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근 시민기자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부부는 전생의 원수가 만나서 함께 사는 것이란 말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부부가 한 집안에서 같은 음식을 섭취하면서 가족의 열망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피부가 되었던 얼굴 모양이 되었든 간에 어느 정도 닮아 가리라는 예측은 쉽게 해볼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후자 예의 경우 현재 부부의 연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생에 원수였을 것이란 생각은 아마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남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다보니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해소의 과정에서의 빈번한 다툼이 사소한 감정 싸움내지는
때로 상호간에 엄청난 인신 공격적 다툼으로 까지도 번지다 보니 이런 험한 말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은 것조차도 놓치지 않으려는 철두철미형 인간인 반면에 내 아내는 큰 것을 지향하되 대충대충형으로 나와는 아주
상반된 성격을 소유하였다. 그래서 혹자는 아내는 선이 굵은 편이니 남자가 되었어야 했고 나는 섬세한 편이니 여자로 태어났다면 아주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로 우리 부부간의 성격도 매우 대별이 되는 편이다.
며칠 전에도 우리 부부는 정말 매우 사소한 일이었지만 아주 뚜렷한 성격 차이에서 나오는 단순한 대화로 인하여 서로
간에 심한 감정 다툼으로 까지 비화를 하고 말았다.
지난 일요일 우리 가족이 이웃에 살고 있는 여동생 가족과 멀지 않은 외지로 나가서 소주를 겸한 오리 구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살아가는 가정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초등교 6학년인 조카딸에게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는 단계에서 대학생인 내
아들의 영어 공부 실례를 들게 되었었다.
조카딸과 우리 아들은 내종 또는 고종(외종) 사촌지간으로 우리와 여동생 네는 누가 보더라도 허물이 없는 사이이고
서로 가식이나 허례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가 않다.
우리 아들의 공부 예인 즉, 우리 아들이 군 입대 전 대학 생활 2년 동안 여름·겨울 방학 때 호주 시드니에 가서
영어 어학연수를 각기 3개월씩을 다녀오면서 호주 어학연수를 가기 전의 토익(TOEIC) 영어 점수는 285점이었었는데 아들이 열심히 공부를 한
결과 첫 해외연수 이후는 480점을 받았었는데 두 번째 연수 후에는 784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극히 평범한 실전적 영어공부 예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나의 이야기에 대하여 내 말끝에 발끈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우리 아들이 토익을 285점 밖에 받지를
못했다고 까발리면 시누이 가족들이 우리 아들 머리가 나쁘다고 흉을 보게 될 것이니 제발 285점 점수 이야기는 제발 빼고서 하라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하기야 만일 여동생 부부의 삶이 넉넉하지 못하였다면 내가 호주 영어연수 운운하는 것조차도 그들에게 사치로 들려
말조심을 해야 할 형편이었겠지만 다행히도 여동생네 살림 형편은 아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나이 대에서는 꽤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요 며칠 전 점심 밥상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아내가 다시 꺼내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토익 285점이 썩 좋은 점수는 아니더라도 아주 나쁜 점수는 아니었고 비록 토익이 처음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면 700점, 아니 800점 이상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들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 결과였고
누구든 열심히 공부를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실제의 예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점심을 먹던 밥숟가락을 식탁에 놓고 가방을 둘러매고 탁구를 치러 집 밖으로 나서
버렸지만 내가 진정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른 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싶다.
평소 나는 좀처럼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으로 이제 내 나이 60 평생에 돌멩이처럼 굳어진 것이니 쉽게 내 성격을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만약 내 성격이 이제라도 바뀌었다면 그것은 죽을 때가 되어서 마음이 변한 것으로 해석이 되기도 하고 더욱이 아내가 섭섭한 것은
이미 우리 결혼 생활 30년에 우리 부부가 서로 성격을 익히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이리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 오느냐는
것이었다.
말다툼이 있던 그 다음 날은 아내가 아침 일찍 태백산에 가는 날이었고 나는 어제의 마음이 편치를 않아서 그 녀를
본체만체 냉냉하게 대해주었으니 산행을 나서는 그 녀의 마음도 속이 편할 리는 만무했으리라.
아내가 집을 나선 후 약 2시간이나 지났을까 내 휴대폰에서 'I LOVE YOU'란 경쾌한 음이
들려온다. 이 음성 메시지는 누군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달했다는 신호음이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아내로 터 '어제의 일은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다.'라는 사과 메시지였었다.
나도 산행하는 아내의 무거워진 마음을 덜어주고 싶었던 차에 때마침 아내의 사과 끝에 '화를 내서 나도 미안하게
되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바로 날려 보냈다. 사실 상호간에 얼굴을 맞대고나 전화로도 사과하기도 매우 쑥스런 법인데 휴대폰으로의 문자 메시지로
사과는 안성맞춤인 듯싶다.
부부간에는 너무 가깝기에 서로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에도 얼어붙은 가슴이나 엉클어진 마음을
쉽사리 풀기도 한 것이니 그래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생겨 난 듯하다. 며칠간 우리 부부간에 서로 새촘한 마음으로 어색한 틈새가
보였었지만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음으로 해서 봄눈 녹듯이 녹아 내렸고 다시 우리 부부는 원래의 보금자리로 다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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