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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93]몸은 내가 씻는데 깨끗해 지는 건 당신
2020년 12월 21일 (월) 16:19:06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샤워
권득용

 

내 몸을 씻으면서

당신을 생각한다

마음도 씻어본다

몸은

내가 씻는데

깨끗해지는 건

당신이다

   
▲ ⓒ부천타임즈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날 입고 나간 옷이 구겨지고 때가 묻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날의 마음도 얼룩이 묻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옷은 빨아서 입으면 되는데 마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옷이야 그저 단순하게 지저분한 것에 불과하니 세탁하면 바로 깨끗해질 텐데, 마음은 사람과 얽혀 있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네요.

그럴 때 하루를 마치고 "내 몸을 씻으면서" "마음도 씻어"보는 것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씻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예로부터 마음이 어수선하면 몸을 씻으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렸다는 것을 쉽게 떠올려 보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날 만났거나 관계했던 사람 중에서 여전히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몸을 씻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기억하는 정도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 ⓒ부천타임즈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과 관계된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옷의 어디에 뭐가 묻었는지 알아 세탁을 하는 것처럼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뭐가 어떤 식으로 문제가 되었는지 발견해서 그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몸은/내가 씻는데/깨끗해지는 건/ 당신"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말은 사실 내가 몸을 씻으면서 마음까지 씻을 때, 그 마음속에서 부대끼는 사람과의 일들을 되새기며 그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실수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또는 내가 잘못한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받아주지 못했는지, 왜 내가 이해해주지 못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결말은 "당신이" "깨끗해지는" 것인데요. 여기서 '당신이 깨끗해진다'는 말은 내 마음이 깨끗해지고 편안해졌다는 말의 역설이자 최대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미묘한 갈등에 휩싸일 때 내 마음을 푼다고 해서 다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된 사람도 함께 풀어져야 하고, 또 그럴 때 내 마음도 비로소 확실하고 완전하게 풀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몸을 씻는데 당신이 깨끗해진다'는 말은 내일 있을 선한 결말을 미리 체험하고 확신한다는 말이 됩니다. 앞으로 그 사람을 만날 때 관계를 잘 풀어야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간직하면서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확실한 고백이 됩니다. 미래의 성취를 오늘 확신하며 표현하는 진솔한 내적 선언의 단면이라 하겠습니다.

"몸은/내가 씻는데/깨끗해지는 건/당신이다"라는 말처럼 사려 깊은 말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사유를 펼친 마음의 품과 자세가 넓고 깊고 편안합니다.

   
▲ ⓒ부천타임즈

그러므로 이 글귀를 눈으로 읽고 귀로 들어 마음에 간직한 사람으로서 저녁마다 몸을 씻으면서 마음을 씻지 않으면, 나는 몸조차 제대로 씻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씻은 후에라도 그 어떤 사람이 내 생각 속에서 전혀 깨끗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몸과 마음을 씻기는커녕 오히려 더 더럽혔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옛사람처럼 꼭 깊은 계곡에 몸을 담가 심신을 다스려야 하는 법은 없어서, 이 시의 제목처럼 "샤워"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저녁에 샤워하는 시간은 나보다도 나와 관계했던 어떤 사람이 깨끗해지는 시간입니다. 그 사람이 깨끗해져야 비로소 내가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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