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3.1.27 금 13:51
,
   
+ 로그인 독자회원가입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보도자료
> 뉴스 > 문화/예술
       
[이종섶의 詩장바구니-91]긴호랑거미 씨의 재택근무
2020년 12월 07일 (월) 15:56:26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긴호랑거미 씨의 재택근무 
변종태


오늘도 오전 내내 전화기만 만지작거린다.
어제부터 주민센터 담당자는 연락이 없고
아이들이 학교로 간 뒤에도
날파리 한 마리 걸리지 않는
거미줄엔 바람만 들락거린다.
또 가로 정비팀이 철거 계고장을 들고 왔다.
수북이 쌓인 과태료 고지서는 누레지고
미세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 오늘도
작은놈은 학원비를 보챈다.
그제 저녁부터 굶고 한 일이 없으니
규칙적으로 누던 똥도 마렵지 않고
내 일이 없는 내일이 안 보이는
내일이라고 내 일이 생길 가망은 없다.
참새가 뚫고 간 구멍을 때워야 하는데
실젖*이 말라 거미줄이 나오지 않는다.
기다림의 끝,
3번 방사실 언저리 나선실에서 진동이 온다.

*실젖 : 방적 돌기(紡績突起)

   
▲ ⓒ부천타임즈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는 요즘 계절까지 추운 겨울이라서 우리 곁에는 이런 시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데요. 긴호랑거미 씨도 그중에 한 분입니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분'이라고 하는 것은 긴호랑거미 씨에 대한 존중의 마음 때문인데요. 그 마음을 담아서 글을 써나갈 때 호칭도 '긴 씨' 또는 '긴 선생님'으로 하겠습니다. 마치 성이 긴이고 이름은 호랑거미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또 그렇게 하면서 '거미'와 '사람'을 한 번에 다루고자 하는 의도이기도 하구요,

긴 씨는 "오늘도 오전 내내 전화기만 만지작거"리고 있네요. 일이 있을 때마다 "주민센터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처리하고는 했는데, "어제부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지 아니면 바쁜 일이 생겼는지 그런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 지급되는 복지비용이라든지 "수북이 쌓인 과태료 고지서"에 관한 문의 내용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런 때 연락이 안 되네요. 그저 입맛만 쩝쩝 다실 뿐입니다. 

"날파리 한 마리 걸리지 않는" 날들이 벌써 여러 날 되었습니다. 길가에 벌려놓은 좌판 "거미줄엔 바람만 들락거"릴 뿐 손님 하나 들지 않아 오늘도 초장부터 공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아뿔사, "또 가로 정비팀이 철거 계고장을 들고 왔"네요. 저 사람들은 하필이면 이런 날 오는지 그 이유를 몰라 그저 심사가 뒤틀리다가도 긴 씨의 평소 심성대로 그저 순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쌓여만 가는 "고지서는 누레지"는데 "작은놈은 학원비를"달라고 보채네요. 며칠 뒤에 준다고 겨우 달래서 학원을 보내는 긴 씨의 마음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밥벌이가 워낙 되지 않으니 아이들은 먹이면서도 부모는 굶는 수밖에 없어서 "그제 저녁부터 굶"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먹은 것도 없는데다가 하는 일까지 없으니 "규칙적으로 누던 똥도 마렵지 않"네요. 

   
▲ ⓒ부천타임즈

이러다가 거미줄을 빼내는 기능마저 망가지지 않을까 근심만 더욱 깊어져 갑니다. 거미줄이 나올 때 작용하는 "미세 진동"이 오늘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언제까지 숨기고 살 수만은 없는지라 조바심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예 "내 일이 없는 내일이" 올까 싶어서 걱정이 태산이구요. 설령 내일이 온다고 해도 "내 일이 생길 가망은 없다"는 것을 진즉부터 어렴풋이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땅이 꺼져갈 듯한 한숨만 내뱉을 뿐입니다.

이런 형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얄미운 "참새" 한 마리가 긴 씨의 좌판을 헤집고 가네요. "참새가 뚫고 간 구멍을 때워야 하는데" 먹은 것이 부실한데다가 그마저도 며칠 전부터 먹지 않고 있었으니 "실젖*이 말라 거미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거 참 큰일이라서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기다리기를 참 잘했다 싶습니다. "기다림의 끝"에 "3번 방사실 언저리 나선실에서 진동이" 오기 시작하네요. 

우선 다급한 대로 참새 녀석에 훼방을 놓은 거미줄을 잘 정비해둬야겠습니다.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목구멍에 풀칠하는 정도라도 근근이 버티고 있으면 '쥐구멍에도 햇볕 들 날이 있다'는 속담처럼 '거미줄에도 나비 걸릴 날이 온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으니까요.

긴 선생님 가게에 갔을 때 "참새가 뚫고 간 구멍" 이야기를 듣고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는데요. 그래서 조폭 같은 그 고약한 참새 녀석을 찾아 단단히 혼을 내주고 싶었는데요. 바로 그 순간 "3번 방사실 언저리 나선실에서 진동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내일처럼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긴 선생님, 끝까지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들지라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겨울도 지나가고 코로나도 곧 잡힐 테니까요.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 부천타임즈(http://www.bucheon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추천수 : 146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보조금 횡령 등 사회복지시설 불법행위
사회적협동조합 공존-예비사회적 기업
부천 원미초, 마을교육공동체 부모자녀
경기도, 식품위생업소 최대 5억 원까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예식장 구하기 힘드신가요? 경기도 공
경기도, 중국 단기비자 발급 중단에
공익제보 활성화 위해 '경기도 공익제
부천시, 한방난임치료 180만원 지
경기도, 미디어 창작활동 공간 '생활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315번길 14 포비스타 1414호 | 대표전화 032-329-2114 | Fax 032-329-2115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아00018 | 등록일:2005년 11월2일 | 사업자등록번호 130-19-41871
종별 : 인터넷신문 | 발행인겸 편집인 : 양주승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양주승
Copyright 2003 부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u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