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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6]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는 일
2020년 11월 02일 (월) 13:42:41 이종섶 mybaha.naver.com
   
▲ ⓒ부천타임즈

등을 바닥에 대는 일
이승예


등을 바닥에 댄다
어머니 자궁 속보다 편하다
지워진 기억은 냉정하고
현실보다 찬란하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이다

오래 실없었다
온기를 나눈 적은 있다

모두 바닥이다

등을 바닥에 대야
사람이다
그래야 돌아누울 수 있다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는 일이다

   
▲ ⓒ부천타임즈

사람은 살아가면서 날마다 눕는다 하루에 한 번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눕기도 한다. 눕기 위해서 살아가고 눕기 위해서 일어선다. 일어설 때는 특별한 감정이 없지만 누울 때만큼은 특별한 감정이 발생한다. 그것만 봐도 눕는 일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조차도 아주 각별해서 삶의 맛이 곡진하게 배어나온다.

눕는 일은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것을 설명할 때 "어머니 자궁 속보다 편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은 그보다도 편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어머니 자궁 속보다 편하"게 느껴지는 바닥에 누우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기억"들이 있고 아직까지 또렷하게 살아 있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을 이끌고 가면서 또는 그 기억에 이끌리면서 바닥에 누워 있다 보면, 바닥은 나를 받아주면서 내 기억들까지 받아주는 것 같아서 그게 참 고맙다. 바닥에 누워서 생각하는 기억들은 기억의 서정과 질감이 곱기 때문이다.

   
▲ ⓒ부천타임즈

바닥에 누워 생각하는 또는 생각나는 기억을 "지워진 기억"이라고 부른다. "지워진 기억"이란 말은 그 자체로 성립되기 어려우나 바닥에서만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에 있으니 그곳에서 생각하는 기억들은 당연히 부들부들하고 유순할 것이며, 감정의 순환이 살아 있어 부드럽지만 터지지 않은 생동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워진 기억"에 대한 입장을 규명해보면, 사실은 지워져 가는 기억이지만 "지워진 기억"으로 부를 수 있고, 지우고 싶어서 "지워진 기억"으로 부를 수도 있다. 환경이든 기억의 감정 속에서든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서 "지워진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중 어느 하나든 아니면 그 모든 것이든 그때의 “지워진 기억은 냉정하”다.

"냉정"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만 보면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나 "어머니 자궁 속"에 있는 편안함과 그곳에서 되어진 "지워진 기억"이라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냉정이라는 객관성의 필연적인 담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쉽게 표현하면 '편안한 냉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천타임즈

그 기억이 가지고 있는 사건이나 그 기억이 새롭게 들춰내는 사건의 "현실보다 찬란하다"는 정서로 나아간다. 실제로는 "현실보다 찬란"한 것이 있을 수가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냉정할 필요조차 없는 아주 좋은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니 그럴 경우 그것을 어찌 찬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현실보다 찬란하다"는 말은 현실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고, 그 사건에서 냉정을 발휘해서 부정적인 거품을 거둬낸 후 찬란함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사는 일도 죽는 일도" 다 같아서 "등을 바닥에 대는 일"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사는 일"에 견주어 등을 바닥에 대고 산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잘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잘 죽게 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죽는 일"에 견주어 죽음이라는 것이 등을 바닥에 대는 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삶과 죽음, 또는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동안 편안하게 뭉뚱그려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다. "오래 실없었다"는 것이다. 감정의 상승이 이끌어낸 찬란함에 이어 잠시의 시간이 지나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정리하는 단 한마디인 셈이다. 그럼에도 참 다행스러운 것은 "온기를 나눈 적은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바닥은 더 이상 바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 바닥이다"라는 정의를 새롭게 음미한다. 현재 등을 기댄 채로 누워 있는 바닥은 당연히 바닥이고, 그 바닥에 누워서 떠오르고 떠올리는 기억도 바닥이다. 몸은 방바닥이나 침대 바닥에 눕고 기억은 그 기억의 공간에 마련된 바닥에서 편안하게 눕는 것이다.

그렇게 바닥이 주는 몸과 마음의 효능을 톡톡히 체험하며 살고 있으니 "등을 바닥에 대야/사람이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게 되는 것이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돌아누울 수 있다"는 말조차도 모든 일이 편안하게 정리되어 이제는 편안하게 해결된 상태로 "돌아누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때로는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돌아누울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도 읽히게 되는 것이다.

   
▲ ⓒ부천타임즈

사람은 잘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잘 죽어야 한다. 잘 살았지만 잘 죽지 못하면 그 결과로써 잘 살지 못한 것으로 정리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잘 죽었지만 잘 살지 못했다면 그 잘 죽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데, 이때의 두 가지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등을 바닥에 대는 일"이다. "등을 바닥에 대"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게 되면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바닥에 누워 떠올리는 기억들은 삶을 순연하게 만들고, 그런 삶의 연속은 죽음까지도 순연하게 만든다.

오늘도 바닥에 눕는다. 내가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났다면 그 후로는 바닥에서 성장한다. 음식이 몸을 키운다면 마음은 바닥이 양육한다. 나는 바닥의 사람, 오늘도 바닥에 누워 삶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하나, 바닥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르치며 깨닫게 하는 인생 교실, 죽는 순간까지 바닥에 누워 공부하기로 한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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