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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숨쉬기
2003 백두대간 구간종주기-2
2004년 01월 09일 (금) 00:00:00 차은량 cel305@dreamwiz.com

   
삼도봉에서 덕산재까지 7. 26

민주지산에서의 산행 첫날이 밝았다.
집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들로 부식을 따로 배급받지 않고도 풍성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샘터 앞에서 경로당 대우 40대 이상의 이, 홍, 이, 차, 유, 박 6인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열흘 예정의 산행 첫 발을 떼었다.
시작부터 급한 경사지로 금새 숨이 차 오른다.
산으로 오를수록 안개는 짙어지고 쇠사슬이 달린 듯 무거워지는 발목에 신경이 쓰여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네 번째 오르는 민주지산,
하마 어느 시절인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산우회 팀에 연고도 없이 곁다리로 붙어 온 적이 있었다. 결혼 후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면서 슬금슬금 겁 없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 고질병, 산에 올라 본 지가 언제인가.

까마득한 시간들을 헤아리다가 결혼할 때 가져와 꼬박 7년을 묵은 등산화를 다락에서 꺼내 신고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민주지산을 오르는데 무언지 모를 서러움이 자꾸만 목으로 차 올랐다.
결혼 전 그저 무턱대고 산이 좋아 일요일마다 산을 오르던 시절, 언제든 시간만 내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산에 가는 일을 어디 먼 외국에라도 가는 것처럼 별스런 일로 생각하는 작은 시골마을의 관습이 잘못된 것일까.

그도 아니면 감히 산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 못 꺼내고 사는 내 자신이 잘못된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결혼하여 어느새 아이가 둘인 내 처지를 결혼 전으로 되돌리고만 싶었다.
그날 그런 생각들로 어찌나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던지 이후로 산 생각만 나면 스스로 훼훼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그 후 내 마음속의 간절한 바램을 눈치챈 행운의 여신이 도왔는지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 속에 마음놓고 산에 다니게 되었다.

선두를 따라 앞서가는 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잘도 걷는다.
렘에게 들킬세라 거친 숨을 고르며 부지런히 따라 걷고 있는데 렘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다는 말,
어휴, 나만 이렇게 숨소리가 큰가봐, 창피해서 소리 죽이느라 지금 애 먹고 있어.
엉? 내 숨소리는 안 큰가? 안 들리는데?
그려? 그럼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
그럼 우리 맘놓고 숨쉴까?
그러지 뭐. 정작 호흡소리가 큰 것 보다 옆 사람을 의식하는 게 산행을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스러운 것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거늘.

그제서야 삼도봉으로 오르는 좁은 산길 양옆 풀섶에 배시시 웃고 있는 야생화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달개비, 하늘말나리, 동자꽃, 기린초, 쥐손이풀, 둥근이질풀, 패랭이…. 노루오줌. 내 입에서 기분 좋게 꽃 이름이 술술 잘도 나온다.
선두를 놓칠세라 선뜻 카메라를 꺼내 들지 못하던 차에 선명한 분홍빛의 쥐손이풀 앞에 멈춰 서서 급히 셔터를 누르고 뛰듯이 다시 선두에 따라 붙었다.

불쑥 삼도봉이 나타났다.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분기점인 삼도봉은 짙은 안개에 쌓여 겨우 앞사람의 형체만 보일 뿐이어서 사방으로 달리듯 이어지는 늠름한 산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열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능선을 타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대원들의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다.
조별로 담당교수님의 지도 아래 탐사활동을 하느라 바쁜 중에도 대열에서 처지는 동료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기도 하고 연신 우스개 소리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금새 친해져 우정을 나눈다.
853봉을 지났을까, 좁은 산길이 마을을 향하는 갈림길에서 기어이 산행을 포기한 젊은 친구 3명이 진행팀의 안내로 탈출을 하였다.
슬쩍 렘의 얼굴을 보니 득의 만만한 표정이다.

덕산재로 향하는 부드러운 능선길은 총총한 낙엽송의 초록이파리를 투과한 희미한 햇살과 아직 걷히지 않은 옅은 안개가 섞여 초록빛 커튼을 드리운 듯 한껏 싱그럽다. 
하늘로 치솟은 낙엽송 아래로는 끝도 없는 애기나리 군락이다.
덕산재가 가까운 마지막 휴식시간,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가던 렘의 무릎이 맥없이 꺾이는 듯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안스런 마음에 한동안 뒤에 서서 지켜보는데 한참이 지나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셔터부터 누르고는 화상을 되돌려 렘 앞에 들이밀었다.
나, 증거 확보했다. 난 이거면 이번 산행은 이미 성공이야. 어유,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어디 두고보자. 괜히 말했나 보다. 그러나 남의 약한 모습을 몰래 찍어놓고 안 그런 척 하기가 쉬운 일인가. 아무쪼록 약발이 받아야할텐데.

휴식 5분이 끝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뜬하게 일어난 렘이 이번엔 나보고 앞장을 서란다. 힘들여 메고 온 삼각대는 삼도봉 정상에서 한 번 꺼내 쓰고 정작 접사를 할 때는 사용하지 못했다.
언제 배낭을 내려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접어 배낭에 매달 것인가.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다보니 도대체 사진은 언제 찍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뒤에서 렘이 여러 번 보챘다.
자기에게도 약한 모습 좀 보여달라는 것이다.
속으론 죽을 지경인 것을 내색하지 않느라 무진 애를 썼다. 6시가 가까워 덕산재 야영장에 도착하였다. 겨우 손을 씻을 수 있는 도랑물에 수건을 적셔 교대로 망을 보며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닦고 이화백님이 산에서 채취해 온 흰송이버섯으로 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작년탐사 때 급성위궤양으로 사흘을 내리 굶으며 산행하던 것을 생각해 식사량을 줄이고 술은 일체 입에 대지도 않았다.

전체 토의시간, 조별 과제발표가 끝나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 게임을 하였다.
앉은 순서대로 기준을 정해 자기 앞사람 이름과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사람은 자기 앞의 두 사람 이름과 자기 이름을 말하고
그 다음 사람은 또 자기 앞의 세 사람 이름과 자기 이름을….
그런 식으로 마지막 사람은 자기 앞의 3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외워야 한다.

얼른 수첩에 이름을 적어 나갔으나 정작 내 순서가 되자 누군가 수첩을 가져가 버려 중간의 한 사람 이름을 놓쳐버렸다.
벌칙으로 '남행열차'를 불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겠다.
아줌마의 기질을 발휘 해 박자도 엉망인 노래를 몸까지 흔들어가며 목청껏 불렀다.
텐트로 돌아와 렘의 전화벨이 울리자 렘이 자랑스럽게 외쳤다.
여보, 오늘 3명 낙오했는데 난 안했다.
두 번째 밤이 무사히 넘어가나 보다. 렘과 나의 리드미컬한 신음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산중의 밤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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