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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
2003 백두대간 구간종주기-1
2004년 01월 09일 (금) 00:00:00 차은량 cel305@dreamwiz.com

   
출발 2003.7. 25

 
산으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작게는 하루 산행에서, 길게는 백두대간 구간종주에 까지. 젊은 혈기로 충동적으로 오르는 산도 아니고 매년 일년을 별러 떠나는 긴 산행이니 만치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또한 산에 간다는 일은 내게는 기도와도 같은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나희덕시인은 「속리산에서」'라는 시에서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고백했다.

나는 그 사실을 진작에 터득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둑한 극상림 속을 걸으며, 앞사람 엉덩이를 연신 머리로 치받는 급경사를 오르며 코에서 단내가 날 때마다 너무나 행복했다.
산 속의 정결한 시간을 넘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산 위에서 산 아래의 가파른 삶의 고비고비를 생각할 때가 나는 오히려 고통스러워서 그럴 때마다 아기를 달래듯 내 자신을 가만가만 달래었다.

7월 25일 점심 무렵 서울을 출발해 이제 막 천안을 지나고 있다는 렘의 전화를 받고 나도 현관 앞에 쌓아둔 텐트와 배낭들을 차의 트렁크 가득 싣고 집을 나섰다.
"이 사람아, 아프지나 말고 잘 다녀와"라고 말하며 아침에 먼저 외출한 남편이 차는 집으로 끌어다 놓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대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행사에 관련한 몇몇 인사들의 모습이 보이자 곧 발대식이 거행되었다. 예년에 참석했던 많은 대원들이 불참하는 반면 신입대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발대식이 끝나고 보급대 수송차량을 따라 대원들을 태운 전세버스도 집결지인 청주 예술의 전당 광장을 출발하였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점차 세상과 멀어지다가 드디어 급한 물살이 흐르는 어느 계곡 옆에 우리를 내려놓고 다시 세상 속으로 멀어져갔다.
김천시 구암면 해인리, 민주지산의 영봉 아래 조용한 산간마을이 끝나가는 곳에서 첫 야영지까지는 도보로 이동하였다.
좁은 포장도로를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산으로 오를수록 안개는 푸른빛으로 짙어졌다.
끝도 없이 휘돌아 친 포장도로가 지루해 질 무렵 진행 팀의 본부 텐트가 보였다.
1차 야영지였다.
급하게 치고 오르는 산 중턱, '삼도봉 산삼샘터'라는 조그만 간판 안 쪽으로 뽀얀 김이 서리는 약수가 흘러내리고 그 앞으로 야영지로 충분한 평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식사가 끝나자 뒤늦게 청주를 출발한 대원 몇 명과 야생동물에 대한 강연을 해 주실 천태영박사가 산중의 짙은 어둠을 뚫고 도착하였다. 자욱한 안개 속에 제법 옷을 적시는 비가 내려 본부 텐트 안에 총총히 붙어 앉아 천태영박사의 강연을 들었다.

'동물을 상대로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할 게 아니다'라는 서두로 시작된 강연은 천태영박사의 부드러운 어조와는 달리 모골이 송연하도록 가슴을 파고들었다. 천태영박사는 짙은 안개를 헤치고 산길을 올라오면서 자동차 불빛에 비치는 멧토끼 3마리를 만났다면서 굉장한 보물을 발견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멧토끼들이 길을 내주질 않아 급경사 길에 몇 번이나 후진을 하여 다시 올라오는 고생을 했다며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계속하였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청주시 산남동의 원흥이 방죽의 두꺼비를 살리자고 모인 사람(환경단체)들이 원흥이 방죽에 모여 촛불을 켜고 손뼉을 치며 노래를 하는 것이 오히려 원흥이 방죽에 살고 있는 두꺼비들을 괴롭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원흥이 방죽은 옛날 인근에 원흥사가 있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500평 규모의 방죽으로 도시 인근에 이와 같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수만 마리의 두꺼비가 모여 사는 방죽은 자연생태계로써 온전히 보전되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여론이 한창 뜨거운 곳이다.

이 곳엔 버드나무와 창포,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풀들이 자라고  있고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두꺼비를 비롯해 가물치와 붕어 외에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특히 봄이 돼서 두꺼비 새끼들이 자라 맑은 도랑 물줄기를 타고 인근 산을 향해 올라가노라면 그에 따른 먹이사슬이 이어져 두꺼비를 노리는 뱀들과 딱따구리와 꾀꼬리, 뻐꾸기, 파랑새와 제비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새는 거의 볼 수 있는 보전가치가 뛰어난 자연환경지역이다.
이 곳이 급격한 도시화로 아파트와 상가, 택지조성으로 고립되어질 위기 앞에 놓이자 여러 환경단체의 시민들이 모여 밤낮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천태영박사는 이어서 생태통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야생동물을 보호한다고 만드는 생태통로가 오히려 밀렵꾼들에게 야생동물을 대량 포획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자연을 보전한다고 해 온 일들이 정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는 것과 자연을 상대로 우리가 얼마나 사람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며 보다 현명한 해결책이 나와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산에 오르면 제발 동물들을 놀라게 하는 큰소리를 지르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말로 산중강연은 끝이 났다.
랜턴의 불빛 주위로 몰려드는 날벌레들이 얼굴과 목 주위로 사정없이 달려드는데도 벌레들을 떼어내는 그의 손길은 나직나직한 그의 어조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강연이 끝나고 텐트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워서 카메라를 조작하던 렘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이 행복한 순간을 놓칠 수 없다며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연신 텐트를 드나들며 삼각대에 설치한 디지털카메라의 LCD스크린을 확인하고는 재차 셔터를 눌러놓고 다시 텐트 안으로 뛰어들어와 포즈를 취하곤 하는 렘을 바라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자칭 집귀신, 남편과의 동행이 아니면 하룻밤도 따로 집을 나서본 적이 없는 이 친구를 꼬드겨 열흘 예정의 긴 산행에 동참케 한 나의 무모한 계획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빠르면 내일 저녁, 렘을 보급대 차량에 태워 서울로 보내게 될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의연히 대처하자는 마음의 각오를 다지며 불안감을 감춘 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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