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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향연과 극한의 시대
왜, 무엇 때문에 이종격투기를 즐기는가
2005년 03월 12일 (토)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정윤수 기자 

   
▲ 2004년 4월 1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1 서울대회에서 레미 본야스키(왼쪽)가 아지즈 카투에게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서초동 동물병원’, ‘일산 안과’, ‘연희동 중국집’, ‘이대앞 미용실’…. 얼마 전까지 자주 방송되던 모 포털 사이트의 광고 문안이다. 인기 스타 전지현씨가 귀엽게 차려입고 출연한 이 광고에는 한 가지 내용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강남구 격투기’다.

강남구와 격투기

강남구와 격투기. 이 두 단어는, 그리고 그것의 결합인 ‘강남구 격투기’는 몇 가지 생각할 만한 것을 제시한다. 자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전지현씨가 격투기를, 그것도 강남구의 격투기를 검색 창에 쳐 보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행위에는 이종격투기가 현대 사회에, 그리고 요즘의 우리 사회에 어떤 기호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종 격투기는 전 국민의 스포츠라고 하는 축구와는 다른 지점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그 옛날 ‘약속 다방’에 몰려 앉아 구경하던 김일이나 여건부의 레슬링은 물론이요, 홍수환이나 박찬희의 권투와도 전혀 다른 세대의 문화다.

심지어는 희대의 흥행사이자 스포츠재벌이며 그 자신 실제로 링에 오르기도 하는 미국 프로레슬링의 빈스 맥마흔과 그의 친구들(언더테이커, 커트 앵글, 더 록, 스톤 골드 등)이 수년째 링 위에서 벌이고 있는 전율의 드라마와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매우 특이한 육체적 행위다.

그렇다면 이종격투기는 그야말로 ‘무규칙’의 싸움일 뿐인가. 그 어느 격투기보다 유혈이 낭자한, 말 그대로 혈전이지만 이 링에도 규칙은 있으며 최소한의 금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의 대규모 스포츠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 즉 스폰서, 미디어, 관객이라는 3위 일체를 지금 그 어느 격투기보다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프로레슬링에 대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뜨는 '고대 비극 같은 과장의 드라마'라고 표현했지만 이종격투기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비극적인 처절함으로 충만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적으로 이종 격투기는 감각의 극단을 추구한다. 사실 모든 스포츠는 원시 상태를 동경하는 바 이종격투기만큼 그 생생한 증거는 달리 없다.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축구에 대하여 최소한의 옷차림으로 푸른 초원을 달리며 방해물을 제압하거나 피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는 것이 사냥을 떠올리게 한다고 쓴 것은 이종 격투기에 비하면 매우 신사적이다.

권투, 레슬링,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여타의 격투기가 있으나 이종격투기는 그것의 모든 것이 한 군데 집중되어 있으므로 단일 격투기가 갖는 파괴력과 그 충격파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증폭된다. 우리가 심야에 틈틈이 보았듯이 그 링 위의 행위는 몸서리쳐질 정도로 강력한 화면이거니와 이에 대하여 우리는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좀처럼 리모콘을 돌리지 못한다.

이종격투기는 스포츠인가, 아닌가

이종격투기는 스포츠인가 아닌가, 그야말로 어떤 ‘룰’도 없이 마구잡이로 싸우는 ‘스트리트 파이트’인가 아니면 ‘이종’의 격투기들이 신체의 치명적 손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 아래 겨루는 스포츠인가.

어떤 점에서 이러한 질문은 요즘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각의 링’, 그 혈전들을 살피는데 있어 지나치게 한가롭다. 하지만 이종격투기가 더 이상 뒷골목의 주먹 싸움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의 파이터와 미디어와 스폰서가 결합하고 이에 수만 명의 관객이 운집하는, 관찰할 만한 현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혈이 낭자한 이 냉혹한 정글에 대하여 잠시 거리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행위가 스포츠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다양한 관점과 갈래가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것이 ‘사회적 제도’로 정착되어 있는가, 혹은 그 행위자가 하나의 제도로 수긍하고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스포츠가 ‘온 몸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육체적 행위’라고 한다면 이는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번지 점프는 온몸을 아래 던지는 것이지만 아직 레저다. 그에 비하여 검지손가락을 살짝 잡아당기는 사격은 스포츠다. 섹스가 스포츠가 아니듯이 바둑은 당연히 스포츠다. 참여자의 관점에서 보건대 마라토너 이봉주는 스포츠를 하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는 레저의 일환으로 새벽을 달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종격투기는 뒷골목의 싸움이 아니라 엄연히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더욱이 현대의 스포츠가 대개 그렇듯이 하나의 거대한 ‘구경거리’로 확고한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종격투기 선수를 지망하는 사람도 늘고는 있지만, 어쨌거나 이 경기는 현대 스포츠의 가장 선명한 현상의 하나인, ‘하는’ 경기가 아니라 ‘보는’ 경기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왜 보는가? 그리고 그것은 왜 화양리나 영등포가 아니라 ‘강남구 격투기’인가. 왜 거의 파괴적으로까지 보이는 처절한 육체적 향연에 리모콘은 점점 더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는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육체는 상당한 금기와 강박의 대상이었다. 부모가 물려주신 육체에 흠집을 내거나 부상을 입는 일은 ‘불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폭발적 발전에 의하여, 그리고 97년의 IMF 사태로 인하여 육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육체는 하나의 흥미로운 ‘구경 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화장, 성형, 얼짱 등의 용어로 충분하다. 이것은 흔한 표현대로 ‘관음증’의 어떤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자신의 육체에 대하여 좀 더 주체적이고 건강한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측면도 있다. 조폭의 문신과 달리 홍대 앞 문화의 ‘헤나 문신’이나 축구 스타 안정환의 어깨 문신이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작용하는 것이 그 맥락이다.

   
▲ 최홍만 선수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K-1공식 홈페이지

이와 더불어 IMF 사태는 육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래된 관습을 바꿔 놓았다. IMF 사태는 기존의 저돌적 근대화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 계기였다. 조직과 집단에 충성하면 개인과 가족의 평생이 보장된다는 ‘신화’는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앞에서 산산이 깨졌다. 최후로 믿을 것은 자기 육체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 삶과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은 결국 자신의 육체로 끝내 지킬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은 우리 사회에 ‘건강한 육체’에 대한 열풍을 일으켰고 이제 그 열기는 헬스와 에어로빅을 거쳐 명상과 요가로 숨 가쁘게 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문화, 여가, 교육, 종교, 레저 등 일상 생활의 전면에 걸쳐 ‘조용한 혁명’이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추상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삶이란 매우 숭고하고 근엄한 것이지만 그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개인’에게 있어 삶이란 지루하고 버거운 일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상이란 가혹하게도 노동 중심적인 인간상으로 요약되는 근대적 산업화를 넘어서지 못했다.

금욕주의와 성실 근면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모범적인 생활 형태로 인정받았으며 개인적 가치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소비적이고 나태한, 심지어는 악마적인 폐단처럼 배척 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갈망하게 된 IMF 이후,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개인의 다양한 가치와 창조적 즐거움에 대하여 기꺼이 용인할 수 있는 사회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좀 더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몸을 ‘디자인’하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폭넓게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젊은 세대는 자기들을 키워준 대중문화의 긍정적 속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자기 몸을 가꾸고 변화시킨다. 그들은 두발자유와 머리 염색과 액세서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했다.

육체의 건강함, 그 움직임의 격렬한 긴장, 그 긴장이 불어오는 탄력과 그 매혹은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움이며 ‘육체적 퍼포먼스’에 의한 감수성의 혁명은 지금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신화가 되어 화장과 헬스를 넘어서 성형수술과 이종 격투기라는 극한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21C초 한국사회의 육체적 향연의 처절한 극한

얼짱, 화장, 요가, 에어로빅, 몸짱, 헬스, 문신, 마라톤 등등, 어쩌면 훗날의 문화사가들은 21세기 초의 한국 사회의 ‘육체적 향연’이라고 부를 법도 한데, 이 지점에서 이종격투기는 권투, 태권도, 유도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기존의 프로레슬링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육체에 대한 충격적인 욕망’을 전율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종격투기는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레저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최후의 극단을 추구하는 현대적 속성과 맞물려 육체가 맞싸우고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극한을 보여줌으로써 이 시대의 어떤 거울이 되고 있다.

동시에 ‘강남구 격투기’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그리고 국내의 어느 이종 격투기 대회가 실제로 강남구에서 그렇게 하듯이 ‘근사한 저녁 식사와 더불어 즐기는 피의 격투기’라는 점에서, 핏빛이 남아있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한 눈으로는 혈전을 벌이는 링 위를 주목하는, 이 한국형 이종격투기는 문화적 자산과 다양한 콘텐츠가 부족한 이 현실에서 한 밤의 구경거리의 극한을 추구하며 찾아낸 육체적 ‘향연’의 처절한 극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강남구 격투기’에서 정녕 놀라운 것은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신속한 몸놀림과 파괴적인 맞싸움이 아니라 그것을 저녁 나들이의 식사와 파티와 회식에 맞춰 동시에 즐기는 이 사회의 ‘독특한’ 미적 취향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정윤수 씨는 문화비평 계간지 <리뷰>의 편집위원을 지냈고 KBS와 SBS 스포츠채널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화아카데미 <풀로엮은집>의 상임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축구장을 보호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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