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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8] '타임캡슐'...홍시
2020년 11월 17일 (화) 07:49:24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타임캡슐

박선희


고향 집 마당에 그늘을 키우며
단단해진,
택배로 온 수수감
베란다에 일렬횡대로 세워진

어느 날,
한꺼번에 불을 켠 절정의 순간
그 빛 풀어보지도 못한 채
냉동고 속에 묻혔다

천칭자리를 건너온 수척한 별 하나
오랫동안 삼키지 못한 페이지 꺼내
천천히 어루만지듯

꽁꽁 얼어 있던 붉은 시간
접시 위에 올려 놓자
온몸을 둘러싼 서리꽃,
입김에 녹아내리듯
움찔,
제몸을 풀어내고 있다

   
▲ ⓒ부천타임즈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마당이나 "고향 집 마당에"서 "그늘을 키우며/단단"하게 자란 감들이 택배로 배달되고는 합니다. 시골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감들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모든 방법 중에서 모두가 제일 처음에 해야 할 일은 볕이 따뜻하게 드는 곳이나 "베란다에 일렬횡대로 세워" 홍시가 될 때까지 잘 익히는 것입니다.

보름 정도가 지나면 "한꺼번에 불을 켠 절정의 순간" 이 찾아옵니다. 붉고 곱게 불을 켜고 있는 감들을 바라보노라면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충만함의 서정으로 눈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한없이 깊어집니다. 

   
▲ ⓒ부천타임즈

홍시가 된 감들을 먹는 방법은 다양한데요.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냉동실에 넣어 얼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꺼내 먹는 맛은 그 자체로 일품입니다. 특히나 하얀 눈이 내린 날에 꺼내 먹는 맛은 세상 어디 비할 데 없는 특별한 맛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겨울에 홍시를 먹을 때는 감나무 레시피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감나무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맑고 깨끗하게 빛나는 별들과 풍성한 감나무 가지에 달린 감들만큼이나 많은 은하수 이야기를 재료로 해서 감들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 별들의 서정과 이야기를 "천천히 어루만지듯" 눈으로 먼저 그 빛깔과 자태를 시식하고 그 다음에 입속에서 혀를 살살 굴리며 읽어보는 시간은 가슴속에 "천칭자리를 건너온 수척한 별 하나" 그윽하게 자리 잡는 시간입니다. 새벽 별을 생각하는 사람은 새벽 별의 맛이 깃들 것이구요.

"꽁꽁 얼어 있던 붉은 시간"이 따스하게 풀어지고 "온몸을 둘러싼 서리꽃"이 편안하게 스러집니다. 감나무 레시피를 기억하고 음미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각별한 기분일 텐데요. 지금까지는 잘 익은 홍시를 바로 먹었다면 올해는 냉동고에 얼렸다가 한겨울에 먹어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감을 홍시로 만든 후 얼려서 먹어 왔다면 참 잘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올해는 먹는 때를 함박눈이 내린 날로 잡아보면 어떨까요?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 먹어봐도, 가족의 생일 아침에 하얀 접시에 올려서 먹어봐도 참 좋겠습니다. 

먹는 방법도 조금은 특별하게 감나무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먹어보면 어떨까요? 추운 겨울 특별한 날에 꺼내 먹을 때, 얼었던 감이 녹아내린 그 맛에 깃들어 있는 가을 깊은 별들의 맛과 바람의 맛과 햇살의 맛을 음미하며 먹어보면 어떨까요?

사람도 그 안에 있는 마음이 어떤지 그 생각과 감정을 읽어야 서로에게 정이 오가면서 깊어지듯, 얼렸다가 먹는 홍시도 그 안에 있는 특별한 재료와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영양에 관한 독특한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 ⓒ부천타임즈

무학대사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게 한 말이 있지요.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을 열어주고 생각을 바꿔주는 참 좋은 말인데요. 음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홍시로만 보고 먹는 사람은 홍시만 먹는 사람이요, 그 안에 별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먹는 사람은 홍시 안에 깃든 별자리 맛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 서늘한 가을바람의 맛과 단풍맛까지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먹는 사람은 그 맛까지 함께 먹는 사람입니다.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을 '아는 만큼 먹는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올겨울에는 홍시 속에 들어있는 가을 저녁의 노을 맛을, 아련하게 저물어가는 태양의 맛을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감나무가 감에게 꼭꼭 쟁여둔 가을의 모든 것들은 얼리면 더욱 숙성된 맛이 난다고, 감나무 가지 끝에 몇 개 남아 겨울을 지내야 하는 감들이 고운 눈빛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만 살짝 귓속말로 들려주는 비밀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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