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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2005년 02월 03일 (목)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안병기 기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詩 <너에게 묻는다>전문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단호하다. 동시에 무엄하기까지 하다. 이 詩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에게 단숨에 "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힐난한다.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우리를 한 순간에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어쩌면 시인은 연탄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몰인정함을 환기시키고자 했을는지 모른다. 그의 침(針)은 날카롭기 짝이 없으므로 詩를 읽는 이의 양심에 와 따끔하게 꽂히고, 그가 날린 어퍼컷은 정확하게 나의 빈약한 턱주가리에 와 적중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는다. 알고 보니 난 연탄만도 못한 인간이었군 그래. 내겐 그 무엇 보다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군. 어퍼컷을 맞은 충격으로 땅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나는 시간이 흘러가자 차츰 그 충격에서 회복되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 알고 보니 계몽주의, 또 너야? 난 마치 연탄재에 대한 태도 하나에 내 전 존재를 압축해서 평가하려드는 그 획일성이 숨 막히고 그 계몽주의적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이것 보라고. 우선적으로 반성해야 마땅한 것은 내가 아니라 시인이 의도하는 그 알량한 계몽주의가 아니냐고.

도대체 시인의 이 거침없는 도덕적 우월감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읽기 편하도록 애써 3행으로 나눠져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 詩는 약간 긴 한 줄의 문장일 뿐이다. 난 짧은 이 詩의 어디에서도 그가 가진 도덕적 우월감의 근거와 실체를 발견해내지 못한다.

"그 소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모두였다" 라고 술회하는 자콥(Jacob)의 <지평선>이라는 詩나, "당신 생각을 켜 놓은채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함민복의 익살스런 <가을>이라는 詩나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 껍질만을 남겼다"라고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조개의 삶을 찬탄해마지 않는 최승호의 <전집>이라는 詩,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라고 자신의 존재의 쓸쓸함을 감싸는 정현종의 <마른 나뭇잎> 이라는 詩와 "내 귀는 소라껍질 /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는 사춘기 시절 즐겨 읊었던 장 콕토(Jean Cocteau)의 <귀>라는 시 등등 찾아보면 한 줄 어림으로 이루어진 詩는 의외로 많다.

그렇다. 詩가 구태여 여러 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한 줄로 된 詩는 거의 시인의 오랜 세월에서 오는 깨달음이 아닌 순간적인 깨침의 소산일 경우가 많다. 그렇긴 하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만만한 놀이가 아니다. 삐끗하면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며 잠꼬대를 토해내는 형국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詩는 위험하다. 언어의 유희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토록 짧은 구절 속에 삶의 오묘함과 삶의 진정성과 시적 진실을 담아내기가 쉬운 일일 수 있겠는지를.

그런 점에서 나는 안도현의 詩 <너에게 묻는다>를 마음에 넣어두고 시시때때로 꺼내 읊고 싶은 좋은 詩로 흔쾌히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이 詩는 의심할 바 없이 시인의 뛰어난 재치의 산물이긴 하지만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게다가 난 이 시가 변형된 계몽주의 그 이상은 아니라는 혐의점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기에다 결코 명작은 아니지만 계몽주의적이 아니라서 유쾌할 수도 있는 시 한편을 살짝 내려놓고 간다. 부디 ‘즐감’ 하시라.

“이 따위 詩 한편에 결코 주눅 들지 마라./언제 詩라는 一物이/
우리에게 단 한번이라도 뜨거운 밥 한 술이었던 적이 있느냐” 
 
덧붙이는 글

결코 이 詩가 가진 감동을 떨어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이 詩가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계몽주의적인 측면을 경계하고자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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