달리기에 승하차시에 상강한 주위를 기우려야 함은 물론이고 케이블카의 의자가 모두 거의 젖어서 의자를 골라 탔는데도 바지 엉덩이 부분이 다 젖었고 다행히(?) 제일 높은 구간은 케이블카를 운행하고 있지를 않아 더 이상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침불락 3,186m 최고지중 거의 2,900m 정도는 올라간 셈이었다.

바지도 척척해진데다가 눈바람 때문에 살속으로 추위가 파고 든다. 집에 와서 바지를 갈아 입고 오후에는 알마티에 있는 박물관에 잠시 들려 그들의 역사 탐방의 기회를 가졌다.

이 곳에서 만남을 가진 몇 분과 서로 명함을 교환하다 보니 이들은 명함 이름에 성, 이름과 더불어 아버지 이름까지 함께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우리가 옛날에 누구집 몇 대손을 따졌듯이 자신의 이름 속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 가다 보니 족보로 조상 찾아 가기는 어렵지는 않을 듯 싶다.이들 이름 가운데 '알렉산더'란 이름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을 애칭으로 '샤샤'로 부르고 있었다.

뒷산에 올라 케이블카를 타고 성지를 둘러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Bergan and Cara'를 감상하였는데 이는 카자흐의 전통극으로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사랑이야기의 줄거리식이었으나 즉흥 대사도 많이 들어가 생동감을 많이 주었고 로미오역의 남자만이 죽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2차 대전중 맨몸으로 탱크에 맞서 싸웠다는 28명의 전사들을 기리는 Panfilov공원을 둘러 보고 공원내에 있는 라시아 정교 안으로 들어 가 보니 대부분이 러시아계 사람들이 분볐고 성당 안에는 예수님의 상이며 분위기는 거의 우리나라 성당 분위기와 흡사했다.

저녁에는 알마티 공항에서 전통 카자흐복으로 맞아 주었던 '사마트'란 이름의 남자아이와 '사울리'란 여자 아이의 어머니으로 현직 교감 선생님이신 할렌 카렌씨의 저녁 초대를 받아 갔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양자를 하나 들였고 그 젊은이는 레슬링을 한다고 하였으며 특히 할렌 카렌씨의 밝은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음식은 무려 6차례나 나오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들에게는 우리의 유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문화가 생활 속에 배여 있었고 식사 전후에 손을 모아 손바닥으로 하늘에서 복을 받아 얼굴을 씻는 의식을 가졌다.

어느 하루 오전에는 중앙 박물관을 관람하였는데 1층에서 4층에 까지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1층에는 이 곳에서 토출된 화석 종류와 완성 동물을 그려 그 곳에 뼈 맞춤을 하였고 카자흐 전통집인 유르따, 특히 4층에는 카자흐 독립기념관과 우리나라 전시관이 크게 자리를 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와는 1992년 1월 28일 수교를 하였고 이들의 대문호 아바이 시인에 대해서도 많은 할애를 한 것으로 보아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오후에는 고려일보사에 들려 약간의 인터뷰와 그들과 사진도 찍었다.  고려일보는 1923년 창설이후 이제는 웬만큼 자립도가 생겼고 매주 금요일에 1회 발행되는 실제는 주보로 16면중 4면을 한글로 할애하고 있으며 약 3,000부를 발행하고 있고 카자흐스탄 16개의 도에 모두 기자를 파견하고 있으며 주종사자는 30명 정도이나 실제는 퇴근후 직장인및 대학생들을 포함 약 1,000여명 정도가 고려일보 발행에 동참을 하고 있으며 모스크바및 구소련 연방, 남북한과 정보 공유및 특히 고려 청년회 운동에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금년 5월까지 1937년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이 곳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후의 70주년 기념회를 16개 도를 돌아 가면서 열고 있고 향후 3년및 5년 후의 사업계획을 묻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만이 알고 계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 약 10만여 명이 살고 있고 알마티에는 약 2만 6천 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백만명의 인구 밀도를 지닌 카자흐스탄은 예전에는 25백만 명의 우즈베키스탄에게 경제력이 밀렸었으나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에 전통에 대하여 철저한 방면에 카자흐스탄은 좀더 개방적이고 석유도 많이 나와서 지금은 경제가  역전이 되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유학도 많이 온다고 한다.

허기사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국토가 9위로 제일 크며 지하 자원도 많고 경제에 좀더 눈이 뜨면 관광자원도 많이 개발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가 20년에 이룩한 경제 성장을 단 5년만에 이룩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이들의 잠재적 성장력을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듯 싶다.

   
▲ 천산 맥주 350tg/2,800원
하루 저녁은 Neyzbekovna씨 댁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이 분 댁은 여러 군데 별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하며 구소련권에서 고위 간부를 지내셨고 음식은 3차례에 걸쳐 나왔고 이 곳에서도 역시 대중에 호흡을 같이할 수있는 입담은 기본이었고 악기와 노래가 어울린 한판이었다.

이 곳에서는 귀한 40% 보드카 5 잔 정도에  삶은 말고기 맛을 볼 수가 있었고 카자흐스탄 나자로예브 대통령이 취임식때 입은 예복과 같은 복식으로 사진을 찍었고 이를 선물로 받기 까지 하였는데 허리 끈이 없어졌다는 것으로 보아 고이 간직했던 귀중한 옷으로 보이며 이 집을 나서기전에 66세 여주인인 Kanimzhan Neyzbekovna씨로부터 내 얼굴에 정렬적인 뽀뽀 세례까지 받았다.

하루는 우리나라의 KOEX와 같은 무역전시장에 들러 보았고 주로 섬유류의 전시였다. 한번은 한 러시아계 청년을 만났는데 자신은 한국의 대우그룹 김우중씨를 존경하는데 왜 현대에 정몽구씨도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김우중씨만 징역을 살고 있는가란 첫 질문이었다. 난감하고 민감한 질문이었으나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어느 정도의 장부조작은 이해가 가나 장부조작으로 막대한 은행돈을 끌어써서 이것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케 했기 때문이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연이은 그의 두번째 질문은 물질은 행복의 완전조건도 아닌데 그냥 먹고 살만치만 벌면 되지 왜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돈 욕심을 더 내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사회주회의 젖어 산 젊은이다운 질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사람은 늙어 가면서 병을 다스리는데도 더 돈이 들어 가기 마련이고 만약 사회주의처럼 돈을 만약 번만큼 모두 다 같이 분배를 해버린다면 아마도 나는 이 곳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두 분배를 해버려 비행기라는 고가의 제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급의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라고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던 천산 실크로드를 향해 약 3시간을 운전하면서 갔다. 너른 초원에 말, 소, 염소, 양들이 함께 짧은 풀을 뜯고 있고 천산 근처에 이르자 어린 아희들이 천산에서 캔 자연산 파를 팔며 호객을 한다.

   
▲ 캐넌 밑으로 흐르는 차린강
만년설로 흰 모자를 둘러 쓰고 있는 천산 비포장 지름 길을 오르니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그랜드 캐년과 흡사한 캐논이 나오고 그 아래로는 콜로라도 강이 아닌 차린(Charyn)강이 몇 칠간 내린 비때문인지 빠른 물살을 띄기며 흐르고 있다. 차로 차린 강까지 이르는 길에는 동굴이 간신히 차 하나 빠져 나갈 정도를 통과하여 준비해온 빵과 과일로 배를 채웠다.

귀국하는 날 Kasteeva 그림 전시회에 참관하여 몇 세기전 그림들을 감상하였다. 유명 작품들은 손상을 우려해 유리를 씌웠고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후래시 사용이 안된다하여 디카에 담는 것은 포기를 하였다.

점심은 알마티에 '예향'이라는 한국 식당으로 가서 4.8% 그들의 맥주 천산을 한국돈 2,800원 주고 김찌찌개를 안주 삼아 시원하게 들이켰다. 몇 군데 백화점을 들려 귀국 선물도 준비를 마친 후에 오후 4 시경 귀가를 했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항공과 아세아나 항공이 일주일에 한번씩 밖에 뜨지를 않기에 한국에서 나갔던 사람들은 일주일 후 같은 항공기를 탈 수밖에 없다.내가 본 카자흐스탄은 흑인은 없이 백인과 황색인종이 전혀 상호간에 거리낌 없는 눈길로 서로 시멘트와 모래가 되어 공고히 결속 되어 살아 가는 모습이었다. 단지 나만이 연한 회녹색 러시아계 눈알을 가진 러시아계 사람들을 경이롭게 쳐다 볼 뿐이었다.

전기 콘센트는 우리와 똑같은 두개 돼지코 구멍이었으나 전기스위치및 수도 꼭지를 열고 닫으면서 돌리는 방향이 우리와 반대였으며 러시아의 핵연료를 지원 받는 듯 휴게소에서도 항시 뜻뜻한 물 사용이 가능했고 거리 가로수들은 밑둥에 흰색 칠로 벌레가 못오르게 하면 야간에는 야광으로 이용 되고 화장실은 중국식으로 칸막이를 하지 않았다. 인터넷의 느림도 우리네와는 비교도 안된다.

   
▲ 알마티의 저렴한 한국 식당
그래도 예향이라는 한국 식당에서는 김치찌개가 900팅게(약 7,200원)가량으로 제일 싸서는 나는 주로 이것만 먹었다. 모두 이 곳 내륙에서 나는 채소인데 이렇게 비싼 이유를 모르겠다. 이 곳에서 카지노를 벌리고 잇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로 많이 욕을 먹고 있는데 이들을 고려인들과 차별하여 부른다.

돌솥 비빔밥은 우리네가 8천원 정도인데 비하여 2만원 정도 하고 한국 음식은 무조건 비싼데도 점심 시간에 세 차례나 가봤는데 사람이 버글버글하다.

대학 체육관에 가보니 우리나라 탁구 선수 사진이 크게 걸려 있고 2001년 프리모락 선수와 버터플라이 라버로 이겼다는 포스타가 나의 눈길을 끈다. 라켓이라도 가져 갔으면 그 곳의 선수와 일전을 벌여 볼 것을 하는 후회가 치민다.

그들의 유목민 생활의 집을 유르따라고 부르는데 아주 유명하고 카자흐 전통 현악기로 2줄 짜리 '덤브라'란 악기가 아주 유명한데 두 줄로로도 연주가 안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구소련권 시절 우주인 두 명을 배출하여 박물관에 사진이 보관되어 있고 아바이 문호 15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영업용 택시외에 일반 택시가 영업을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고 공직자들은 많이 썩어서 급행료를 주어야 일이 빨리 진행이 된다. 이 곳은 소고기 값보다 돼지 고기 값이 더 비싸다.

음료수에는 마지막 유통기간 보다는 생산일자가 적혀 있어 유효기간은 작은 글씨라 잘 들여다 보아야 하며 자동차는 자신이 직접 수리를 할 줄 모르면 그 넓은 땅에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도 많은지라 낭패를 볼 수가 있다.

목화는 모터를 이용해 진공 흡입기로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거두워 들이고 있었으며 콩나물은 줄기가 길기전 3cm이내의 크기에서 콩나물 국을 끓여 먹거나 묻쳐서 먹는다.

그림은 작가의 생년을 기록하고 작품을 그린 기간 년월을 기록해놨다. 카자흐스탄의 설날은 입춘이 시작 되는 3월 22일 부터 3일간 휴무이고 이떼 각종 놀이 행사가 벌어지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1년인데 영어는 초등교 1학년 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 러시아어는 영어와 어순이 비슷함에도 아직 우리네와 같이 영어는 멀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의 영향권및 문화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으나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치면서 절충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홍수를 대비해 시내에도 적정거리를 유지해 댐을 만들어 놓았으며 거리에는 통행자 도로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를 않아 차와 보행인이 어지럽게 얽히기가 쉽다.

이 곳에서는 법적으로 여러 부인을 둘 수가 있고 대통령도 여러 부인을 두고 있다던데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 그들간의 삶을 좀더 세세히 들여다 보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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