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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열의 용기백배 좌충우돌 중국여행기-①
처음하는 배낭여행, 그리고 五道口(우다오커우)
2021년 08월 10일 (화) 16:26:29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최의열(서양화가,부천문화원 사무국장]

어릴 적 시간만 나면 지도책을 펴고 세계를 보곤 했다. 왠지 모르지만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마음에 들지 않고 유독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 순으로 관심이 갔다. 세계 여러 나라 동경도 그렇지만 워낙 시골 출신인 나는 우리 시골, 해남을 벗어난 그 어느 곳도 신비의 대상이었으니까.

우스운 얘기일지 모르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서 할머니께 자랑을 했다. 해남에서 버스 넉 대에 나눠 타고 여수로, 여수에서 다시 남해대교를 지나 구례 화엄사 그리고 광주 사직공원, 나주 비료공장을 둘러보는 2박3일 일정을 침이 마르게 설명을 해드렸다. 얘기를 다 들으신 할머니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 "와! 버스 넉 대가 줄지어 가면 거참 볼만 허겄다 잉... 근디 학교에서는 워떻게 버스를 넉 대나 샀다냐?" 비교적 얘기 보따리를 풀면 한 시간짜리 영화를 두 시간짜리로 풀어내는 내 입담에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데, 그런 점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아닐까 지금도 생각을 하곤 한다.

 2년 후, 나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했다.
 
정말 꿈에 그리던 서울은 사내 녀석들이 계집애처럼 간질간질 부드러운 말을 건네는데, 말끝마다 그랬니. 저랬니. 하는 억양에 닭살이 돋곤 했다. 서울 와서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 앞 육교에 올라 도로를 내려다보며 끊이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 행렬을 얼마나 넋을 잃고 보았는지, 한 시간 넘게 바라보며 '희열' 같은 감정을 느꼈던 나는 영락없는 시골 소년이었지만 마음만은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꿈 많은 아이였다.

처음하는 배낭여행, 그리고 五道口(우다오커우)
 
중국은 수천년의 역사는 우리나라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어릴 적부터 난 관심이 많았다. 특히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흥미롭게 읽었으며 소설 속에 나오는 삼국의 위인과 싸움에서의 책략 등 나를 흥미롭게 했으며, 중국 여행을 하게 된 것도 다 그런 연유에 기인한다.

1992년 대한민국이 중국과 수교를 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 같은 간접경험을 통해서만 접했던 중국을 직접 가볼 수 있으니 말이다. 초기에는 홍콩을 경유해서 북경에 들어가야 해서 그때는 중국여행을 꿈꾸지 못했고 몇 년이 지나 직항노선이 열리자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간다.    배낭 어디 있지? 중국가자! 그냥 한번 부딪쳐보는 거다. 근데 중국 어디를 갈까? 실크로드를 따라가 볼까? 궁리 끝에 석 달 오픈으로 티켓팅 부터 했다. 분명 대한항공에서 항공권을 구매했는데 CA항공이었다.
 
아무렴 어떨까? 가는 것이 중요하지. 표도 샀고... 이제는 여행 준비만 하면 되었다.

나는 당시 담배를 끊은 상태였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담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어 에쎄 두 보루를 사고 허리띠 뒤편에 나만의 비밀금고를 만들어 100달러, 한 장씩 비닐에 싸서 3장을 밀어 넣고, 바지 안쪽에는 여권 담는 호주머니를 만들고 등등...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출국 날짜만 기다렸다.

드디어 출국 날, 12월 초라 춥기도 했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자꾸 호흡이 가빠졌다. 13시 40분 베이징으로 가는 CA124가 힘차게 날았다. 그런데 비행기에 타고나니 도착해서 숙소를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었다. 지금이라면 아고다나 트리바고를 통해서 예약을 하고 가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고, 한참을 고민하다 비행기 안을 둘러보니 흡연석에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두분이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분들 근처에 앉아 살짝 대화내용을 엿듣다 보니 베이징과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장사 하시는 분들이었다. 나는 말을 걸어봤다.

   
▲ 시골같은 느낌이 살아있는 북경시내


 "아저씨 북경 자주 다니시나요? 혹시 저렴한 숙소 소개 해주실 수 있는지요?"
  "북경! 처음이에요?"
  "네. 처음입니다"
  "허, 근데 숙소도 예약도 안하고 가는 거예요
?"
  
아니 이런 무모한 젊은이가 있나? 아저씨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럼 자기 말을 잘 듣고 기억하라며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중국은 외국인과 내국인 이중 가격제를 시행하고 있고, 중국 사람보다 외국인은 비싸게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바가지 씌운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해하고 참고하라는 것까지 찬찬히 일러주었다.

 "아, 알겠습니다." 이해되진 않았지만, 일단 대답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잘 데를 알려줄 테니 거기 가서 자면 호텔보다 많이 저렴할 거예요"

 
 당시 북경대(?) 근처에는 초창기 한국유학생들을 상대로 하숙하는 조선족인지 북한사람들인지는 모르지반 여럿 있다고 한다.
 
"지금 도착하면 중국시간 3시쯤이니 천안문 주변을 잠시 구경하고 택시는 비싸니 빵차(우리나라 다마스 같은 작은 택시)를 타고 ‘오도구(五道口)를 찾아가세요. 한글 간판이 있는 가게를 찾아들어가서 하숙집을 소개받으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싹 잠재워졌다.
  "그래, 이제 중국 다 죽었어..."

   3시 30분경 짐을 찾고 나와 지나는 사람들에게 '칙소'가 어디냐고 물어봐도 중국 사람들 아무도 가르쳐주지를 않았다. 이놈들 친절하지 않구나.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지만) 속으로 욕을 하고 일단 인포메이션에서 천안문 가는 리무진 번호를 물었다. 다행히 안내원 중에 조선족이 있어 쉽게 해결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2,30년도 넘을 것 같은 버스가 앞에 섰다. 

  "헉 이 차가 리무진? ㅎ" 1시간을 달려 시내로 접어들자 사진으로만 봤던 천안문이 보였다.

  '아, 내려야 하는데...' 한 정거장 지나서 후다닥 뛰어내렸다. 낯선 땅 실질적인 여행의 시작은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무서움 가득한 묘한 감정의 혼합으로 광장에 발을 디뎠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그냥 걷자 다짐하고 지나오면서 천안문은 봤으니 뒤로 돌아 자금성 담벼락을 따라 돌았다. 모든 것이 신비스럽고 이국적이었다. 풍광에 취해 여기저기 구경하고 한참을 지나 어마어마한 포장마차 행렬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왕부정 먹거리 동네로 들어선 것인데, 엄청난 규모의 야시장은 이것저것 수많은 먹거리로 여행객의 발목을 붙잡는 저녁이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이제는 온통 공사판이었다. 당시에는 북경의 “명동” 왕부정이 한창 개발붐을 타고 백화점, 빌딩 등을 짓고 있느라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었다.

 밤늦은 시간은 캄캄하고 뿌연 매연과 먼지 속이었지만 그때 느낌은 거대한 중국이 일어서는 느낌이었다.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보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그래도 걱정은 별로 안했다. "뭐 빵차 타고 ‘오도구’만 외치면 되니까..." 시간을 보니 어느 새 밤 10시 반, 이젠 숙소를 찾으러 가야했다.

  지나는 빵차를 잡아타고 기사에게 "오도구" 갑시다. 했더니 기사 왈, "오도구?"라고 몇 번 되물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더 크게 외쳤다. "오도구 OK"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냅다 달렸다. 한 삼십 분 정도 갔나? 차창 밖은 어두움이 완전히 내리깔렸고, 밤 11시의 북경은 너무 어둡고 쌀쌀했다. 시내 같은데 인적은 없고, 어두운 거리는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 한글간판도 없고, 비행기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그 아저씨 말과는 달랐음을 느끼는 그 순간 나는 온 몸이 경직되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인적이 없으니 무서웠다.

  등대가 비추듯 고마운 불빛이 보였다. 나는 무조건 달려갔다. 서점이었다. (나중에 짐작하건대 대학 주변이 아니었을까 함) 머릿속을 번개처럼 지나갔다. "북경지도가 필요하다. 지도에서 '오도구'를 찾자. 그리고 물어보자."

 앞서 얘기했지만 어릴 적부터 지도 보는 취미가 있는 지라 '오도구'를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서점에 들었더니 서점 주인이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60대로 보이는 점잖은 느낌의 사장님, 나는 사장님을 향해 "니하우마"하고 들어가니 외국인이라 그래서인지 내치지 않고 그냥 받아주었다.

  주인에게 전지 크기의 북경지도를 받아 쫙 펴놓고 '찾자 찾자'... '오도구'를 20여분 정도 찾았나? 너무 반가운 '五道口'가 눈데 확 들어왔다. "사장님!” 하고 외치니 무슨 소린지도 모르면서 자기를 부르는 걸로 알고 다가왔다. 여기 '五道口'하며 큰소리로 가리켰다.

사장님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우다커"라고 외쳤다. 나는 다시 "오도구"... 사장님은 재차 소리를 높였다.
 "우다커(우다오커우)"...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아... '오도구는 한국말이고 중국말로는 '우다커'였던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던 화장실 칙소(厕所)(트워써와)도 중국말로 '트워써와' 였던 것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내가 칙소 칙소 해도 아무도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사실은 서점에서도 북경지도를 북경 맵을 달라하니 서점 사장도 어리둥절, 맵만 알아듣고 지도코너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 (지금 생각은 주인이 인텔리, 지식층였음), 내가 참 바보였구나. 중국에 와서 중국말을 해야지 한국말을 하고 다녔으니......

최의열 프로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개인전▲제1회 개인전(1990)삼정미술관(서울)▲제2회 개인전(1994)관훈미술관(서울)▲제3회 개인전(1998)석현미술관(여수)▲제4회 개인전(2004)1080갤러리(일산)▲제5회 개인전(2007)안산미술관(안산)▲제6회 개인전(2009)아트센터(부천)▲제7회(2015년,군집개인전아트페어)  11회 한국구상대제전8회 개인전 2016년 광저우  아트페어9회  2019년 아트포럼 리

그룹전▲200여차례 출품▲경기도지사표창및 다수 공모전 수상
▲부천대학. 부산예술대학(90~99년)강사역임▲현)한국미술협회,부천미술협회 회원▲전)부천예총사무국장▲현)부천문화원 사무국장

   
▲ 서양화가 최의열 ⓒ부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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