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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2005년 03월 12일 (토)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 이종격투기 경기 모습.

 
나와 동생을 매혹한 볼거리, 서커스와 권투

어린 시절 나와 두 살 터울이 지는 내 남동생을 공히 열광시킨 것은 서커스와 권투였다. 1970년대 부산 동래 온천장 인근 공터에 천막의 가설극장이 들어서고, 사슬에 묶인 원숭이가 겁먹은 눈망울을 굴리며 우리를 바라보면 일곱 살, 다섯 살 꼬마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공중 그네타기와 마술, 여기에 동물 조련시범까지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서커스는 별 다른 오락거리를 가지지 못한 당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축제였다.

우리 형제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가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고, 제 몸을 구부려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조그만 장독 속을 드나들고, 십 수 미터의 허공에서 밧줄을 입에 물고 돌아갈 때면 엄마는 이런 말로 우리를 겁줬던가.

"아버지 말씀 안 듣고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너희도 저 아이처럼 서커스단에 팔아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10살을 갓 넘긴 '다혈질의 형제'는 조지 포먼과 조 프레이저, 캐시어스 클레이(알리)의 뒤를 잇는 철권들, 예컨대 로베르토 듀란, 토마스 헌즈, 슈가레이 레너드, 마빈 해글러에 미친 듯 열광했다. 특히, 갓 스물에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마이크 타이슨은 우리를 포함한 또래 동네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열 서너 명의 아이들이 친구네 집 TV 앞에 모여 앉을 때면 본 경기가 시작되기 전 '오픈 게임'에서부터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작렬하는 타이슨의 핵주먹. 상대는 링에 오른 지 채 3분도 버티지 못하고 썩은 고목처럼 픽픽 쓰러졌다. 그런 날이면 나와 친구들은 "권투 글러브를 사 달라"고 너나없이 엄마에게 칭얼대곤 했다.

서커스와 권투의 이면에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그토록 열광했고, 매혹 당했던 서커스와 권투가 시들해진 것은 수염 근사한 독일철학자 마르크스가 말한 '본질'과 '현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던 10대 후반이다.

애정과 상호신뢰로 길들여지리라 생각했던 서커스단의 동물들이 쇠파이프에 의한 구타와 굶주림 거기에, 불과 마취주사의 협박으로 사육되고, 인간육체의 한계를 보여주던 꼬마아이의 묘기가 상습적인 매질로 훈련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권투 역시 그랬다. "복서가 아니라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할 수 일이란 갱과 호텔벨보이 밖에 없다"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때리고 맞는 것으로 밥을 벌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을 본 것이다. 왜 권투선수는 절대다수가 흑인인지, 수천 달러짜리 VIP석을 차지한 채 피 흘리는 흑인복서를 구경하는 사람은 왜 대부분 백인인지도 동시에 깨달았다.

아이였던 나와 동생을 매혹시킨 서커스와 권투 뒤에는 비판받아 마땅할 '천민자본주의' 혹은, '카지노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과 그 법칙을 부지불식간에 내면화시키는 세상의 시스템이 두려워졌다.

이종격투기 또한, 서커스와 권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내가 지난날의 서커스와 권투 이상으로 경계하며 주시하는 게 이종격투기다. MBC ESPN과 XTM 등의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K-1(입식타격 경기)과 프라이드(타격에 잡고 뒹구는 그라운드 테크닉까지 용인하는 경기)의 외형적 치장과 드라마적 요소는 서커스와 권투에 비길 바가 아니다.

클래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배경음악 삼아 유치할 정도로 화려한 가운을 입고 등장하는 거대한 '야수' 밥 샙, 200Kg이 넘는 거구로 링을 압도하는 전 일본 스모챔피언(요코즈나) 아케보노, 네덜란드의 '블랙 파이트 머신' 어네스트 호스트와 레미 본야스키, 크로아티아 국회의원에까지 오른 '하이킥과 왼손 어퍼컷의 달인' 미르코 크로캅. 여기에, 호레이스 그레이시를 필두로 몇 명의 형제가 동시에 프라이드 권좌를 좌지우지하는 브라질 유술의 대가 그레이시 가문의 선수들까지.

이들이 치고받고 조르는 경기(이걸 경기라고 불러야할지 싸움이라 해야 할 지 의문스럽지만)는 그야말로 링 바닥이 혈흔으로 낭자한 '피의 카니발'이다.

여기에도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시간 보내기가 무료한 유한계급의 관음욕구-가난한 육체와 엇나간 관음증을 엮어 상품으로 포장하는 장사꾼(자본주의)'이란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서커스와 권투에서 보았던 바로 그 시스템이다.

인간 속에 웅크린 폭력욕구와 가학성을 비판 없이 불러내는 이종격투기. 우리가 '비대한 육체, 빈한한 영혼이 벌이는 카니발'이라 불려 마땅한 이종격투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스템 때문이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폭력과 가학의 숭배자가 되게 만드는 시스템 말이다.

나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둘 모두를 100% 신뢰하진 않는다. 두 사람 또한 교육과 자기수양을 통해 '착함'과 '악함'의 본질적 품성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형이상학적 철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보다 '착해지도록' 노력해야 함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다.

그런데, 어떤가? 이종격투기는 인간의 그런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있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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