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공: 오마이뉴스

여성계가 17대 총선에서 드러내놓고 대대적인 지지·당선운동을 벌일 '여성후보 102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이하 여성네트워크)는 8일 오전 11시 한국언론재단에서 '100인 여성후보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후보 102인의 명단과 약력을 공개했다.

▲ 여성후보 102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성후보들이 여성의 장점이 적힌 종이를 정치개혁을 뜻하는 천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지은

여성네트워크가 이날 밝힌 여성후보 102인에는 이미 지역구 총선 출마 선언을 한 27명의 여성을 포함해 정당인·언론인·기업인·시민단체 인사·의료인 등 11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여성들이 포진돼있다.

정당인 중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이경숙 공동의장·고은광순 상임운영위원, 한나라당의 김금래 여성국장이 눈에 띈다. 언론인 중에서는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이 포함돼있고 법조인 중에서는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공직자로는 이승희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등이 주요 인물이다.

또한 의료인은 안명옥 포천중문의과대학 교수, 학계인사는 장하진 한국여성개발원장과 이미 출마를 선언한 노혜경 부산외국어대 겸임교수(시인) 등이 포함됐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공동대표는 "102인 명단에는 정당인·학계·법조계·노동운동계·과학의료계·직능단체 소속 등 분야와 정파를 망라한 여성이 다양하게 포함돼 있다"며 "이들은 모두 피추천인으로서 명단이 공개되는 것을 수락했고 각 당에서 영입을 제안할 경우 수락할 의사가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여성네트워크는 명단 발표를 기점으로 각 정당 대표와의 면담을 통해 여성후보 명단을 전달하고 이들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로비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102인 어떻게 가려 뽑았나 
 
지난 해 11월 6일 발족해 현재 여성·시민단체 대표 및 시민 250∼30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여성네트워크는 지난 12월 25일까지 약 한 달간 온-오프라인, 우편, 팩스 등을 통해 여성후보 추천을 받아왔다. 이후 추천을 받은 여성에 대해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추천위원장)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심사에 나서 최종 후보자를 가려냈다.

여성네트워크의 실무를 맡고 있는 김기선미 여연 정책부장은 "추천기간 동안 전 분야를 망라해 다양한 여성들이 후보로 추천됐다"며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기 분야에서 꾸준히 전문성을 쌓아온 여성 등 정치신인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여성네트워크가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은 것은 도덕성과 신망성. 그중에서도 도덕성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김기 부장은 "다른 조건이나 자질을 다 갖췄더라도 도덕성에 오점이 있으면 탈락을 시켰고 그 외에 사회발전과 공익성에 대한 기여도, 전문성, 민주적 리더십, 양성평등 및 시민의 시각도 주요 잣대였다"고 설명했다.

추천된 후보에 대한 검증은 운영위원들의 10여 차례에 걸친 회의와 후보 추천위(13인)의 검토를 거쳤다.

여성네트워크는 "여성후보들은 특별히 부패에 연루된 경우가 적어서 도덕성 검증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그들의 주변 인사와 지역단체를 통한 자질 입증 과정도 거쳤다"며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두루 갖춘 후보들"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여성네트워크는 "혹시 추천위에서 발견하지 못한 심각한 오점이 있는 후보가 있거나 미처 발굴하지 못한 훌륭한 여성이 있을 경우, '여성 102인 명단'에서 삭제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전·현직 국회의원은 후보자 추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미 정치인으로서 공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데 더욱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는 게 여성네트워크의 설명이다.   

이번 여성네트워크의 여성후보 공개는 향후 여성계의 대대적인 지지·당선운동으로 이어질 전망이어서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각 정당이 이들 여성 102인을 공천할 수 있도록 '공천운동'에서부터 '지지·당선운동'까지 총선 전 단계에 걸쳐 힘을 결집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김영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사무국장은 "지지·당선운동의 수위나 방법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으나 정파를 망라한 한국의 거의 모든 여성단체들이 연대해 지역에서부터 조직적인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해 대대적인 당선운동 계획을 내비쳤다.

현재 총선여성연대 등 여성네트워크와 지지·당선운동을 벌일 여성단체는 모두 500여개 단체. 한국의 거의 모든 여성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셈이어서 이들의 힘은 무시 못할 정도다.

각 정당에서 공천 대상자가 확정되면 여성후보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 재정적 후원도 병행할 계획도 있다. 정현백 여연 상임대표는 이날 여성후보 102인 명단을 발표하면서 "향후 이들이 각 정당에서 공천이 확정돼 후보로 출마하는 경우 가칭 '맑은정치여성기금 추진본부'를 구성해 기금을 모아 재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돈까지 지원한다"... 각 정당이 받아들일지 여부가 관건

문제는 주요 정당들이 이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하지만 여성네트워크는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여연에서는 지난 1995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성후보 17명을 발굴해 이중 14명을 당선시킨 경험이 있다.

남윤인순 여연 공동대표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여성 정치 참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이번 후보 102명 중 약 70%는 정계에 진출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날 여성후보 공개 기자회견장에 원내 교섭단체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한 김근태 우리당 원내대표도 여성네트워크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김 대표는 "100년 전에 갑신정변이 있었는데 올해는 여성이 주도하는 '제2의 갑신정변'이 일어날 듯 하다"며 "내가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로비를 하기 위해서이니 여성후보들이 가급적이면 우리당을 선택해주길 바란다"라며 적극적인 영입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각 당에서 공천을 받는다하더라도 문제는 당내 경선을 뚫어야 한다는 데 있다. 조현옥 여세연 대표는 "지역구 출마자 경선에서는 돈과 조직이 있는 남성후보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이러한 풍토에서는 중앙당 차원에서 여성후보 가산점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직 확대 및 지퍼식 할당제(남녀교호순번제), 분구 지역구에는 무조건 여성 공천 등 여성을 위한 배려 조항을 둬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