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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베트남 여행
2006년 04월 25일 (화) 00:00:00 유재근 시민기자 jae810@ezville.net

부천타임즈: 유재근 시민기자

   
▲ 하노이 시내에서 씨클로를 타는 모습

지난 주에는 베트남 북부지역인 하노이(수도; 주민 387만명, 한국교민 약 1천명) 시내및 하롱베이(Halong bay)를 여행하였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이 주간에는 5년에 1회씩 열리는 베트남 공산당 전당 대회가 열리고 있어 하노이 시내 교통이 혼잡하여 호치민 생가및 호치민 박물관 등의 방문은 생략을 한채 하노이 시내투어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 공항은 아담한 크기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우리 나라의 제주 공항을 설계한 사람이 설계를 했고 공항 크기도 제주공항과 비슷하다고 한다.

베트남은 칠레 다음으로 세계에서 남북으로 제일 긴 나라로 국가 지형의 모습은 남쪽을 용머리로 둔 S자형 용 몸체로 70% 이상의 땅이 숲과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 연합으로 북위 17도 다낭시를 기점으로 우리 나라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치뤘던 국가로서 당시에 우리 나라 지원병의 숫자만해도 32만 명에 달했고 사망자 약 5천명에 부상병은 15천명에 달하였으니 우리 나라 전쟁사에서 지워 버릴 수 없는 국가 임에 틀림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만해도 한국은 유엔이 인정한 121개국중 인도 다음으로 제일 가난한 120번째 국가로서 당시 GNP는 70불에도 못미쳐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태국, 베트남 등에서 안남미를 원조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은 베트남전 전투 수당및 독일 광부, 간호사 등의 임금 담보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이은 포항제철 건설로 경제의 불을 지피기 시작하여 지금의 GNP 1만불 시대에 살게 된 밑거름이 된 것이다.

베트남은 총인구가 85백만 명에 달하나 미국과의 전쟁 당시 미군이 뿌린 고엽제로 아직도 2백만 명이 후유증및 기형아 등 탄생으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전및 미국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민적 자부심과 자긍심이 매우 강한 편이다. 국민적 자존심이 강한 나머지 아직도 미국에 대하여 전후 보상비를 청구하지 않고 있으며 자존심이 세어 그들은 심지어 잘못을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잠수를 탄 후에 나중에 나타나서 주로 변명을 하는 쪽을 택한단다.

근대국가에 이르기 전 중국이 약 1000년간을 지배했었고 이후 1407년 중국이 다시 베트남을 정복하여 1428년에 다시 독립하였으며 1850년 이후 약 100년간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바람에 베트남 음식 문화로는 프랑스와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지금은 일상이 되었지만 젓가락을 사용, 후라이팬에 음식을 튀겨 먹는 풍습 등은 중국으로부터 서구식 빵이나 커피를 마시는 것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베트남에는 고유 문자가 없었으나 프랑스 신부에 의한 중국 발음을 라틴어식 알파벳을 사용 표기하며 알파벳에 각종 기호를 붙여 사용한다. 베트남 인구의 97%가 문맹을 깨쳤다고 한다.
중국어는 4성인 반면 태국어는 5성이며 베트남어는 6성으로 성조 구별이 제일 많은 편으로 예민한 발음 구분을 요구하는 편이다.

내가 방문한 하노이시(중국의 영향으로 市 대신에 省을 사용)는 베트남의 북부지방으로 아열대 기후로 비교적 4계절이 뚜렷한 편이나 남부 호시민시(옛 지명은 사이공;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열대 몬순 기후로 4계절이 여름뿐이다.
그러므로 하노이시에서의 겨울은 집에 내장재가 없는 관계로 별도의 전기장판이나 히터를 필요로 하며 슬리퍼도 필요하다고 한다.

베트남은 현재 GNP 567불로 가난하여 호치민시(주민 6백만명, 한국교민 약3만명) 거리에는 교통신호등(1개 설치비 70~80만원 정도)을 찾아 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교차로를 건널 때에는 천천히 걸어야지 뛰면 사고 위험이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천히 걸으면 자동차나 오토바이(Motobike), 자전거 등이 알아서 요리조리 잘 피해서 지나간다고 한다.

후진국 대부분이 그렇듯이 베트남도 많이 부패하여 돈으로 비리가 난무하며, 급행료 등이 상용되고 교통경찰은 1년에 집 한채씩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나라 교통 수단이 주로 오토바이이다 보니 주로 과속 단속및 헬멧 단속은 하는데 음주 단속은 없으며 그래서 저녁에 사고가 나면 대형으로 사고가 발생하기 쉽단다.

베트남에서 법적으로 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탈 때에 헬멧을 쓰게 하는 규정에 대하여는 극렬하게 저항을 한다고 한다. 그네들은 헬멧을 써서 더워 죽으나 교통사고로 죽으나 매일반이라며 극력 저항으로 하노이 시내에서 헬멧을 쓴 사람들은 보기 어려웠으나 시 외곽에서는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고 한다.

과속 측정은 속도 측정기가 없다 보니 눈대중으로 하게 되며 1회 걸리면 운전면허증에 1회 구멍을 뚫고 2번 걸리면 2회 구멍을 뚫으며 그 때마다 한달치 또는 두달치 월급을 벌금을 내야 하며 3번째 걸리면 삼진 아웃이 되므로 대부분 돈으로 해결을 본단다.
이렇다 보니 교통단속 경찰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운전자들간에 헤드라이트 깜빡이로 서로 신호를 교신한다.

교통단속을 할 때에는 반드시 큰 빈 트럭을 가지고 오는데 단속 걸린 오토바이가 돈을 못 줄 경우 키를 빼서 오토바이를 트럭에 실어 간단다. 오토바이에 사용하는 기름은 주로 옥탄가 높은 저급 휘발유를 사용하기에 많은 오토바이 탄 사람들은 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데 또다른 이유로는 이 나라의 미인 기준이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 등은 한국 가격의 두 배 정도를 보면 무난하단다. 하노이 시내에는 많은 시클로(cyclo; 자전거 앞자리에 손님 앉는 좌석을 만들고 뒤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 운행)들이 대기하며 손님을 맞아 시내를 구경시켜 주고 있었으며 시내를 투어하는 중 한국의 헌차를 구입하여 새로 도색함이 없이 그대로 운행하는 차량들도 더러더러 볼 수가 있었다.

베트남에서 외자유치를 호소했으나 아무 국가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대우 그룹에서 투자를 하여 한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한국 차량을 많이 구입해 차량의 65%가 한국 차량일 정도로 많으나 IMF 이후에는 일본의 것들이 늘어 나고 있는 추세란다.  

공원들 월급은 50~70불 정도이고 초등교사 월급은 150~160불 정도이고 베트남 사람들은 보통5시 정도에 기상을 하여 모든 관공서나 은행 등도 7시 30분에는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운동장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프랑스, 스페인 등의 유럽 식민지가 그러 하듯이 이 곳에도 학교 운동장을 지어 주면 학생들의 체력 단련으로 지배 국가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근력을 키워주기에 아예 학교 운동장을 만들어 주지를 않아 학생들의 체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하노이시에서 하롱베이로 이동하는 하는 구간은 약 195km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약 2시간 정도가 소용 되었으며 너른 들판과 그들이 시는 가옥 모습을 살펴 볼 수있었다.

벼 농사로는 베트남 북부는 주로 이모작을 하고 중, 남부는 3모작을 하고 있었으며 예전에는 베트남도 농사를 지었자 공평배분을 해버리는 관계로 쌀이 부족하여 쌀 수입국이었으나 1986년 도이모이(개혁.개방 쇄신)정책으로 1년내에 쌀 자급자족을 하고 2년 후 부터는 쌀 수출국으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은 후추, 사탕수수가 세계 수출 1위국이고 커피는 2위국이란다. 토지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월남전 유공자에게만 0.02%를 주었고 대부분은 20~30년간 토지를 임대해 주어 개인이 주택을 짓고 살며 임차기간 동안은 매매를 할 수 있단다.주로 도로면에 3~5m를 접하고 뒤로 15~20m 정도로 건축을 3층으로 짓는다.

   
▲ 도로 전면만 페인트 칠하고 측면은 시멘트칠

대부분이 도로면쪽에만 도색을 했고 측면은 시멘트 그대로인데 측면은 다른 사람이 잇대어 질 수있기에 페인트 칠을 안한단다.습도가 많으므로 1층은 대부분 식당으로 사용하고 2~3층을 거실로 사용을 하며 층마다 화장실은 갖추어져 있다. 가끔씩 건축을 하다 만 곳도 볼 수있는데 이들은 건축을 6개월에 걸쳐 약 2/3가량을 지은 다음 부실을 검사하기 위하여 일부러 그리 놔둔다고 한다.

베트남 남자들은 주로 전쟁에 나가 참여를 했었고 여인네들은 집에 남아 힘든 들일들을 했었으므로 그대로 풍습이 굳어 들판에는 삼각추 모양의 모자를 베트남 여인들만이 들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모자는 주로 햇빛 차단및 우산용으로 쓰이나 많은 부분 베트남에는 들판에 산이 거의 없어 노상 방뇨용으로 쓰인다.

들판에는 가끔씩 묘도 보이는데 산이 없어 장묘는 농토에 3년간 매장 후에 이장이나 화장 또는 납골당에 모신다 한다.

인구의 78%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기계에 많은 세금을 붙여 실업자가 늘어 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벼는 바투 짜르지를 않아 소를 방목시키며 캄보디아가 볍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반면 베트남 사람들은 쟁기질을 하여 모종을 한다.

가끔 산들이 까진 모습을 볼 수있는데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며 골프장으로 54홀짜리를 건축중이란다.

   
▲ Titap Dao 에서 내려다 본 바위섬들(3000개 이상)

하롱베이에는 3천여 개의 돌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도 절경이라 미군들이 이 곳은 폭격을 하지 않았다고 하며 섬들이 많은 관계로 파도가 전혀 없으며 고로 해안에는 모래 사장도 존재하지를 않는다.

일부 하롱베이 돌섬중에는 소련인 이름을 딴 TITOP DAO(티탑 섬)이 있는데 정상에는 전망대가 세워져 있어 하롱베이 섬들의 절경을 감상할 수가 있었다.

베트남 여인들은 주로 생머리에 아오자이(속옷이 비치는 하얀 겉옷) 전통 옷을 입은 모습을 공항, 호텔이나 음식점 등 관광지에서 주로 볼 수있으며 한국 텔레비죤 드라마도 시청을 할 수있는데 더빙은 남자 성우 한 명과 여자 성우 한 명이 소화해내는 것이 특이하다.

베트남에도 한류 열풍으로 장 나라양이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최고의 배우로 받들어지며 그들 국가의 홍보대사로 임명 되었고 김 현주양은 종전의 그들 빨간 립스틱을 갈색으로 선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도자기는 중국, 한국, 베트남이 유명한데 베트남 도자기는 틀로 빼내 유약을 바른 관계로 잘 깨져서 주의를 요한다.

그리고 한국에 시집오는 베트남인들은 남부 쪽에 사는 소수 민족 출신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그들의 가계를 돕기 위하여 한국행을 택한다고 한다.  

아직도 베트남인들의 평균수명은 남자 60세, 여자가 65세로 낮은 편이며 지금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약 70%나 되며 이들은 주로 미국의 문물과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종전의 러시아와 북한 문화를 익힌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갈 지는 두고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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