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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근 시민기자]교복의 추억
2007년 03월 10일 (토) 00:00:00 유재근 시민기자 jku810@naver.com

유재근 시민기자

내가 서울(한양 또는 문안)에 올라 올 때에는 6.25 전쟁 나고 약 4년이 지나고 있었던 터라 당시에 높은 건물이라고 해봤자 겨우 2, 3층의 건물이 고작이었으며 동란의 전란통에 건물에는 여기저기에 총탄의 흔적이 보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영양식으로 습기에 의해 뭉쳐진 덩어리가 많이 들어 있는 우유를 가루로 부숴 가면서 작은 봉투에다 배급을 주었었으며 그 때는 지금과 같은 고체 치약이 아닌 굵은 소금으로 이빨을 닦거나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치분을 사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불은 성냥을 사용하기에 길바닥에 떨어진 성냥알을 주워 모으기도 하였고 성냥갑에 사용하는 재료인 붉은 인으로 만든 종이를 바가지 바깥 면에 군더더기처럼 붙여 놓고 눅눅하게 보관하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서울에는 전깃불이 없어서 작은 종지에다 들기름을 조금 부은 후 솜을 비비 틀어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여 방을 밝히곤 하였다.

서울 길에는 말 마차가 오가며 여기저기에서 말똥이 발에 밟히기도 했으며 물이 너무 귀해서 때로 눈을 받아 물로 녹여 마시기도 하였고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주인집에서는 어찌나 유세가 세었던지 안집 수돗가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였었다.

밥 해먹는 연료는 주로 참나무 숯을 사용했었는데 겨울에는 추운지라 방안에서 음식을 해먹다가 일산화산소 때문에 몇 차례나 방바닥에 쓰러지곤 했었다. 음식이라야 무얼 먹을게 있었겠는가. 우리 집에서도 시골에서는 한다하는 부자소리를 듣고 살았었지만 시골에서는 쌀을 팔아야 돈을 조금 만져 보거나 먹을 쌀만 겨우 서울로 올려 보내주었기에 시장 바닥에서 남들이 떼어 버린 배추 줄거리를 주어다가 김치를 담아 먹곤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월사금(사친회비)을 못내서 집으로 쫓겨 오기가 다반사였고 점심 도시락은 반찬이 딱하나 단무지가 전부였었다. 초등학교 6년간 소풍(당시는 원족이라고 부름)이라야 4학년 때 단 한번 밖에 가보지를 못했다. 그것도 김밥 긴 것 한 줄기만을 들고 창피해서 남이 볼까봐 홀로 나무 뒤에 숨어서 나 혼자 먹었었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때 운좋게 다시 한번 더 소풍을 갈 기회가 있었으나 때마침 소풍 전 날 철봉을 하다가 거꾸로 잘못 자세가 나쁘게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 손이 먼저 땅에 닿아 오른 손목이 퉁퉁 붓는 바람에 나는 그래도 소풍 갈 것을 고집하였으나 당시 함께 지내던 할머니의 만류에 부딪쳐 소풍갈 내 소망을 접을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었다.

초등교 6년 동안 남집살이인 전,월세로 옮겨 다닌 것이 무려 10여 차례나 되니 대충 6개월에 한번씩 남의 집으로 이사를 다닌 셈이 된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에 물지게를 짐을 물론이요, 신문 종이도 엄청 귀하던 시절이라 신문 종이로 봉투를 만들어 시장에 대주면서 생활비를 보태기도 하였다.

당시 아주머니들은 몸빼를 입고 다니면서 머리는 파마할 돈이 없었기에 실로 얼기설기 뜨고 중간 중간에 몇 개의 구슬을 꿰어 만든 머리망을 써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우선 남 보기에 흉을 덜면서 길을 다녔다.

남자들은 군에서 빼낸 군복을 그대로 입고 다니거나 그래도 형편이 좀더 나은 사람들은 검은 물로 염색을 들여 입고 다니곤 했다. 말 탄 경찰이 도로를 지나칠라 치면 염색물을 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숨기에 바빴다.

당시는 도민증(道民證)이라는 것이 있어서 수시로 길거리에서 순경들이 수시로 검열을 하곤 하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GNP가 1만7천 불을 넘었지만 당시는 대충 겨우 60불 정도에 불과했었으니 전국민들이 모두 거지였던 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야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라 어쩔 수없이 빈곤의 연속이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지금껏 내게는 결코 지울 수없는 돌덩이로 남아 앙금으로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에 들어가서 부터는 교모를 사서 써야만 했었는데 우리집에서는 이걸 사줄 돈이 없어서, 아니 그 돈을 아끼려고 사주지를 못하고, 나와 무려 16세 나이 차이가 나는 막내 삼촌이 썼던 검은 교모가 누런 부대자루 빛깔이 나는 모자를 나보고 쓰고 학교에 다니라는 바람에 나는 학교 교문을 지나칠 때마다 훈육선배들에게 지적당하는 바람에 얼굴 확끈거리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었다.

한참 후에 검정색으로 염색물을 들였지만 늘어진 부대 자루 같은 옷감천 재질이 어디를 가겠는가. 이 모자를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새 모자를 사주지 않아 그대로 쓰고 다녀야만 했으니 독자들은 내 처지의 이 곤란을 능히 짐작 할 수 있으리라. 이 모자를 막내 작은 아버지와 내가 22년에 걸쳐 무려 6년씩 도합 12년을 사용하였으니 아마도 이 모자는 세상에 태어나 천수를 다한 셈일 것이다.

그리고 중, 고교 6년 동안 하얀 체육복을 한번도 사주지를 않아 선생님에게 얻어터지거나 재수가 좋으면 옆 반 아이 것을 빌려 입어 매를 면하는 수도 있었지만 계속 꿈자리에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결코 나의 소심함만을 탓할 수없는 정신적 이지메의 연속이었던 셈이었다.

지금 중학생 교복이 무려 30만 원이 넘는다는 말에 잠시 옛 시절 옛 생각이 잠겨 지금껏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앙금을 들춰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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