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기자

▲ ⓒ2005 김민수

동장군의 기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습니다.
진눈깨비가 칼바람에 흩날리고 창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옵니다. 틈새로 파고드는 겨울바람이 마음 빈틈이 있다면 파고들려는 듯 기세를 떨칩니다.

겨울바다.
언젠가는 겨울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은 이렇게 추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 언젠가는 꿈만 꾸고 그리워하면서 겨울바다에 서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 ⓒ2005 김민수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살아가는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미치도록 그리워하기 전에 바다에 설 수 있습니다. 아니, 삶의 일상에서 조금만 천천히 가고자 하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이면 운이 좋다면 갈매기 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 없는 날보다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하늘을 비상할 수 있는 자유.
그렇게 하늘을 날 수 있을 때까지의 아픔들이 있겠지만 그 아픔을 뒤로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새들의 자유로운 날갯짓에 숨겨진 흔적들을 봅니다.

▲ ⓒ2005 김민수

 
두문포구.
그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이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로 낚시꾼들이 버린 미끼로 고기를 잡는다고 떠들썩 합니다.

"애들아, 뭐 하니?"
"고기를 잡아요."
"야야, 느그들이 잡히겠다."
"아녜요, 정말 잡혀요.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아무리 칼바람이 불어와도 따스한 아랫목보다 바깥이 좋았습니다.
온 몸이 꽁꽁 얼도록 해가 질 때까지 놀다보면 아이들을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가 하고 말입니다.

▲ ⓒ2005 김민수

"엄마,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다 부르는데 엄마는 왜 날 안 부르는데요?"

이런저런 일로 늘 바쁘기만 한 어머니에게 투정을 합니다.
다른 어머니들 보다 덜 사랑하시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어쩌면 자식을 부를 틈도 없이 내일의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그 때에는 이해하질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크기를 바랐겠지요.

그리고 어머님의 바람대로 스스로 알아서 컸고, 어른이 되어 자식들을 셋이나 거느린 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자유'라는 것을 그리워합니다.

▲ ⓒ2005 김민수

두 발을 딛고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이 온 몸을 파고듭니다. 그런데 갈매기들은 그 바람을 벗삼아 유유자적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다른 삶으로 인해 그 어떤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너희들은 좋겠다. 어디든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마음대로? 그렇지 만도 않아. 쓸데없이 날지 않을 뿐이지."

'쓸데없이'라는 말에 마음이 찔려옵니다.
쓸데없이 이런 저런 일에 기웃거리며 삶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어쩌면 그 시간들에 서있기 보다는 다른 시간에 서있는 시간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 ⓒ2005 김민수

 머물지 않고 또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단지 불청객의 서성거림 때문이 아니라는 듯 한 마리도 남김없이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까만 현무암바위를 하얗게 수놓았던 갈매기들이 모두 날아가자 현무암 바위에는 수 천 수 만 겹의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옵니다.

"애들아, 고기 좀 잡았니?"
"아니요. 목사님은 뭐하세요?"
"갈매기들 좀 봤어. 춥다, 집에 들어가라."
"예! 조금만 더 있다가요."

두문포구의 배들이 넘실거리는 파도에 둥실둥실 춤을 춥니다.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 시간 겨울 바다에서 아이들에게 '안녕!'하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어린 시절 그 어디선가 뛰어 놀던 나를 두고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