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근 시민기자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다. 당시 윤리 선생님은 철학 박사이면서 동시에 신학 박사이셨다. 그는 성경 속에 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 말씀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마6:26)'라는 기록이 있지만 많은 새가 눈 속에서 모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는 새도 많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이 때 그 선생임의 사고력에 영향을 받아 앞으로 내가 성인이 되면 '담배는 피울 것인가?' 그리고 '술은 마실 것인가?'를 놓고 그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총동원하여 '담배는 백해무익하니 절대 피우지 않고 술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과의 교제상 필요하니 마시기로 작정을 하고 그때부터 근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껏 그 때의 작심을 지켜 오고 있는 편이다.

물론 술을 마실 때만 가끔 뻐끔 담배를 입에 무는 수는 있지만 이는 주로 상대방과의 대화 줄거리를 놓치거나 찾고 있을 때뿐으로 이를 두고 담배를 피운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고교 시절에 앞으로의 행동반경에 대하여 큰 획을 긋고 행동지침을 정하였기에 나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면서 지금껏 실행에 옮기고 있지만 때로 술이 과음으로 흐르는 수가 있어 내 건강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행동반경에 자신의 결심도 매우 중요하지만 때로 어린 시절에 받았던 교육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는 중학 시절 때만 해도 집안 내력에 따라 개고기를 잘 먹는 편이었는데 중학교 때 은사님이 '집에서 키우던 개를 그것도 아이큐(지적 능력)가 높은 동물을 어떻게 야만인들처럼 먹어치운다는 말인가'라는 훈시적 말씀에 크게 영향을 받아 지금도 개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우리네 인간은 이성과 동물적 감성의 비율을 대충 2:8 정도로 지니고 살고 있지만 인간 문명사회가 오래 되면 될수록 문화적 전통과 관습에 따른 치례가 우리의 몸뚱이를 휘감아버려 아프리카 등의 오지 인간들보다 동물적 순수성을 잃어 가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마치 동물성의 우리 몸을 겨우 20%의 이성이 통째로 지배를 하며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고 인간의 본성은 동물에 더욱 가깝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허기야 이런 동물적 감성에 아주 충실한 분들이 미술, 음악, 무용 등을 하는 예술인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예전 충무로 다방에서 담배 연기 속에 술에 절은 예술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할 정도로 여자는 이지적이기 보다는 감성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화재가 났을 때 수탉은 제 한 몸 추스리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만 암탉은 자신이 타죽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병아리를 품고 타죽으면서 자기의 새끼를 살려 낸다고 하지 않던가.

술이라는 음식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동물적 감성에 딱딱하게 시멘트로 둘러친 벽을 서서히 허물어 내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술이 깨면 다시 제자리로 가서 굳어 버리지만 어째던 술이 취한 순간만큼은 허례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순수한 인간성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나는 술에 적당히 취한 여자가 좋다. 혹자는 나는 술 안마시고도 충분히 유쾌하고 즐겁게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선이거나 연출에 불과할 뿐이다.

부부 싸움에서도 아내가 약간의 술을 할 줄 알면 용서의 폭도 넓어지고 쉽게 용해가 가능하다. 허지만 허례로 시멘트 옷을 입고서야 실제적으로 얼마만큼 순수한 대화가 가능할 지 상상이 되지를 않는다.

아무리 효부라도 악처를 따라 갈 수는 없고 아무리 금슬 좋은 아내와 살더라도 자신의 속내를 전부 아내에게 보여 주기는 힘드리라. 이제 개나리도 막 봉우리를 터트리려는 봄의 문턱에 와 있다.

머지않아 도시 속 시멘트 옷을 모두 벗어 던진 사람들이 산에 오르내릴 것이고 아마도 막걸리 한잔에 취하여 철쭉꽃, 진달래꽃 빛깔로 물든 아낙네들도 쉬이 눈에 뜨이리라. 이런 모습들도 인간이 자연으로 일시적 돌아간 아름다운 꽃의 모습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