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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서승희 프로그래머가 칸에서 보낸 열이틀의 기록-①
"선언합니다. 영화제는 멈춰도 영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1년 07월 16일 (금) 07:43:27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 칸영화제 공식포스터

서승희(BIFF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년 만에 열린 제74회 칸영화제가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7월6일~17일).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깜짝 개막 선언부터 배우 이병헌이 폐막식 시상자로 나선다는 소식까지, 올해 칸영화제는 처음과 끝 모두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매년 수천 편의 영화가 칸의 문을 두드리지만 공식 초청작은 고작 50여 편 남짓, 이러한 작품들을 누구보다 먼저 한국 관객에 소개하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영화 담당 서승희 프로그래머가 1년 6개월 만에 출장에 나섰다. 

칸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낸 서승희 프로그래머가 뉴스레터 구독자를 위해 보내온 글과 사진(영상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될 예정)들은 오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기대감까지 닿는다.

"선언합니다. 영화제는 멈춰도 영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74회 칸영화제가 개막한 지 꼭 일주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중해의 태양은 양산의 지붕을 거침없이 관통합니다. 먼 훗날 저는 홀로 참석했던 이 7월의 칸영화제를 잊지 못할 몇 편의 영화, 영화진흥위원회 부스 '한국관'이 있었던 곳 앞에서 아이처럼 울고 싶었던 순간, 그리고 이 강렬한 태양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Comme si c'était rien)

   
▲ 서승희 프로그래머 ID카드

칸에 도착한 첫날 카페 테라스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거리두기를 하지 않은 극장에 앉아 있을 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Comme si c'était rien'이라는 불어 표현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올해 칸영화제의 콘셉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조금은 우울하고 불안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시네마는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멈춰서는 안 되니까요. 

대부분의 감독들은 영화 상영 전 프레젠테이션이나 Q&A 시간에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를 통해 본인의 작품을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게 된 기쁨과 설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만든 영화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보이던 관객들이 돌연 숙연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달라진 풍경, 그래도 칸 

유럽에서 백신 접종을 한 참가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영화제 메인 행사장(Le Palais des Festivals)에 입장하려면 48시간 이내에 발급받은 PCR 검사 음성 결과서를 보여줘야 합니다. 검역소는 뤼미에르 극장과 카지노 건물을 지나 크루아제트 대로(Bd de la Croisette) 끝에 있습니다. 예약 시스템은 생각보다 편리합니다. 온라인으로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국적과 여권번호를 기입한 후, 원하는 시간대를 예약합니다. 침으로 하는 검사(Saliva PCR TEST)이기 때문에 예약한 시간에 맞춰가면 입장부터 테스트를 마칠 때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받는 난니 모레티 감독 ⓒ서승희 프로그래머

결과는 여섯 시간 후에 이메일과 핸드폰으로 통보됩니다. 거리에서와는 달리 극장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씁니다. 영화 상영 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일제히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칩니다. 여느 해의 칸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은 어제 무대 위에서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하루에 평균 3,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PCR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전에는 4명의, 어제는 3명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0명입니다!"라고 말했고, 관객들은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서 그는 "물론 내일모레 갑자기 몇 십명의 확진자가 속출한다면 물론 저는 여러분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불안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막 7일째의 칸은 오늘도 아슬아슬 무사히 저물었습니다.

   
▲ 감독주간 상영관 ⓒ서승희 프로그래머

칸의 영화, 영화들
지난 일주일 동안 참 많은 영화들을 만났습니다.

<아네트> 유명한 오페라 가수와 코미디언 사이에 아네트라는 딸이 태어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가 있습니다, <Lingui, The Sacred Bonds> 차드의 한마을에서 딸과 둘이 사는 미혼모 아미나는 어느 날 딸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Compartment No. 6> 고고학을 공부하는 스웨덴 여성과 거친 러시아 청년은 러시아행 야간열차의 같은 칸에 동승하게 됩니다, <Ahed’s Knee> 조국을 떠났던 이스라엘 감독은 모국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Everything Went Fine> 와병 중인 노년의 아버지가 딸에게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애원합니다, 

<Three Floors> 3층짜리 건물에는 층마다 다른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플래그 데이> 위조지폐를 제작해 수배 중인 아버지와 보냈던 따뜻한 유년기를 추억하는 한 딸이 있습니다, <베네데타> 17세기의 한 소녀가 어느 날, 광폭한 아버지를 피해 수녀원으로 도망쳐온 다른 한 소녀를 구해 줍니다 등.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가끔 우리의 예상대로 전개되지만 대부분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우리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갑니다.  

   
▲ 야외 카페에 앉은 사람들...칸의 거리풍경ⓒ서승희 프로그래머


 2020년 베를린 영화제 이후 1년 6개월 만에 온 해외 영화제 출장입니다. 매일매일 좋은 작품들을 그것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으니, 몸은 힘들어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또 시네필로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나날들입니다. 폐막까지 5일이 남았고 아직 보지 못한 기대작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시사한 작품에 대해서는 부산국제영화제 뉴스레터를 통해 차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듯 여러분께 '뉴스레터'를 썼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데 어제저녁 받았던 PCR 검사결과가 핸드폰의 알림 문자로 날아왔습니다. Negative 음성. 이틀은 안심하고 맘껏 영화를 볼 수 있겠습니다. 멀리 계신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 칸영화제 레드카펫/칸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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