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재(가톨릭대학교, 사회학)

부천시민교류회는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4박5일의 일정으로 일본 가와사키(川崎)를 방문하여 부천-가와사키 양도시간 이해와 협력 증진, 동북아시아 평화와 시민연대를 위한 심포지움을 갖는다. 다음은 이시재 교수의 발제문

1. 同時代의 다른 시간들

1960년 5월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우어는 일본을 방문하고자 하였지만, 일본의  사회운동세력의 반대로 일본에 착륙하지 못하였다. 그 길로 그는 한국으로 직접 오게되었는데, 마침 1960년 4월 학생혁명을 일으킨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60년에는 한국과 일본에 다같이 학생운동이 일어났지만, 일본에서는 안보연장반대운동으로, 한국은 독재타도를 위해 궐기하였다.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사하였지만, 그 목적이 달랐고, 따라서 미국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냉전체제하에서 한일 간의 의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의식의 차이는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반대운동 때도 일어났다.
일본의 학생, 진보적인 지식인, 노동조합은 자민당이 추진한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였다. 남북분단의 고착화, 냉전체제의 재편과 강화를 이유로 일본의 지식인, 학생들은 이를 반대하였다. 반면 한국의 학생들은 군부독재세력이 추진한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하였다.  한일회담을 다같이 반대하였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월남전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최초로 정당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시민운동이 등장하였지만, 한국은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지식인과 학생들은 이를 적극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1969년에는 한국에서도 개헌반대운동이 일어났지만, 같은 해  일본의 학생운동은 대학개혁요구를 내걸고 발생하였다.

1973년 한국정부에 의한 야당정치지도자, 김대중씨의 납치사건은 한일민간인들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은 유신체제 하에서 시민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이었지만, 일본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김대중 납치사건을 해명하고 한일간의 관계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김대중사건을 둘러싸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한국에는 잘 전달되지 않았지만, 1970년후반에는 한국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던 일부 인사들은 양심적인 일본인가운데는 진정 연대와 협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간에 지식인, 시민사회의 교류는 1987년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면서 전개되었다. 한국에도 정부나, 정당, 그리고  종교단체로부터 독립된 시민운동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1988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직되었고, 공해추방운동연합이 발족하였다. 학생과 노동자와 같은 특정 사회집단에 의해 주도되던 사회운동이 이제 시민참여를 통한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반핵단체들이 한국의 환경운동가들을 반핵행사에 초청하여 교류를 시작하였고, 한국에도 일본과 유사한 방식의 생활협동조합운동이 생겨서 일본과 교류를 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이후 한국사회가 더욱 개방되고, 1990년대에 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한일간의 시민사회의 교류가 확대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사이의 시민사회의 교류는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스포츠에 한정하지 않고, 미술, 영화, 만화, 가요, 그리고 환경, 소비자, 여성, 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교류가 확대되었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1960년대이후 한국과 일본사이에 유사한 운동이 존재하였지만, 그 내용이 전혀 달랐다. 한일간에는 냉전적 이데올로기,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한 조건들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한일 간에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매개하지 않는 시민사회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민사회공간을 확대하는 매개로서 한일간 시민교류와 협력의 의의를 주장하고자 한다.

2. 시민교류로서 출발한 가와사키시-부천시교류

부천시와 가와사키시와의 교류는 1991년 1월부터 시작하였다.
당시 성심여자자대학(현가톨릭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일본의 선진적인 자치체를 연구하기 위해 가와사키시를 방문하였다. 당시 이이즈카시의원후보가 사쿠라모토의 상점가의 상인들이 한국의 상점가와 교류를 하고싶다는 의향을 전해와서, 3월에는 사쿠라모토 상가의 임원들이 부천을 방문하여 교류를 시작한 것이 시민교류의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교류와 병행하여, 야마다 타카오씨를 중심으로 가와사키 시민들의 부천방문이 이어졌다. 매년 30명전후의 가와사키시민들이 8월15일을 전후하여 한국을 방문하여 ‘역사체험’ 투어를 한 것이다.
이 방문단은 10년간이상 지속되어 가와사키-부천 시민교류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또 부천시와 가와사키시는 이러한 시민교류를 바탕으로 1996년 우호도시 협정서에 조인하고, 이 협정서에 근거하여 공무원 교류가 이루어졌다. 오다키리씨는 공무원교류의 일환으로 부천에서 일년을 보냈다. 그는 지금 부천시와 가와사키시의 시민교류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지금 부천시와 가와사키시 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자치정부와 시의회의 교류이외에도, 초중고등학생 스포츠관계자, 미술, 사진, 예술인들, 종교인들, 복지관계자들,  생협관계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교류가 이어져 왔다.  그 동안 시행정부의 수장이 바뀌어 시정부간의 교류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시민교류를 중단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시민교류를 바탕으로 2003년에는 부천-가와사키시민교류회(가와사키-부천시민교류회)가 양시에서 구성되었고 시민교류회의 협정서가 가와사키시에서 조인되었다.

부천-가와사키시민 교류를 무엇을 남겼는가?
양시간의 교류를 지켜본 결과, 양시민간의 교류는 우선 ‘기술적 협력’에서 ‘마음의 소통’으로, 그리고 ‘공동과제의 추구로’ 이어진 것인 아닌가 생각한다. 가와사키시민들은 부천시에 올 때 마다 그들의 역사인식의 변화를 추구하였고, 한국인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였다. 한편 부천시민들은 선진일본에서 자방자치, 시민참가, 복지와 사회교육 등의 선진제도들을 배우려고 가와사키시를 찾았다. 또 가와사키의 시민들도 이러한 요구를 잘 수용하여 적극 협력해 주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공무원노조의 설립을 둘러싸고 노동3권을 쟁취하기 위해 파업을 시도하고 있다. 수년전부터 부천의 공무원사회에서는 가와사키시 직원노조와 교류하여 그쪽의 노동운동의 현실과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부천시민들은 아동인권문제에 관해서도 가와사키시의 아동인권조례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와사키시의 옴부즈만제도는 부천시가 그대로 벤치마킹하여 제도화한 사례이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서 부천시민들의 가와사키시민, 혹은 일본인들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일본국가,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역사교육이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설사 일본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만나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야마다상이라든지 오다키리상을 구체적으로 알고 나서 일본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부천시-가와사키시의 시민교류는 이러한 구체성의 경험의 장이 되고 있다. 바로 한일간에 시민레벨에서의 마음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국민국가라는 필터를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시민교류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국가간의 관계의 경직성을 시민의 힘으로 바꾸어 가는데 있다.
 
교과서문제는 이러한 한일간의 시민적 공유공간을 가지게 된 중요한 사건이다. 부천의 시민운동가나 가와사키시의 시민운동이 공동으로 이를 막으려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부천시민들, 모든 가와사키시민들이 이에 동참한 것은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시민운동이라고 상호의 공동의 장을 찾아내고 이를 확대하면 국경을 넘어선 새로운 시민사회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3. 동아시아의 국제교류의 과제

동아시아 시민교류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역사문제이다. 식민지지배가 종식한지 60년가까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역사문제는 동아시아의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간에 그리고 북한과 일본 사이에 아직 역사문제가 현안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저간의 동향을 보면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종군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민간협력은 중요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 또 일본의 교과서 문제도 한일간의 시민운동의 협력의 계기가 되고 있다. 시민운동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지만, 해결을 위한 모델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의 중국의 이른바 ‘東北工程’에서 보여준 역사왜곡문제, 일본의 정치권의 우경화와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친일문제를 포함한 과거사의 규명이 새로운 국가과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국가간의 동향을 볼 때, 동아시아에서의 국가의 벽을 뛰어 넘는 시민운동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졌다.

중국의 환경문제도 동아시아의 공동과제의 하나이다. 중국의 물, 에너지, 식량, 그리고 사막화 문제는 동아시아 전체의 과제이며, 지구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환경과 자원의 문제는 지구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예컨대 키타규슈시)의 노력, 일본의 기업과 비정부단체의 노력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환경운동연합이 중국의 길림성과 기업의 합작으로 사막화방지를 위해 초지조성을 하고 있는 사업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방정부, 시장과 시민사회가 시민사회적 모델에 따라 국경을 넘어서 상호협력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일본의 중요한 스케이프고트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인권, 납치, 핵무장 등 경계와 적대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화해, 빈곤문제, 원조, 상호공존의 틀속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은 또한 일본의 동아시아의 탈식민지프로젝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북한문제를 우리 내부의 문제로 껴안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에서의 이른바 ‘공동의 집’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탈냉전, 탈식민화의 프로젝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시민사회’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중국은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직장체제 단위가 이완되거나 해체되고 새롭게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에서의 기초단위의 직접선거의 실시로 맹아적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일간의 시민교류가 중국으로까지 확대될 때 동아시아의 시민사회의 구축의 가능성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4. 가와사키-부천시민 교류의 장래를 위하여

이제 가와사키시와 부천시, 혹은 양 도시의 시민간의 교류는 단순히 교류의 차원을 넘어서서 협력의 차원으로 들어섰다.
하나회와 같은 고등학생들의 모임와 같이 연례적인 교류와 협력이 정착된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시행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시민의 힘으로 상호방문, 교류,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일본인식, 그리고 일본인들의 한국인식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양도시간의 교류는 이제 상호협력의 시대로 들어섰다.

중국의 환경문제, 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평화문제, 동아시아의 역사문제, 동아시아의 시민사회의 발전문제는 한일간의 교류와 협력만으로 이를 충분히 다룰 수가 없다. 나는 한일간의 시민사회의 협력을 동아시아의 수준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을 협력의 축으로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환경문제, 평화문제, 민주주의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계성의 하부구조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 대면하고 있으면 對他關係가  되지만, 제3의 공동과제를 향해서 힘을 합하면 공동의 관계로 전환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부천시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하르빈시에 가서 하르빈시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니이카다 사람들을 만났다. 하르빈시를 매개로 일본인과 만나는 경험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가와사키시도 센양시와 자매관계를 갖고 있어서, 센양을 지나칠 때는 왠지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가와사키-부천-센양-하르빈-니이카타를 묶어서 공동의 과제를 만들어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공동의 환경문제, 역사문제,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등을 공동으로 토론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서로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공동과제는 국가간의 관계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해결의 모델은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가 만들고, 이것을 해결할수 있는 자원은 국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지방정부-NGO의 협력사례로서는 키타규슈시-대련시의 협력, 환경운동연합-길림성의 협력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또 일본의 어떤 한국유학생이 일본학생들과 함께 전개하고 있는 캄보디아 교육지원 자원봉사활동도 좋은 모델이다.

맺음말: 또 하나의 <동아시아의 공동의 집>을 위하여

최근 <동아시아의 공동의 집>의 논의가 활발하다. 동경대학의 강상중교수는 먼 장래에 EU와 같은 공동체가 동아시아에 실현될 것을  전망하고 있다. 동아사이의 평화구조에 관해서는 와다 하루키 교수도 같은 생각을 발표한 바가 있다. 동아시아의 공동시장, 공동사회를 실현하려면 국가단위의 공동체가 필요하며, 그것이 현실적일 수가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의 <공동의 집>의 모델은 국가단위에서는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간의 대립과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의 교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지자체의 협력은 동아시아의 공동의 집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교류와 지자체 교류에 있어서 각각의 국민국가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각각의 국가는 자국의 시민들을 국민국가적인 이해관계와 전망 속에 가두어두려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운동에는 국민국가와의 거리두기(Distancing from state)가 전제되어야 한다. 

역설적인 것 같지만,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면 둘수록 우리는 보다 동아시아의 시민과 만날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는 시민들이 지켜내는 환경, 평화, 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간, 혹은 가와사키시와 부천시간의 시민 및 지자체간의 교류와 협력은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