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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7] 칠렁칠렁,칠렁칠렁밖에 몰라
2020년 11월 09일 (월) 13:48:41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치렁치렁
고경숙

시래기를 엮는 동안에도
노모는 다음 일을 지시합니다
노랗게 변색할 때까지 눈도 맞고 얼었다 녹았다
겨우내 먹을 양식이라니께
일 년 먹고도 남을 양, 서너 번 오가며
흙벽 처마 밑에 치렁치렁 매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새댁은 또 한 소리 듣습니다
야야, 제발 그 머리카락 좀 어찌 해봐라
아궁이 앞을 쓸고 다니는 치맛자락은
새까맣게 한 단을 덧댔습니다
노모는 아예 말문이 막혀 한숨을 쉽니다
오십이 다 된 새신랑은
어린 아내 손을 잡고 얼른 방으로 들어갑니다
힘들지? 한 마디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합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칠렁칠렁, 칠렁칠렁밖에 몰라

   
▲ ⓒ부천타임즈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들녘과 가까운 곳에 사는지라 주말에 산책을 하게 되면 텃밭 농사를 짓는 풍경을 항상 보게 됩니다. 봄에는 온갖 야채들의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종을 옮겨 심어 놓은 산뜻한 풍경을, 가을에는 김장용으로 기르는 무와 배추의 넉넉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배추 허리춤을 단단하게 묶어 놓은 텃밭이 보이는 한쪽에는 김장용 무를 뽑아 놓은 곳에 시래기 용으로 무청을 말리기 시작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렇게 한겨울을 지나면 구수한 국물이나 무침으로 밥상에 오르게 될 테지요.

도시 주변의 주말농장에서도 이렇게 시래기를 만드는데 많은 양을 재배하는 시골에서는 그 작업이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집이라면 무를 재배한 후 판매하고 남은 무청의 양이 실로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의 김장을 위해 재배한 무일지라도 그 양이 작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김장을 준비하는 가을에 정겨운 시골집 풍경이 보입니다. "노모"와 "새댁"이 "시래기를 엮"으며 매다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노모는 새댁이 일하는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손 빠르게 일 잘하는 노모 특유의 간섭이나 잔소리 성향 때문인지, 노모는 "시래기를 엮는 동안에도" 새댁에게 "다음 일을 지시합니다".

한평생 때마다 일마다 익숙하게 해왔던지라 순서 순서를 훤하게 꿰뚫고 있을 터이니, 손으로 착착 야무지게 시래기를 엮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 노모의 눈에 새댁의 서툰 솜씨가 좋아 보일 리 없습니다. 솜씨는 둘째 치고, 왜 시래기를 말려야 하는지, 시래기는 언제 먹는지, 일일이 설명하며 가르쳐야 안심이 되면서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랗게 변색할 때까지 눈도 맞고 얼었다 녹았다" 해야 한다며, "겨우내 먹을 양식이라"며 조곤조곤 말합니다.

   
▲ ⓒ부천타임즈

그런데 양이 얼마나 많은지 겨우내 먹기는커녕 "일 년 먹고도 남을 양"이네요. 그 정도 양이면 밭에서 집으로 가져오고, 또 일일이 엮어서 걸거나 매다는 일에 하루를 써야 할 정도라서, 벌써 "서너 번 오가며/흙벽 처마 밑에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데도 "새댁은 또 한 소리 듣습니다. " 알고 보니 새댁은 "캄보디아에서" 왔는데요. 그러니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전혀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려니 영 서툴기만 한 것이 당연하겠네요.

시어머니 눈에는 새댁의 긴 "머리카락"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자칫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시래기에 달라붙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야야, 제발 그 머리카락 좀 어찌 해봐라"라고 말하는데 캄보디아 새댁은 그 말조차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입니다. 머리 모양뿐만이 아닙니다. 아직도 불을 때는 "아궁이 앞을 쓸고 다니는 치맛자락은/새까맣게 한 단을 덧댄" 것처럼 보여 그것을 본 "노모는 아예 말문이 막혀 한숨을" 내쉴 뿐입니다.

때로는 큰소리나 잔소리보다 말없이 내쉬는 "한숨"이 더 큰 상처가 되는 법이라서, "오십이 다 된 새신랑은/어린 아내 손을 잡고 얼른 방으로 들어갑니다". 보기 드물게 효심도 있고 아내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 눈치 빠르게 아내를 데리고 들어간 방에서 "힘들지?"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다정한 남편의 그 말 "한 마디에" 젊은 아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합니다.

그런데요, 그 말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 시의 결말에서 이 시의 중심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대반전을 이루는 효과가 대단하구요. 그 속에 풋풋한 감정까지 녹여낸 것이 참으로 흐믓하기까지 합니다.

그 말은 마지막 두 행으로 "엄마는 하루 종일/칠렁칠렁, 칠렁칠렁밖에 몰라"인데요. 특히 마지막 행 "칠렁칠렁, 칠렁칠렁밖에 몰라"를 읽으면서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야말로 빵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요? 아니 일반적인 유머나 농담을 들으면서 이렇게 정서적으로 흐믓하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그 웃음의 질과 감정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진짜 웃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소리로 웃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음향만 큰 소리였다면 이 시의 결말에서 터져나오게 해준 웃음은 실제로 소리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그리고 서정적으로 풍성한 공간성과 생동성을 유발해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의 이야기가 다문화가정을 다루고 있으니 다문화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나 애환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이야기의 결론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이 시의 결말은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어버렸습니다. "칠렁칠렁, 칠렁칠렁밖에 몰라" 이렇게 짧은 표현 하나로 그 모든 것을 이뤄낸 것입니다. 실로 함축과 여운의 효과가 대단하고 하겠습니다.

시인들의 시를 읽거나 해설하게 될 때 보통은 시와 사람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고경숙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평소에 전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시에서 읽게 되어 속으로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면 사랑, 유머면 유머를 적절하면서도 농익게 구사하는 시인, 그러면서도 자기는 아니라는 듯 표정에 변화가 전혀 없는 시인이 고경숙 시인인데요.

   
▲ 고경숙 시인은 2004년 '모텔캘리포니아'를 출간한데 이어 2008년 '달의 뒤편',2013년 '혈(穴을 짚다', 2016년 '유령이 사랑한 저녁'에 이은 다섯 번째 시집 <허풍쟁이의 하품>을 최근 출간했다 ⓒ부천타임즈

시를 해설하는 말미에 고경숙 시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칠렁칠렁, 칠렁칠렁밖에 몰라"를 통해서 시 안에서의 스토리는 물론 시를 읽는 사람에게까지 웃음이라는 특유의 소통이 화통하게 이뤄진 타이밍에 아주 자연스럽게 고경숙 시인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화를 본 뒤에 그 영화로 인해 감독이 궁금해져 감독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칠렁칠렁". 귓속에 가슴속에 오래 남아 사라지지 않을 메아리처럼 반향과 잔향을 남기는 "칠렁칠렁"입니다. 이 단편영화를 위해서 출연해준 노모와 캄보디아 젊은 새댁과 오십이 되어가는 새신랑 세 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시적인 유머, 시만의 유머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여우주연상은 캄보디아 젊은 새댁이네요. 커튼콜을 받으며 다시 나오는 다문화 여성의 가정에 따스한 정과 사랑이 오래오래 풍성하게 깃들기를 바라겠습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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