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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의 대변신 "진즉 이 병에 왜 안걸렸는지"
[추석특집 꽁트] 염씨의 죽을병
2005년 09월 16일 (금) 00:00:00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박상기(소설가, 부천타임즈 문화부전문위원)
 
요즘 들어 부쩍 염규만 씨는 자신의 삶에 회의가 들었다.
지금까지는 꼬리에 불을 단 황소처럼 매사에 노심초사하며 죽을 둥 살 둥 살아오느라 인생의 짭조름하고 자잘한 재미를 맛볼 겨를이 없었다는 회한이 시나브로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안 식구들한테 잔정이 없이 근검과 절약만을 떡 먹이듯 되뇌며 구두쇠 노릇을 한 것 같았다. 친척이나 이웃, 목욕탕 종업원들에게도 너무 인색하고 야박하게 군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한테는 어릴 적부터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를 금쪽 같이 알도록 닦달했고, 마누라에게도 쇠고기 한 근을 황금 한 근만큼이나 중하게 여기도록 일삼아 나무라온 그였다. 물론 자신은 더 지독스레 검약을 지킨 탓에 오죽하면 친구들이 ‘소금 염(鹽)자 염규만’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을까.

철이 든 이래 줄곧 그렇게 살아온 덕분으로 염씨는 어엿한 집을 지녔고 적잖은 수입을 올려주는 목욕탕을 가지고 있으며, 고향 근처에 묏자리용 산 마지기나마 장만했다. 빈농의 홑어미 아들로 겨우 시골 중학교를 마치고 상경한 열일곱살 때부터 환갑 밑자리인 지금까지 염씨는 오로지 ‘일은 남보다 두 배로 하고 돈은 남의 절반만 쓴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내가 참 독하게 살아온 건 사실이여.”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고 나자 마음 밑바닥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맞어. 그만 하면 괄시는 안받고 살 만큼 되었잖아. 이젠 가족에게 푸근하고, 남한테도 너무 모질게 굴지 말아야지. 말마따나 죽어서 지고 갈 재산도 아니고.

추석 3일 연휴로 목욕탕의 문을 닫아서 제법 느긋하게 쉬는 참이라 염씨는 살아온 날들의 우여곡절을 곰곰 따져볼 여유가 생겼다. 요즘 사람들은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자가용 승용차를 굴리고 몇 푼 월급에도 철철이 양복을 개비한다는데, 이만한 재산을 지닌 자기는 고물차가 있나 태깔이 좋은 양복을 맞춰 입은 적이 있나 싶은 거였다.

자신이야 일찍이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였고 또 그런 생활에 안성맞춤으로 익숙해져 있지만, 마누라나 자식들은 가장의 우격다짐에 눌려서 풍년거지 꼴로 사느라 오죽 속앓이를 했을까 하는 측은함까지 슬며시 끼어들었다.

꽁꽁 옴쳐 매고 살아왔던 마음이 시나브로 풀어지니, 임씨의 머리에 어린 시절 시골 서당의 훈장님한테 배웠던 문장 한 구절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는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그 나무 밑에 지름길이 열린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구절이었다. 산 속에 맛 좋은 과일이 달린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가 있으면 소문을 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과일을 따러 오므로 자연스럽게 마을로부터 그 나무가 있는 곳까지 지름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사람의 경우, 좋은 열매란 바로 덕이다. 남에게 덕을 베풀면 자연히 사람이 따르고 존경받는다, 이 말이여.”
뜻을 풀어주던 훈장님의 목소리가 또록또록 살아났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힘든 사람에게 물심양면으로 기꺼이 도움을 주는 게 덕이고, 그런 덕을 쌓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명토 박았었다.

염씨는 그게 다 신선이나 할 소리인 줄만 여겼다. 복숭아든 오얏이든 나 혼자 먹기도 모자란 판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게 어디 있겠냐 싶었다. 설령 혼자 먹고 좀 남는다고 해도 잘 갈무리해서 내 집을 사고 내 밭을 사는 데 보태야 옳다고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하루 두 끼를 먹기도 힘들게 자란 어린 시절이나, 맨주먹으로 올라와 서울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던 때나, 한두 푼씩 모아서 목욕탕을 장만한 오십대 초반의 나이까지나....

옴니암니 자신의 삶을 되새김질해본 염씨는 환갑 밑자리인 지금이 자신의 삶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매듭지었다. 태어나 지금까지는 삶의 전쟁터에서 허겁지겁 피난민처럼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평화로운 마을의 여유로운 정착민이 되고 싶었다.

임진왜란이 되었든 한국동란이 되었든, 목숨부지가 어려운 전쟁 중에는 사람이 악착스럽고 독해야 살아남는다. 독 오른 가을 살모사처럼 살아야 겨우 제 목숨을 챙기고 처자를 건사한다.

자신은 한 치의 벗어남이 없이 사십여 년을 궁핍이란 전쟁터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 덕에 나이로 보나 재물로 보나,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만해졌다. 그만 살벌한 전쟁터를 빠져나와 고향 같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두루두루 인심을 얻고 마음 편하게 늙어가야겠다고 작심했다.

마음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다른 해 같으면 추석 명절로 사흘씩이나 목욕탕 문을 닫아야 하는 게 몹시 가슴을 아리게 했을 텐데, 이 번 추석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카운터의 미스 양이나 보일러실 오군과 목욕 도우미 김군, 여탕의 과부 오씨와 조선족 아줌마까지 모두가 가족들과 뜨뜻한 고깃국이라도 배불리 먹으며 명절 연휴를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좀 더 넉넉히 떡값을 쥐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었다.

그들의 얼굴 위로 낯선 얼굴 하나가 더 떠올랐다. 하루 종일 팬티 차림에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이빨을 사려 물고 일하는 젊은이의 얼굴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부터 8년 동안 남의 때를 밀어주는 일로 근근이 밥벌이를 하던 염씨 자신이었다.

추석이 지나자 염씨는 더 이상 ‘소금 염자 염규만’이 아니었다.

   

“여보, 이거 말이야. 연분홍 갑사 옷감인데 당신 한 벌 해 입으라고 사왔어. 이걸로 치마저고리를 해 입으면 새 인물이 날 거여.”

염씨는 수줍음을 띈 얼굴로 옷감 꾸러미를 아내에게 내밀었다. 염씨의 아내는 놀라서 초례청에 오른 암탉처럼 눈을 호동그레 떴다.

“영춘이는 스킨스쿠버인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지? 그려, 강습비를 대줄 테니까 열심히 배워라. 대신 거기 미쳐서 공부를 내팽개치면 안돼.”

갓 대학에 입학한 지난봄에 염씨의 아들 영춘은 스킨스쿠버를 배우겠다고 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아들녀석은 자다가 떡을 얻어먹은 듯 눈을 멀뚱거리며 아버지의 안색부터 살폈다.

“영애야. 네 방 컴퓨터가 너무 낡았더라. 이 번에 좋은 걸로 바꾸자.”

뿐만 아니었다. 목욕탕의 종업원들도 갑자기 변해버린 주인아저씨의 말씨와 태도를 긴가민가 하는 눈으로 칼눈재비를 하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조그만 실수에도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호통을 치며, 보일러실에서부터 탕안 청소까지 골골샅샅을 살펴가면서 야단을 치던 사장님은 어디로 가고, 갑작스럽게 허허 웃으면서 다독거려 주는 크리스마스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가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월급을 30퍼센트나 올려주고 가을맞이 선물이라며 운동복을 한 벌씩 사주기까지 하다니.....

염씨가 생활 태도를 일백팔십도로 바꿔 훈장님의 가르침대로 덕을 베풀기 시작한 지 거의 한달이 지났다.

그 동안에 매주 1회씩 동네 경로당의 노인들에게 무료 목욕을 시켜 주었으며, 위암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4촌 형수의 수술비를 대납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전 종업원을 데리고 극장에 가보았고, 가족끼리는 고속철을 타고 해인사 관광도 다녀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염씨 자신은 마음 한 가운데에 따뜻한 난로를 지핀 것처럼 훈훈해 좋은데, 마누라나 자식들이나 종업원들은 옛날보다도 더 염씨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었다. 뭔가 의심이 담긴 눈으로 살피며, 염씨를 거북스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밤, 잠자리에 들려는 참에 염씨의 아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걸어왔다.

“여보, 당신 혼자서 그러지 말고 내일 나랑 같이 큰 병원에 가봅시다.”
“병원은 무슨.... 내가 언제 아프다고 했소?”
뚱딴지같은 아내의 말에 염씨는 뜨악한 낯꽃을 지었다.

“숨길 것을 숨겨야죠. 온 동네에 소문이 좌악 났는데....."
"소문이라니?"
"당신이 몹쓸 병에 걸려서 몇 달 못산다고....”
“누가 그런!”

“다 짐작이 있지, 당신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요? 영철이도 영애도 걱정이 태산 같고, 종업원들도 뒤숭숭 해요.”
“그러니까 뭣이냐. 내가 지금 죽을병에 걸려서 혼자 끙끙 앓고 있고, 죽기 전에 죄 닦음으로 착한 일을 한다, 그 말이여?”
“내 애간장이 다 녹겠수. 탁 털어놓아 봐요.”

'이 여편네가 생사람 잡네'하고 버럭 고함을 치려고 했지만,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화내려다 웃는 바람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실 내가 암보다도 더 지독한 죽을병에 걸렸어."
"아이고오!"

아내의 탄식이 터졌다. 아홉수가 무섭다더니, 지지리 복도 없는 이 자린고비 영감이 환갑도 못 치르고 칠성판에 누울 모양인가 싶어 울컥 눈물이 솟았다. 금방 통곡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아내를 보며 염씨는 느물느물 능청을 떨었다.

"여보. 그런데 말이여.... 이제야 사는 맛을 알겠어. 왜 진즉 내가 이 병에 안 걸렸는지 그게 서운하다니까."

   
▲ 박상기(소설가-부천타임즈 문화전문위원 ⓒ부천타임즈

박상기(소설가-부천타임즈 문화전문위원)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새> 당선. 시사저널 편집장 역임. <홍수의 밤> <덫> <사해> 등 20여 편의 중, 단편을 쓰고 중편집 <서울 피라미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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