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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포토에세이>겨울나무
2004년 01월 09일 (금)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기사제공 : 오마이뉴스

   
▲ ⓒ2004 김민수

밤하늘에 총총히 뿌려진 별을 잡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하늘이 품고 있는 희망을 잡으려고 했는지 나뭇가지의 가녀린 손은 연한 푸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록의 여름과 형형색색의 가을을 보내고 자신이 붙잡고 있던 이파리를 놓아버리고 빈손이 되면 다시금 겨울하늘에서 더욱 빛나는 별을, 아직도 하늘이 품고 있을 희망을 잡을 줄 알았나 봅니다.

고난의 계절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덧입지 아니하고, 가진 걸 다 버리고 알몸이 되어 온 겨울을 견디는 나무를 보면 그들의 한결같음과 정중동의 삶이 온몸으로 다가오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빠져 사는 삶이 부끄러워집니다.

   
▲ 팽나무 ⓒ2004 김민수

 북제주군 동복리와 북촌리 사이에는 아주 오래된 팽나무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날 때마다 멋지다 감탄을 하면서도 그 나무를 처음 본 이후 3년 동안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바닷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그곳에서 얼마큼 세월을 서 있었을지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 형상입니다. 아주 천천히 따스한 남쪽으로 향했을 나뭇가지들의 형상, 그리고 고난의 흔적이 베어있는 옹이를 보면 보이지 않는 그 뿌리의 장엄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나무가 움직이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는데 그 안에서는 쉬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3년을 기다렸으니 이제 한번 나를 담아봐라."

그렇게 이 나무와 조우는 했지만 아직 그의 숨결이나 고난의 흔적들을 알려면 카메라에 담는 것보다도 그의 곁에 가서 그의 거친 나뭇결도 만져보고, 새 생명이 움트는 봄에 잔뜩 물을 머금고 있는 잔가지와 연한 이파리들을 만나보아야 할 것입니다.

   
▲ 배롱나무 ⓒ2004 김민수

나무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갑니다. 늘 그 자리에서 시절을 좇아 이파리를 내고, 꽃을 내고, 열매를 냅니다.

사람이 있는 곳, 그곳엔 늘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가 건강하면 그 곳에 더불어 사는 이들도 건강했고, 나무가 병들면 그곳에 있는 이들도 병든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해 태풍 '매미'가 지나갔을 때 마치 뜰에 있는 배롱나무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늘 이런 고난들이 찾아오면 늘 힘없는 이들만 고통을 당하는 현실, 그 고난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가는 현실이 슬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비자나무 ⓒ2004 김민수

 삶이 삭막해 질수록 나무와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나무와 멀어질수록 삶은 삭막해 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우리의 아이들이 언제 나무에 올라가 보았는지 기억하세요?

어린 시절 아이들은 동네 뒷산에 올라가면 나무와 친구가 되어 놀았습니다. 때로는 작은 가지들을 꺾어 새총도 만들고, 나무칼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이 피어있는 나무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꺽을 줄도 알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밤나무 도토리나무에 올라가 밤과 도토리를 털 줄도 알았고 나무를 타고 오르느라 바짓가랭이가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결코 그들의 행동이 나무를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 나무 한번 올라가 보지 못한 아이들보다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었는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구상나무 ⓒ2004 김민수

 나뭇가지 하나 꺽는 것, 꽃 한 송이 꺽는 것을 마치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처럼, 잔디밭을 밟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교육은 어쩌면 자연과 사람을 이간질하는 교육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포크레인으로 산을 깔아뭉개 골프장을 만들고, 좀더 빨리 가겠다고 터널을 내면서 언제 한 번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던 나무와 들꽃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번이라도 했는지요? 어쩌면 천번 만번 자연보호운동을 벌이는 것보다,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우리 곁에 늘 있는 나무를 한번이라도 손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 아닌지요?

   
▲ 팽나무가지 ⓒ2004 김민수

 때론 죽은 나무에서도 새순이 돋아납니다. 그리 아니하여도 죽어서도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거친 나뭇결에도 삶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지만, 잘라야만 보이는 나이테에도 삶의 흔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남쪽을 향해서 가지를 냈습니다. 바람이 그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빚어냈습니다. 움직임이 없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는 언제나 삶에 대한 애착과 끈끈한 생명이 활활 타올랐으니 '정중동'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나무입니다.

겉으로 당장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우리네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고 하니 아마도 저 나무가 저 형상으로 서 있으려면 그만큼 뿌리는 차가운 북쪽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보이는 형상이 저 정도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은 더 경이롭겠죠.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은 옹이부분이라고 합니다. 상처가 나거나 나무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생기는 옹이는 나무의 가장 단단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난 뒤에 생기는 상처가 아문 흔적이 옹이인 셈이니 우리 사람들도 가장 힘들던 고난의 시간들 속에 인생의 가장 깊은 향이 들어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절망이라는 곳으로 기울려고 할 때 얼른 희망쪽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겠지요.

나무의 나이테는 고난의 시절일수록 나이테끼리 거리가 가깝고, 아주 천천히 자라는 대추나무같은 것은 아예 나이테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나이테끼리도 서로 아픔을 껴안고 이겨낸 흔적들이 아닌지요.

   
▲ ⓒ2004 김민수

 겨울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가지들, 그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겨울하늘 아니면 늦가을이거나 이른 봄에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저 나뭇가지들 사이사이로 연한 새순이 올라오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작은 숲이 되어 뜨거운 여름철 귀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쉼터로 자리매김을 할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무를 보면 그 열매를 알 수 있고, 그 살아온 세월의 내력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웅장한 나무가 되기까지의 세월의 깊이도 깊이지만 그 처음은 어땠을까요?

아주 작은 씨앗 아니면 작은 나뭇가지로 시작된 것은 아닌지요? 나무가 나무다워지기 위한 그 첫번째는 아주 작은 것이었으니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들만이 새들이 깃드는 나무, 더불어 숲이 되는 나무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2004 김민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자연의 도리와 질서를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골프장이며 온천, 러브호텔을 짓겠다고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땅의 주인인 산과 그 안에 있던 나무와 들꽃을 마구 허물고 베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습니까? 몇 사람의 행복, 극소수의 행복을 위해서 너무도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이 겨울에도 나지막하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지막한 숨소리 뒤에는 새 봄에 피어낼 연초록의 빛깔들이 곧 터져 나올 듯 웅성이고 있을 것입니다.

 겨울이면 자꾸만 눈이 나무에게로 향합니다. 아니 어쩌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 가운데 가장 하늘과 가까이 대하면서 하늘의 바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아가던 새들도 잠시 쉬어갑니다. 그들의 머물던 곳에는 상처가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여운만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머물다간 그 자리에도 상처대신 아름다움과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작년에 찍은 이나무는 지난해 태풍 '매미'로 소실되었습니다. ⓒ2004 김민수

 성서에 나무와 관련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어떤 나무인지, 어떤 열매를 맺고 사는지 늘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 얼마나 많이 나무들을 바라보게 될지, 바라보는 만큼 나무를 닮은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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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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