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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의 설렘을 들국화 차로 대신하며
구절초 차와 첫눈/오마이뉴스 임윤수기자
2003년 12월 10일 (수) 00:00:00 부천타임즈 기자 webmaster@bucheontimes.com

   
▲ 첫 눈! 첫눈이 녹아 있는 물을 받아 찻물로 끓인다.
"첫"이라는 말은 설렘을 준다. 첫사랑이 그렇고 첫키스가 그렇다. 예외 없이 첫눈도 그렇다. 그런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정말 학수고대하였던 첫눈이리라. 아직 첫눈이 오는 날 가슴에 일렁이는 설렘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좀 다른 방법으로 그 설렘을 대신하고 싶다. 

   
▲ 한여름 햇볕을 잔뜩 머금은 구절초가 웃 자라있다.
눈 펑펑 쏟아지는 거리를 방황하듯 돌아다니며 설렘을 달래는 방법도 있고, 커다란 창이 있어 밖이 훤히 보이는 찻집,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그럴싸한 장식으로 분위기를 한층 돋구는 그런 찻집에서 김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설렘을 달래거나 표현하는 방법도 있겠다.

아니면 코 삐뚤어져라 마셔대는 술로 그 모든 것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구절초 차와 사과말랭이로 첫눈을 맞이하고 있다.

   
▲ 벌들도 들국화의 유혹을 떨구지 못해 찾아들었다
오늘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조금은 썰렁할지 모르지만 창문을 열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차를 한잔 마신다. 다기를 꺼내놓고 유리다관에 준비된 구절초를 몇 송이 넣는다. 끓는 물을 넣고 다관에 피어나는 들국화를 보는 것으로 첫눈 오는 날의 설렘은 시작된다.

찻물을 끌일 때 보글거리는 물소리가 육감(六感)으로 느낄 수 있는 청각으로 다가오는 차 맛이다. 

   
▲ 조심스럽게 따 증기에 찐 들국화는 통풍 잘되는 응달에서 말려진다.
바짝 말라 꽃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오그라들었던 들국화가 물을 머금고 서서히 본연의 모습으로 환생한다. 꽃잎이 피어나고 꽃술이 통통해 지니 이것이 눈으로 차 맛을 느끼게 하는 시각의 차 맛이다.

다관에서 우려진 물을 찻잔으로 옮겨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 그 따뜻함이 온몸을 따사롭게 하니 촉각으로 차 맛을 음미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찻잔을 입술 가까이 가져가면 국화 향이 후각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차를 서서히 입 속에 넣으면 입안 가득 국화 향과 맛이 전신에 퍼지니 미각으로 차를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오감으로 차 맛을 느끼고 거기에 마음을 실으면 육감으로 차를 느끼게 된다. 오늘 같은 날엔 첫사랑이나 첫눈에 얽힌 자기 사연을 감미하면 될 듯싶다. 

   
▲ 노란 색 들국화가 차를 만들기 위해 말려지고 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육감으로 마시고 있는 구절초 차에 필자가 싣고 싶은 마지막 차 맛은 구절초 차 자체의 맛과 그 구절초 차를 건네주신 분에 대한 애틋함이다.

봄에 싹이 돋고 태양을 한껏 먹으며 자란 무성한 구절초는 초가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 색도 다양하게 흰색, 노란색, 보라색을 갖는 들국화가 있다. 맑은 가을 하늘을 아래 한 점 부끄럼 없는 듯 곧게 자란 꽃대에 활짝 피어난 들국화는 정말 아름답다.

적당하게 피어난 구절초의 일부를 조심스럽게 따서 훈증하듯 살짝 찐다. 얼마만큼 피어난 꽃을 언제 따고,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서 차 맛도 달라지고 꽃 모양도 달라진다. 찐 들국화는 통풍이 잘되는 응달에서 말리면 봄부터 가을을 담고 있는 구절초 차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 쪼그라진 꽃잎들이 다관에서 물을 먹게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끓는 물에서 올라오는 증기에 찐 꽃들을 햇볕에 노출시키지 않고 응달을 찾아다니며 말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별다른 가공 없이 그대로 마실 차의 재료가 되는 것이기에 좋은 바람과 깨끗한 주변이 필수니 한적한 산사가 차를 만드는 곳으로는 제격이다.

흔히 구절초라고도 하는 들국화는 꽃 중의 첫 꽃이라 할만큼 아름답고 깔끔하다.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들국화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엉터리 말이 아님을 인정하게 될 거다. 그런 들국화로 만들어진 차를 첫 눈 오는 날 마신다는 것은 행복한 설렘이 된다. 

   
▲ 유리 다관에서 국화꽃들이 다시 피었다. 들국화차는 육감을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런 구절초차에 사과말랭이를 곁들여 첫눈을 맞이하는 아침이 참 행복하다. 무미에 가까울 만큼 깨끗한 차 맛에 달콤새콤한 사과말랭이 맛이 첫눈에 묻혀버린 첫사랑만큼이나 아침을 행복하게 해 준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 첫눈에 곁들이고 싶은 하나의 사랑은 구절초처럼 육감으로 가슴에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이런 설경, 흰눈이 소복하게 쌓인 설경을 바라보며,,, ⓒ2003 임윤수
기사제공 :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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