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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영웅이다? 아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카타르까지...넉 달 사이의 변화
2005년 01월 29일 (토) 00:00:00 오마이뉴스 webmaster@ohmynews.com

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영웅(英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보통 사람으로는 엄두도 못 낼 유익한 대사업을 이룩하여 칭송받는 사람'(동아 새국어사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 박주영

ⓒ2005 대한축구협회

27일 새벽 일본 청소년대표팀을 침몰시킨 주역 박주영(1985년 7월 10일생, 182cm, 70kg)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축구계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럴 만도 하다. 박주영은 이번 카타르 초청 축구대회에서 노르웨이와 붙었던 세 번째 경기만 빼고 매 경기 두 골 이상씩 터뜨리며 25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우리 쪽으로 끌어왔다.

네 경기를 뛰면서 모두 9골, 대표팀의 총 득점이 11골임을 감안하면 그의 양 손에 쥐어진 득점왕과 MVP 트로피가 그리 무거워보이지도 않는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공을 조금이라도 차 본 사람들이면 다 느낄 수 있다. 골은 아무나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구나 제대로 된 수비 시스템을 상대로 그만큼 뽑아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박주영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외로운 영웅이 아니다. 혼자만 뛰어난 존재이기에 그렇게 칭송받는 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말레이시아에선 골 결정력 문제 노출

박주영은 불과 넉 달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04 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대회 역사에 대한민국의 열 한 번째 우승 기록을 아로새기며 득점왕(6골)과 MVP를 휩쓸었다.

결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대회를 거치며 박주영은 달라졌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단순히 골 숫자만 6에서 9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김승용과의 찰떡궁합은 아시아청소년대회부터 본격화됐다.

이라크와 맞붙은 D그룹 첫 경기(2004년 9월 26일/ 0:3 패)에서 박주영은 김승용이 결정적으로 만들어준 기회를 세 차례 이상 놓쳤다.

골잡이로서 박주영의 문제점은 타이와의 D그룹 마지막 경기(2004년 9월 30일 / 1:1 무승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느린 슈팅 타이밍이 문제였다. 41분, 김승용이 만들어낸 직접 프리킥 기회에서 멋진 19m 감아차기로 동점을 만들기는 했지만 후반전에 연거푸 찾아온 쉬운 득점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는 바람에 골 결정력에 문제점이 많다는 진단까지 받은 바 있다.

47-58-70분으로 이어진 진정한 해트트릭의 기회를 골로 엮어내지 못한 것. 비가 내려 미끄러웠던 그라운드 컨디션과 타이 문지기 솜바트판의 신들린 듯한 선방이 얄밉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 2004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결승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박주영은 수비수 4명을 따돌리며 오른발 꺾어차기로 골을 성공시키는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콸라룸프르=연합뉴스)

ⓒ2005 연합뉴스

이렇게 순발력 면이나 슈팅 타이밍 면에서 조금씩 한계점을 드러냈던 박주영은 중국과의 결승전(2004년 10월 9일 / 2:0승)에서 김승용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 많은 축구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그의 첫 골 장면은 다시 곱씹어봐도 수십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그림이었다.

상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공을 잡은 다음, 달라붙는 수비수 네 명을 차례로 따돌리며 달려와 오른발 꺾어차기로 성공시킨 첫 골 순간. 핸드볼 경기에서 반원을 가로지르다가 몸을 날리며 던지는 짜릿한 이동 공격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두 손을 펼치고 바람을 가르는 모양으로 골 뒤풀이를 펼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영웅으로 보이기 시작한 경기가 그때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 골 장면을 비틀어 보면 '외로운' 영웅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뒤에서 달려드는 다른 공격수 등 더 좋은 자리에 있는 공격수에게 박주영이 공을 넘겨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가 고집을 부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승부사 기질, 킬러 본능쯤이라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고 우뚝 서 있기만 하는 '외로운' 영웅이 된다.

축구는 열한명이 한다

어떤 이들은 박주영이 김승용의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오른발 돌려차기로 결정 낸 쐐기골이 더 훌륭했다고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축구답다는 것이다.

다른 공격수들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축구다. 박주영은 이번 카타르 초청 축구대회를 계기로 그런 면에서 달라졌다.

박주영은 더이상 혼자서 공을 끌다가 슈팅 타이밍을 놓쳐 하늘만 쳐다보거나 상대 문지기의 순발력에 혀를 내두르기만 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열 아홉에서 스무살로 올라선 박주영이 넉 달 만에 달라진 것이다.

   
▲ 한국청소년축구대표팀

ⓒ2005 대한축구협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지난 해 아시아청소년대회와는 달리 공중볼 처리 능력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아홉 골 중 세 골을 머리로 넣은 것. 지난 해 아시아청소년대회 여섯 골은 모두 발로 넣은 것임을 감안하면 33%에 이르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크로스 파트너도 김승용, 박종진, 안태은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이것만 봐도 박주영 혼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청소년대표팀은 그간 여유 있는 훈련 과정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조직력을 다져온 것이다.

김승용-신영록-박주영으로 이어지는 쓰리톱은 이번 대회에서 총 11골을 만들어냈다. 신영록은 날개공격수는 물론 가운데 미드필더 역할까지 수준 높게 소화해냈고, 김승용은 정확한 오른발 킥 실력으로 날개공격수로 활약했다.

이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박주영은 상대 수비수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안태은, 백지훈, 강진욱, 박종진, 한제광'으로 이어지는 미드필더들의 과감한 전진 패스와 매끄러운 크로스가 더해져 청소년대표팀의 화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빨라진 볼 처리와 공을 주고받는 2~3명의 선수들이 함께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달라진 이들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박성화 감독의 조련이 필요할 때

박주영은 상대 문지기와 혼자서 맞선 상황에서도 득점 성공률을 높였다. 중국과의 첫 경기 두 번째 골과 우크라이나와의 두 번째 경기 선취골 장면은 달려나오는 상대 문지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처리했기에 골문을 열 수 있었다. 드리블과 슈팅 타이밍 면에서 지난 해 9월 말 박주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수비수 나기라 도모카즈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좋았다. 상대 수비수들이 거친 몸싸움을 걸어오면 옆쪽이나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와 미드필더로 변신하는 노련미도 보여주었다. 상대 수비수의 걸음발을 잘 계산해서 넘겨주는 패싱 전개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이렇게 볼 때, 박주영은 결코 외롭게 서 있는 영웅이 아니라 단짝 공격수들, 부지런한 미드필더 도우미들과 나란히 커나가는 자질 훌륭한 선수일 뿐이다. 혼자만 훌쩍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깨 걸고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뛰어가고 있는 팀의 일원이다.

기본기에서 훨씬 안정을 찾았고 체격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거친 태클을 피하는 방법도 터득한 듯하다.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박성화 감독 밑에서 꾸준히 훈련을 거듭하여 오는 6월,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붉은 장미처럼 활짝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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